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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여 개 원정대가 붐비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촌
ⓒ 이평수
인체의 놀라운 적응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만약 지금 마시고 있는 공기의 양이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답은 간단하다. 생명에 치명적이다. 원정대가 머물고 있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산소분압은 평지의 절반에 불과하다.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은 평지의 3/1에 불과하게 희박해진다. 그럼에도 베이스캠프에는 30여개 원정대에서 약 500여명이 활동을 하고 있다. 크고 작은 고소증세를 겪으면서.

3000m 이상의 고산을 처음 찾은 보통사람의 가장 큰 두려움이 고소증이다. 우리 원정대는 4월1일 에베레스트 원정 초입인 루크라공항(2800m)을 출발, 해발 5300m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11일 도착했다. 원정대가 올라온 보름 동안의 히말라야 산행과정은 고소적응과정이자 무서운 고소증과의 싸움과정이었다. (4월 3일 남체에서 작성해서 보내려던 '원정대 3신' 제목이 고소증이었는데 그 고소적응 문제로 무려 2주일의 시간이 흘러 버렸다.)

[4월 18일] 설산의 거대한 신음소리가 들린다

'희망 2007 에베레스트․로체 원정대'가 자리한 이 곳 베이스캠프에서부터 얼음산과 눈밭을 지나 3500m 이상을 더 올라가야 세계의 지붕인 에베레스트와 로체봉이 있다. 원정대원들과 세르파들은 정상공격을 위해 캠프를 4개 만들고 차근차근 고도에 몸을 적응하고 있다.

18일 새벽. 사위가 적막한 베이스캠프 촌. 나일론 천 한 조각으로 히말라야의 추위와 격리된 나만의 공간 텐트에서 잠을 깼다. 호흡이 가빠서다. 그동안 고소에는 상당히 적응이 되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도 숨이 가빠서 잠을 깼다. 심호흡을 몇 번 해본다. 숨이 고르지 않다. 몸을 일으켰다. 5000m 산 속에서 온기라곤 침낭 안에 넣어둔 뜨거운 물통뿐이라 온 몸을 우모복으로 칭칭 감다시피 하고 잠을 청했다. 일어나는 것도 한 짐이다.

오른쪽 호주머니에 넣어 둔 찾아 헤드랜턴을 켜고 고도계와 시간을 보니 5270m에 0시 45분. 가는 눈발이 텐트에 부딪힌다.

설산의 거대한 신음소리가 간단없이 들린다. 설산의 신음소리. 빙산이 녹으면서 내는 소리다. 우리 베이스캠프의 10여개 텐트도 사실은 돌, 모래, 자갈이 뒤섞인 빙하 위에 세워져 있다. 잠자리 바로 밑이 얼음이다. 에베레스트 사면의 눈이 녹아내려 형성된 거대한 얼음덩어리 빙하가 매우 느린 속도로 아래로 밀려 내려가고 있다. 쿰부빙하의 일부인 셈.

과거에는 이곳 베이스캠프에서 지표로 10km 아래인 로부체까지 빙하가 걸쳐 있었다. 지금은 많이 녹았다고 한다. 거대한 빙하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면서 서로 부딪혀 갈라지면 쩌억 쩌억 소리를 낸다.

▲ C1 구축을 위해 항상 붕괴 위험이 있는 아이스폴지대를 건너는 강연룡 대장
ⓒ 이평수
여기에 수직 벽에 가까운 푸모리봉 등 베이스캠프를 둘러싼 7000m 봉우리에서 집채만한 암괴들이 우르르 굴러 떨어진다. 그 소리도 마치 음악소리처럼 들린다. 처음에는 깜짝깜짝 놀라다가 이내 바리톤 남저음같이 익숙해졌다.

뒤가 마려 플라스틱 통으로 만든 임시 화장실로 갔다. 냄새가 안 나서 좋다. 랜턴을 끄고 하늘을 본다. 북두칠성이 서편 푸모리 봉에 국자머리를 박고 있다. 동편 샛별을 빗기면서 에베레스트와 로체방향 아이스폴 위로 은하수가 걸쳐져 있다. 청정지역 히말라야에서는 별이 참 밝다. 정말 나를 향해 뭇별들이 조명을 켰다 껐다 하면서 별들의 향연을 벌이는 것처럼 반짝인다.

옆 동 주방장 텐트에서 네팔인 한국요리 주방장 리마가 일어나는 소리가 나더니 부엌텐트에서 가스 불 켜는 소리가 난다. '캠프 투' 개척에 나서는 세르파들의 아침준비가 시작된다. '캠프2'는 6400m에 설치된다. 이런 캠프는 '캠프3' '캠프4'까지 차근차근 설치될 것이다.

어제(17일) 우리 대원들은 이들 세르파들이 준비해 준 6073m 고도에 있는 '캠프 Ⅰ' 에 올라가 적응훈련에 들어가 있다. 우리 대원들은 새벽밥을 먹고 아이스폴 지대(캠프1에 가는 첫 번째 장애물로 수백m 높이의 만년설이 얼어붙은 집채만한 크기의 설빙벽)를 통과해서 오후 4시 전 대원이 '캠프1' 들어갔다는 보고가 무선으로 베이스캠프 지휘 동에 들어왔다.

저녁. '캠프1'에서 전 대원이 텐트 안에 들어가니 내일 아침 6시쯤 다시 연락하자는 연락이 왔다.

18일 새벽 4시. 한국인 대원들이 '캠프1'에 적응하는 동안 세르파들은 다음 '캠프 2' 준비 작업을 위해 새벽밥을 먹고 아이스폴지대를 오른다. 이곳 3000m 고산에서 낳고 자란 세르파들에게 고소 문제는 없다. 이들은 방수방한이 된 삼중화 신발과 안전벨트 방한복에 각종장비를 담은 15kg무게의 배낭을 메고 랜턴 빛을 뿜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라마제단에 불을 밝혀 안전을 기원하고 오늘 일을 떠난다. 떠나는 어깨 위로 간절한 기도뿐 해줄 것이 없다.

세르파가 출발한 지 5시간쯤 지난 아침 9시께 '캠프 2' 정지작업완료 보고가 들어왔다. 캠프2 설치장소의 상황이 눈얼음과 바위가 혼재된 경사지로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4월 18일 12시 현재. 4명의 세르파들은 임무를 완수하고 귀환했다. 우리 한국 원정대원들은 캠프1에서 캠프2까지 진출해 적응훈련을 계속하고 있는데 갑자기 날씨가 오후부터 눈발이 거세다.

▲ 설사면을 깎아 C1을 만드는 김주형 대장과 대원
ⓒ 이평수


고소증(Acute Mountain Sickness)이란?

고소증은 해발고도 2400m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심각한 고소증세는 3000m 이하에서는 드물다. 고소증세는 우리 몸이 고산지대의 산소희박에 적응하지 못해서 생긴다. 5500m 고산에서의 산소량은 평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면 우리 신체의 메카니즘은 이렇게 산소양이 줄어든 긴급 상황에 대처해서 호흡은 빨라지고 깊이 하며 맥박도 빨리해서 신체 각 부분으로 전달되는 산소량을 늘린다. 그래서 고소증은 호흡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벼운 고소증세는 두통, 식욕감퇴, 어지럼증이 일반적이다. 수면부족, 현기증, 구토증세가 있고 개인에 따라 장기 이상으로 설사나 맹장염을 앓기도 하고 치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치명적인 고소증세는 뇌와 폐에 체액이 차오르는 뇌수종과 폐수종이다. 폐수종은 호흡곤란 무기력증 기침 피가 섞인 가래가 나오고 악화되면 의식을 잃고 사망에 이른다. 뇌수종은 환각 환청이 오고 균형감각을 잃어서 산행과정에 추락사하기도 하거나 생명을 잃는다.

몇 년 전에 지방 모 대학 원정대 리더가 무리한 산행을 강행하다가 티벳 쪽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근방(5000m)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사망하기도 했다. 전문 산악인들도 고소증을 무서워하는 이유다. 그래서 고소에는 계급도 없고 천하장사도 없다고 한다.

예방법은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여유와 안정이다. 성급하게 서두르거나 어떤 일에 집착해서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엔 고소증세가 더 빨리 찾아온다. 산행에서는 미리 천천히 고도를 높여가면서 우리 몸의 신비로운 적응력을 길러주면서 가는 방법이 최선이다.

무엇보다 합리적인 일정관리가 핵심이다. 3000m 이상 고산에서는 하루 표고 차 300m 이상 고도를 올리면 좋지 않다. 지형상 불가피하게 300m 이상 올려야 하면 반드시 하루 이상은 쉬어야 한다. 예를 들어 쿰부지역의 겨우 팍딩에서 출발, 남체바자르까지 하루 동안 오르려면 반드시 남체에서 이틀은 쉬어야 한다. 하루 이틀간의 여유로운 일정을 갖고 출발하는 것이 지혜다.

다이아목스라는 이뇨제를 준비하는 것이 좋지만 신장에 무리가 갈수 있고 손발과 입 주변이 저리는 부작용이 있다. 심각한 고소증세가 나타났을 때는 효과가 없다. 3000m 등정 하루 전날부터 하루 한 알씩 먹고 정상에 오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복용하고 하산 때는 복용을 멈춰야 한다.

고소증 처방으로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미한 증세인 경우에는 같은 고도에 머물러 경과를 보거나 즉시 500여m 고도를 내려가는 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최선의 방법이다. 뇌수종 폐수종처럼 심각한 경우는 헬리콥터를 동원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하산해야 한다.

고소증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3가지 법칙.

1) 고소의 초기증세를 잘 숙지하고 이 증세가 나타나면 즉시 조치해야 한다. 자신이 원정이나 트레킹그룹 가운데에서 특이한 고소증세를 가진 유일한 사람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2) 고소증세가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더 높이 고도를 올려 자서는 안 된다.
3) 같은 고도에서 쉬어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으면 즉시 하산해야 한다. / 이평수

태그:#에베레스트, #로체, #희망원정대, #히말라야, #고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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