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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사진은 대개 깃발을 들고 찍는다. 우선 태극기가 우선이고 회사 사기 그리고 다음으로 큰 비용이 드는 원정에 십시일반으로 도움을 준 깃발 등을 홍보용으로 찍어준다.

지난 3월 중순 에베레스트 원정을 앞두고 짐을 챙기는 과정에 번뜩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2012여수세계박람회 깃발을 챙겨가자. 그러면 오는 12월 개최지 결정을 앞둔 박람회 유치에 상당히 홍보가 되는 사진이 나오지 않을까. 여수시나 유치위원회에서 잘 활용하면 여수시에 좋은 이미지를 주고 유치 성공에 도움을 줄 것이란 단순한 생각에서다.

전남 여수시는 세계박람회에서 올림픽 격인 '2010 박람회'를 중국 상해에 뺐겼다. 이후에 세계박람회의 아시안게임 격인 '2012 세계박람회' 유치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4월 초에 국제박람회기구에서 실사도 마쳤다.

여수는 연안과 해양이 공존하는 컨셉을 박람회 주제로 잡고 폴란드·모로코와 현재 치열한 3파전을 펼치고 있다. 이런 국제행사에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휘날리는 박람회 깃발 사진은 분명 이색적이고 강한 이미지를 주는 좋은 홍보용 사진이 될 것이 틀림없다.

히말라야 간 김에 고향 홍보를

▲ 로체봉(8516m)에서 2012깃발을 들고 있는 김미곤 대원.
ⓒ 김창호
원정길에 내 고향 여수 홍보를 하자고 결심하고 바로 여수시청에 근무하는 선배에게 전화했다. 그 선배는 대찬성이라며 거리 게양이 끝난 깃발 6장을 구해주었다. 낡았지만 쓸 만 했다. 거리에 걸렸던 깃발들이라 상당히 크다. 어쨌든 잘 챙겨서 넣고 히말라야에 왔다.

그런데 마음 고생은 이상한 데서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이 깃발을 나의 자체 판단에 의해 급히 가져온 것이다. 만약 미리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수시의 공식협찬을 받았으면 전혀 마음 고생할 이유가 없었다. 출국에 임박해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깃발만 준비했고 구두로 원정대장에게 보고했을 뿐이다.

카투만두 공항에서 일차로 프랑스관광객 할아버지들과 환담하며 재미있는 깃발사진을 찍었다. 남체에서 고개를 넘어 탕보체 가는 길에 처음으로 히말라야가 보이는 장소가 나온다. 내 스스로 흥분해서 외국인들과 2012깃발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분위기가 이상하다.

한국도로공사 원정대인데 비공식적으로 내가 이 깃발을 꺼내 홍보사진을 찍으니 그도 그럴 수밖에. 아차, 썰렁한 분위기. 한 켠에서는 매우 정치적인 해석까지 하면서 기피하는 의견이 나온다. 와! 한 장의 깃발 사진이 그렇게 비약할 수도 있구나. 마음 속으로 다시는 안 찍겠다고 다짐하고 집어넣었다.

그러나 좋은 장면만 나오면 안면몰수하고 깃발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이 여전하다.

딩보체를 지나 페리체로 가는 길에 팡보체를 지날 때쯤이다. 나는 일행과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길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올라갈수록 에베레스트 배경이 너무 멋있었다. 마침 맞은편에서 빈손으로 오는 포터가 있다. 그에게 100루피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원 없이 눈치 안 보고 나만의 깃발 사진을 실컷 찍었다. 문제는 시간을 너무 보낸 것. 우리 대원들을 놓쳤다.

한참을 가는 방향으로 올라가니 삼거리가 나왔다. 길은 알겠는데 우리 대원들이 먼저 갔는지 뒤에 오는지가 헛갈렸다. 뒤로 내려갔다. 겁도 났다. 한참 팡보체로 들어가는데 산악인 허영호 대장이 온다. 어디 가느냐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같이 점심 먹고 천천히 올라가자고 한다. 점심을 잘 먹고 길을 따라 먼저 올라왔다.

한참 오는데 강연룡 대원이 나를 찾으러 내려온다. 별 일 없으려니 기다렸는데 갑자기 점심식사 이후 안개가 자욱이 끼기 시작하자 걱정이 돼 김미곤 대원은 앞으로, 강 대원은 뒤로 나를 찾아왔다는 것. 깃발 사진 찍다가 늦었다는 소리도 못하고 속으로 다시는 안 찍어야지 하면서 배낭 깊숙이 또 넣었다. 이제야 털어놓는다. 깃발 사진 때문에 늦어 소동을 일으켜 미안하다고.

여수시, 두 원정대에 술 한잔 사세요

결론은 박상수 원정대장이 정리해주었다. "로체봉과 에베레스트봉 등정을 위해 출발하는 대원들에게 공기업으로서 국가적인 사업을 돕는 깃발은 찍자, 여수 깃발은 당연히 챙겨라"고.

문제는 깃발의 크기다. 보통 정상에 가져가는 깃발의 열 배 정도 크기이므로. 그럼에도 대원들이 웃으며 지고 갔다. 미안하고 고맙다.

그래서 5월 4일 로체봉 등정과 5월 16일 에베레스트 봉에서도 '2012여수세계박람회' 깃발은 올랐다. 여수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자랑스럽다. 그리고 한국도로공사 원정대에게 그 큰 깃발을 들고 멋있는 포즈로 등정깃발사진을 찍어준 데 깊이 감사할 뿐이다. 허영호 대장도 17일 자신의 에베레스트 20주년 기념등정에 성공했다. 여수깃발도 찍어주었다. 여수가 두 원정대에게 술 한잔은 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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