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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들이 3일간의 C1(캠프 1) C2(캠프2) 등반을 마치고 베이스캠프에 4월 23일 귀환했다. 날씨가 심상치 않아 아침도 건너뛰고 내려왔다고 한다. C2식량 비축분을 아끼느라 아침식사로 차 한 잔만 마시고 3~4시간의 하행길을 달려왔다.

오전 11시경 김주형 대장에 이어 김미곤 김홍빈 박남수 윤중현, 김창호 강연룡 대장이 들어왔다. 추위와 허기에 약간씩은 지친 모습들이다. 무거운 삼중화를 벗어 던지고 따듯한 물에 발을 담그고 머리를 감고 피로를 씻어내기에 분주하다. 김홍빈 대원은 머리감은 물로 즉석 샤워를 하기도 한다. 원정대원들은 이번 주말까지(4월27일) 날씨상황을 체크하면서 재충전시간을 갖는다.

▲ 칼라파타르에서 본 에베레스트 장관
ⓒ 김창호

아무리 원정대라도 '기분전환'이 필요해

베이스캠프를 지키던 박상수 대장과 고락쉡(5288m) 롯지(여관 겸 식당) 소풍을 떠나기로 했다. 간단히 짐을 챙겨서 칼라파타르봉(5545m)을 오르는 것도 일정에 포함시켰다. 칼라파타르는 고락쉡에서 약 1시간 남짓 걸리는 산행코스로 에베레스트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봉우리다.

우리가 하루 먼저 내려가고 김창호 김주형 강연룡이 다음날 아침 베이스캠프를 출발해서 칼라파타르 봉우리 정상에서 만나기로 했다.

베이스캠프 팀이 고락쉡을 찾는 이유는 서너 가지다. 베이스캠프에서만 있다 보면 정상을 오르는 대원들과는 달리 운동 부족이 될 수 있다. 하루 고작 일천보도 부족할 정도다. 한두 달 베이스캠프만 지키다 보면 하산할 때 다리가 풀려서 곤란을 겪는 수가 있다.

다음은 기분전환이다. 베이스캠프는 얼음 덩어리 위라 아무리 매트를 깔아도 잠자리가 침대만 못하다. 몸이 늘 찌뿌둥하다. 그래서 고락쉡 롯지에서 한두 밤을 보내면 허름한 침대지만 기분전환에는 제격이다.

더욱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유혹이다. 10~20분 뜨거운 물 샤워를 제공하고 약 1만원 정도. 현지 가격으로는 비싸지만 할만하다. 약1~2시간 하행과 2~3시간 상행 거리에 그나마 이런 롯지 촌이 있다는 것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장점이다. 약 두 달여의 베이스캠프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활력소다.

기대를 안고 내려간 고락쉡 롯지. 원하던 부다 롯지는 이미 방이 찼다. 옆 집에서 일박을 했다. 저녁시간을 때우면서 현지 포터들과 난롯가에서 노래자랑을 했다. '레삼 삐리리'(나뭇잎이 바람에 파르르 떨리는 소리)라는 네팔인들의 가장 사랑을 받는 대중가요를 같이 불렀다. 이 노래로 이방인과 현지인의 벽은 금세 무너지고 격의 없이 어울리는 시간이 되었다.

17세의 다와(Dawa)라는 앳된 얼굴의 주방보조원이 눈길을 끈다. 그는 야크의 마른 똥으로 화력을 유지하는 네팔난로에 연신 마른 야크 똥을 넣고 차나 음식을 나르는 허드렛일꾼이다.

갑자기 그의 꿈이 궁금했다. 이 지역 최대 선망직업인 세르파 정도의 답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꿈이 없다고 한다. 공부는 무학이라고 주인이 통역을 해준다. 벌이는? 일할 때는 한철에 5000루피(6만원 정도). 일 없으면. 말이 없다.

순간 저 아이의 10년 후 아니 5년 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성인이 되었을 때는?'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메인다. 현실을 개선하고 미래의 희망을 일굴 그 어떤 수단도 그에게는 없는 것 같다.

27세의 롯지 주인. 히말라야 지역에서 관광으로 가장 큰돈벌이가 되는 롯지를 운영하며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서 반년, 시즌에는 이곳 롯지에서 반년을 보내면서 아주 행복하다고 한다. 네팔의 구조적인 빈부격차. 메울 수 없는 골인가.

ⓒ 김창호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늘어선 하얀 설산들

다음날 아침 5시쯤. 눈을 뜨니 안개가 자욱하다. 6시쯤 칼라파타르에 올라가야 일출시간에 에베레스트 최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안개 때문에 '포기 반 기대 반'. 시간이 흐르는데 7시가 넘어 김주형으로부터 칼라파타르 정상에서 무전이 날아온다. 춥고 배고프니 빨리 올라오라고 한다. 서둘러 토스트 몇 조각과 뜨거운 차를 준비해서 부랴부랴 오른다. 아직 에베레스트 쪽에는 안개가 남아 있다.

거의 60도 경사의 산을 헐떡거리면서 오르기 1시간이 족히 넘었다. 칼라파타르 정상이다. 가히 에베레스트의 전망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새까만 돌산으로 위엄 있게 가운데 자리한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부터 서부능선(7300m)과 오른편의 눕체(7896m)가 병풍처럼 보위하고 서 있다. 이어서 좌우로 하얀 설산들이 연봉을 이루며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줄줄이 이어진다. 새파랗다 못해 하얀 하늘 속으로.

에베레스트의 아이스폴. 말발굽 모양의 중앙에 에베레스트를 두고 쿰부 빙하지대로 흘러들어가는 만년설의 얼음덩어리다. 멀리서 보면 비단 주름처럼 겹겹이 얼어 있다.

중력에 의해 흘러가는 얼음 속의 하얀 물결이 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스스로 올라가기 전에 에베레스트의 속살을 샅샅이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숨을 죽이는 장관이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정경이다. 감격적이다. 우리 원정대원들의 임시 보금자리인 베이스캠프의 울긋불긋 텐트 색깔도 한눈에 잡힐 듯이 펼쳐져 있다.

산을 오르면서 많은 기도와 염원을 되뇌었다. 중턱쯤부터 잡념이 호흡을 흐리게 하고 오로지 ‘훗훗 팟팟’ 나만의 고소 호흡에만 집중했다. 정상에 다다를 때는 하얀 눈과 파란하늘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대자연의 압도 때문일 것이다. 한숨 돌리고 억지로 명산정상에 오른 등정의 의미를 지어 보았다. '조국통일 세계평화'.

이내 추위에 떨고 있던 대원들과 간단한 아침을 때우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보너스로 추위에 얼어붙은 입과 목을 다듬어 ‘번영과 평화’를 주제로 산상연설 연습을 해보았다. 하산 길은 꿈길을 걷는 것처럼 부드럽고 편안했다. 내려오자마자 다시 올라가고 싶은 칼라파타르여. 꼭 다시 볼 수 있기를 .

베이스캠프로 올라오는 길에는 어느새 봄이 와 있었다. 봄볕이 따뜻했다. 달력은 벌써 5월이 내일 모레인데. 에베레스트의 춘광에 속지 않으려 한다. 해만 지면 추위의 마수가 여전하니. 그래도 계절은 어느새 빙하 물을 불려놓았다. 빙하가 촬촬 소리를 내며 한결 요란하게 흐른다.

베이스캠프에 돌아오니 텐트 자리들이 어느새 눈에 보이게 푸욱 꺼져 있다. 힘이 넘치는 세르파들이 박남수 대원의 지휘로 텐트주변 평탄작업을 한다. "하나 두울 세엣". 돌을 나르는 추임새가 네팔어가 아니라 한국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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