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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모복 등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자는 텐트 안 모습(4월 29일)
ⓒ 김창호

베이스캠프에 오후가 오면 무의식적으로 '오늘 밤은 또 어떻게 나나'하는 걱정이 머리를 누른다. 매일 매일의 가장 큰 고민이다. 5400m 설산 베이스캠프에서 밤을 나는 일은 고역 중의 고역이다. 아침에 맞는 햇빛의 가치가 여기서보다 귀한 데가 있을까?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의 밤은 사실 오후 2~3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고산인 이 곳에서는 오후가 되면 거의 어김없이 안개가 끼거나 눈보라가 치면서 햇빛을 가려 버린다.

아침부터 오전 사이 햇살이 드는 동안에는 좋다. 더워서 개인별 텐트에 머물 수가 없을 정도다. 이 때 머리를 감거나 밀린 빨래를 한다. 반바지로 활보할 정도로 따뜻하기도 하다.

그런데 해만 사라지면 춥다. 대개 일몰은 오후 6시 전후. 저녁밥은 6시에서 7시 사이에 먹는다. 이 시간부터 9시 전후까지 잠을 자지 않고 시간 보내기에 모두들 진땀을 뺀다. 본부 텐트에 옹기종기 앉아서 객담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카드놀이 등으로 시간을 때운다.

그리고 저녁 8시 반 쯤, '밤 추위와 숙면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결과는 항상 추위의 승리지만. 부엌텐트에서 네팔인 고용인들이 물을 끓여서 대원들에게 하나씩 가져온다. 여기서 유일한 보온수단인 물통을 침낭에 넣고 그 온기로 잠을 청한다.

고역 중에 고역, 한밤에 화장실 가기

오늘 밤은 눈발이 일찍부터 거세다. 추위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침낭 안에 물통을 2개쯤 넣고 여벌 침낭을 위에 씌우고 양말을 신고 두터운 우모 바지와 상의를 입는다. 이쯤 되면 몸 부피는 두 배쯤 불어있다. 뒤뚱뒤뚱 침낭 안에 몸을 밀어넣고 머리에는 털모자를 쓴다. 그 위에 우모복 상의 모자까지 덮어쓴다. 코만 빼꼼히 나올 정도. 이 정도가 아니면 추워서 잘 수가 없다.

텐트 안 온도? 아침에 보면 텐트 안에 있는 물이건 녹차건 다 얼어 있다. 무심코 꺼내려던 물휴지는 아예 얼음덩어리.

문제는 밤중에 화장실가기. 사실 과거 시골집 화장실 가기 정도이겠지만, 요즘 편리해진 도회지 따뜻한 가정집을 상상한다면 천당과 지옥간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일찌감치 소변을 보아둔다. 밤중 화장실 가기를 피해 보려고.

여기서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화장실 얘기 잠깐. 이곳 에베레스트 지역은 분뇨 특별관리 지역이다. 각 원정대마다 베이스캠프 텐트 이웃에 50~60cm 깊이의 플라스틱 통을 돌로 덮어서 발걸이를 만들고 밖에서 보이지 않게 간이텐트로 가린다. 이곳이 화장실이다. 우리 원정대 베이스캠프에는 두 개가 설치돼 세르파와 원정대원들이 각각 사용한다. 베이스캠프 생활 한 달째인 우리 원정대는 이미 한 통을 채웠다.

원정대는 이곳 네팔 관리부서에 분뇨 1㎏당 우리 돈 1000원의 분담금을 선불로 납부했다. 때가 되면 고용인들이 치운다. 설산을 뚫고 온 시원한 바람을 끼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낙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즐거움 중의 하나다.

문제는 소변과 식수와의 충돌과 원활한 조화(?). 이곳 20여명의 원정대와 현지 고용인들의 식수는 주변에 널려 있는 빙하 녹은 물을 사용한다. 석회석 성분이 많아 약간 뿌옇다. 우리 텐트촌 주변에 빙하물이 녹은 작은 웅덩이가 많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식수웅덩이로, 다른 하나는 허드렛물 웅덩이로 사용한다. 눈에 보이는 부분만을 분리했지, 속까지는 우리 영역 밖이다. 모르는 게 약이니까. 우리가 깔고 누워자는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평소에 수원관리에도 신경은 쓴다.

▲ 간이화장실(4월 29일)
ⓒ 김창호
밤마다 들리는 '야간열차 소리

밤 얘기로 돌아가자. 한밤중 추위에 오돌오돌 떨다가 텐트에서 나와 20여m 떨어진 화장실 가는 고역은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서 텐트 옆에 그냥 노상방뇨를 하기 십상이다. 그래도 방향만은 식수웅덩이를 피해야 한다.

그러나 방향을 조금 달리한다고 발밑 빙하수원이 식수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그냥 눈 가리고 아옹이다. 잘 먹고 마시고 산다. 여기서도 모르는 게 약이다.

추위 속에 완전무장을 하고 저녁 9시에 억지로 청한 잠은 고작 2~3시간. 그 정도가 최대 수면시간이다. 뒤척이면서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시간을 보면 11시 몇 분이거나 잘해야 새벽 1시 전후다. 이것도 고소증 때문이란다.

히말라야를 몇번씩 오간 김미곤 대원은 한 번 침낭을 뒤집어쓰고 깨고 나면 아침이라고 너스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우리 대원들의 텐트에서도 곤한 호흡소리와 잠 못 드는 기척이 곳곳에서 난다.

오늘밤은 유난히 바람이 거세다. 이 때쯤이면 어김없이 갑자기 대형제트기 이륙하는 소리가 난다. 혹은 서울행 야간열차 달리는 소리도 들린다. 눈사태나 산사태 낙석소리다. 오늘밤에는 아이스폴 쪽에서 꽤 큰소리가 몇 번 난다. 점차 에베레스트의 봄 시즌이 무르익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눈사태나 산사태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만큼 산행의 위험은 높아만 간다. 두렵다.

잠은 안 오고, 본부텐트에 가서 노트북이나 두드릴까 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추위 속에서 자판 두드릴 용기가 없다. 침낭에 반쯤 몸을 넣고 랜턴을 이마에 이고 책을 편다.

C1 C2에 운행이 있는 날이라면 새벽밥을 준비하는 부엌텐트의 기척이라도 있으련만. 오늘 우리 원정대는 어제 다른 원정대의 세르파 사고로 운행을 쉰다. 바람소리만이 우리 텐트촌을 휘젓고 다닌다. 유난히도 바람이 거세다. 텐트를 뒤흔든다. 책보기도 얼마 못 간다. 메모지와 펜을 들고 몇 가지를 적는 시늉을 하다 새벽잠을 청한다.

옆 텐트에서 대원이 켜둔 채 잠이 든 MP3에서 약한 노래 소리가 들리고 그 옆 텐트에서는 기침소리와 잠꼬대 소리가 들린다.

우리 대원들은 새벽 꿈 속에서 정상 등정의 나래를 펴고 있을 터이다. 젊은 대원들의 꿈과 찬 눈보라가 뒤엉키는 5400m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춥디 추운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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