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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착 무전기도 잡지 못한 탈진한 상태로 베이스캠프와 무전 중인 김홍빈 대원.
ⓒ 김창호

김홍빈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위해 마침내 산에 오르는 11일 새벽 3시. 눈을 떴다. 홍빈의 양말은 내가 신겨 주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어젯밤 잠을 청해서인지 부엌텐트에서 바스락 소리에 쉽게 새벽잠을 깼다.

90년대 초반 북미 맥킨리봉을 오르다 사고로 열 손가락을 잃은 김홍빈. 그의 꿈은 이른바 7서밋(7대륙의 최고봉을 오르는 것). 그는 이번에 후배들과 함께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오를 것이다. 아름다운 동행이 그것이다.

김홍빈은 4월 9일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고소적응을 위해 위험한 아이스폴지대를 통과하면서 C1·C2·C3를 벌써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몸을 만들어왔다. 1000m 아래 페리체까지도 다녀왔다. 이제는 정상공격을 위한 최종출전이다.

정성을 다해 그의 양말을 신겼다

출전을 하루 앞둔 10일 저녁회의를 했다. 에베레스트 등정일자로 의견이 맞섰다. 14일, 16일 도전이 팽팽히 맞섰고 홍빈은 C1·C2에서 하루를 쉬고 가는 여유 있는 산행을 하자는 생각이다. 다른 의견은 15일 오전 강풍이 예상된다는 일기예보를 토대로 14일 결행하자는 주장이었다.

결론은 14일로 잡되 C2에 올라가서 여러 상황을 종합하자는 절충안으로 결정되었다. 김홍빈은 저녁을 먹고 대원들이 숙소텐트로 돌아간 뒤에도 늦게까지 본부텐트에서 시간을 보냈다.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대원들이 하나둘 숙소로 향했다. '내일 아침 3시 20분 기상, 3시 40분 아침식사'다. 김홍빈은 저녁 8시 30분쯤 잠자리로 가기 위해 일어났다. 나는 "이제 홍빈이의 시대를 열자"고 격려했다.

다음날인 11일 새벽.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에 잠을 깨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바로 옆 텐트인 김홍빈의 텐트로 갔다. 김홍빈의 배낭이나 텐트는 이미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아마 어젯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 못 이루다 잔 것 같다.

김홍빈은 자신의 손으로 속옷을 갈아입는다. 가장 힘든 양말신기. 정성을 다해 양말을 신겼다. 나는 마음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지켜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했다. 신발을 더욱 꽉 신겨주었다.

그리고 삼중화의 가장 안쪽 신발을 다시 신겨주고 끈을 단단히 메었다. 삼중화를 신고 나섰다. 무거운 안전벨트와 아이젠은 배낭 위에 묶었다. 앞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기까지 일주일 동안 김홍빈의 양말신기는 후배대원이나 세르파 싼누가 맡을 것이다. 늘 해오던 것처럼. 정말 따뜻한 우정으로.

이 곳 베이스캠프보다 더 춥고 더 비좁은 텐트 안에서 배고프고 호흡이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김홍빈과 후배대원들의 손발이 착착 맞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대원들이 늠름한 모습으로 식당텐트 앞으로 나온다.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고 간식으로 김밥을 둘둘 말아서 배낭에 챙긴다. 한 대원은 한 줄 더 챙기라고 한다. 이어 네팔식 기원제를 마치고 김홍빈의 두 손을 꼭 잡고 전송했다. "잘 지켜줄 거야." 나도 모르게 악수를 나누면서 나온 말이다.

정말 누군가가 이들 젊은이들을 얼음밭, 눈밭에서 잘 지켜주길 간절히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홍빈은 신발 끈을 묶다가 "이번에는 꼭 한방에 해내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는 답했다 "한방에 해내겠습니다"

13일 저녁. C2에서 무전이다. 내일 새벽 5시 출발이다. 그동안 이틀을 C2에서 보내고 난 후라 목소리들이 차분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베이스캠프에서 대원들의 컨디션을 판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목소리 감정이라 가장 예민하게 오감을 동원해서 습관적으로 목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그간 날씨다 아주 안 좋았다. 다른 원정대의 텐트가 날아갈 정도로 강풍이 불었다고 한다. 우리 대원들이 충분한 휴식과 준비기간을 가져서 다행이다.

14일 아침 5시. 유난히 센 바람이 텐트를 뒤흔든다. 대원들의 무전이다. 바람도 없고 날씨가 좋아 정상운행중이라는 보고다.

김홍빈은 5월 18일 오후 2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고 무사히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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