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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들의 식사를 책임진 왕추 사장과 주방요원들.
ⓒ 김창호

"고소에서 그래도 입맛을 돋우는 것은 누룽지입니다."

이번 원정대원들이 단연 최고로 꼽는 음식은 다름 아닌 누룽지다. 밥을 지으면서 불기에 약간 눌어붙은 누룽지와 숭늉물을 함께 먹는 우리 전통식 중의 전통식 누룽지. 히말라야에서도 여전히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베이스캠프에서 대원의 주식은 당연히 한국식이다. 한국식 밥이 우선인데 압력밥솥이 아니면 고도가 높아 밥을 짓지 못한다. 국내에서도 어지간한 산에서는 코펠 밥이 안 된다. 밥이 설거나 타거나 3층 밥이 되기 십상.

그래서 베이스캠프 주방에는 한국에서 가져간 압력밥솥 5개가 포진해 있다. 현지인 포터나 세르파용까지 하면 더 된다. 압력밥솥이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의 필수품인 셈이다. 베이스캠프를 떠나 C2(6400m)에도 압력밥솥을 가져가 밥을 짓고 누룽지를 만들어 먹는다.

고도 8500m, 먹는 게 고역이다

그러나 C3(7100m) 이상에서는 밥솥을 놓을 공간·연료·반찬운반문제로 압력밥솥을 쓸 수가 없다. 간신히 텐트 하나 설치할 공간에서 밥을 할 수가 없다. 대소변조차도 안전장치를 확보하고 나서야 볼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밥맛이 없어 먹을 수도 없다.

그래서 여기서도 누룽지가 위력적이다. 이번 정상공격에 앞서서 김홍빈 대원과 윤중현 대원은 C3의 비좁은 공간에서 그래도 누룽지를 끓여서 곡기를 달래고 출정했다. 대개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등정출발을 하기 때문에 입맛이 없어 누룽지가 제격이다.

고소에서는 누룽지마저도 입에 익기는 하지만 다 먹지 못하고 출발하기 일쑤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알파미'가 이용되기도 한다. 물을 붓고 약간 열을 가하면 먹을 수 있게 고두밥 형식으로 만들어진 고소용 대용식이다. 가져가지만 먹지 못할 경우가 더 많다.

고소에서는 먹는 일이 고역이라 대개 C3·C4쯤 가면 아예 차·라면 정도가 고작이다. 신체적으로 음식이 들어가지 않아 라면을 날로 씹어 먹기도 한다. 높은 고산에 길들여진 네팔 현지 세르파들도 못 먹기는 마찬가지. 밀을 볶아서 가루로 만든 네팔 식 미숫가루 '짠바'를 주로 먹는다.

고소에서는 먹는 것이 없으니 배설도 적다. 김홍빈은 C3에서 15일 아침 누룽지를 먹고 난 이래 정상등정 이후 19일 현재까지 한 번도 대변을 본 적이 없다. 물론 등정 이후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차 정도만 마시며 하산했고 19일 아침 겨우 쌀밥을 간신히 먹었다. 식욕은 있으나 몸이 받지를 않고 있다. 정말 8850m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일은 온 몸에 저축된 에너지를 완전히 태우면서 며칠간을 버틴다는 얘기다.

갈라진 빙하, 신선함을 부탁해

그래서 베이스캠프에서 잘 먹어야 한다. 베이스캠프에서 먹거리 준비는 5000m 이상을 올라와 식단을 짜야 하므로 보통 일이 아니다. 대개 시장에 가서 일괄적으로 구입하면 인스턴트식이 많아져 금방 대원들이 입맛을 잃는다.

그래서 대원들이 직접 집에서 먹던 기호식을 챙겨와서 함께 호강을 하기도 한다. 강연룡 대원의 장모가 사위 생각에 챙겨준 간고등어가 마지막까지 인기였다.

약 두 달 정도의 식사 관리는 푸드매니저가 전담해서 한국에서부터 시장을 보고 네팔 현지에서도 구입해서 조달하는데, 일이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카트만두에서 김치를 담가왔으나 신기할 정도로 김치가 전혀 맛이 없다. 처음에 깍두기 정도가 맛있었다. 다른 김치는 모두 시어져서 겨우 꽁치 김치찌개용으로밖에 대접을 못 받았다.

이번 우리 원정대는 각종 젓갈류와 생선건어물을 비롯해서 깻잎·풋고추부터 온갖 밑반찬을 입맛에 맞게 준비해서 베이스캠프에서 '한정식집'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번 원정대원들에게 인기를 모은 메뉴 4가지는 단연 누룽지, 삭은 홍어, 여수 산 서대찜, 쑥떡이다.

누룽지는 설명이 필요 없는 필수 메뉴였다. 삭은 홍어는 광주 해풍상사의 김 전무가 협찬했다. 서대와 쑥떡은 여수 태영수산의 정 사장과 배 사장이 완벽하게 말려서 진공포장을 해 신선하고 맛있는 서대찜 요리와 쑥떡 간식으로 입맛 잃은 대원들의 기호품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한국도로공사 손학래 사장과 임직원의 방문단 덕분에 돼지고기와 닭고기에 양고기·석류·오렌지·사과 등 신선한 과일과 배추·무·한국산 풋고추까지 특송해서 먹는 것이 비교적 풍족했다. 또한 카투만두에서 베이스캠프까지 비행기와 발 빠른 포터를 고용해서 공수했다.

이런 신선도가 필요한 부식은 자연냉동고에서 보관해 먹는다. 바로 빙하가 갈라진 틈이다. 식당 텐트 옆 빙하 크레바스에 줄을 달아 넣어 수시로 꺼내 먹는다.

이렇게 먹어도 살이 안 찐다, 왜?

5월 11일 저녁. 대원들이 출발한 날이다. 점심은 느닷없는 쫄면. 한 입 대고 까르마에게 건네주고 누룽지를 말아먹었다.

저녁은 일본 원정대의 주방일 경험이 있는 팍상이 준비한 돼지고기구이. 맛이 괜찮다. 거기에 삶은 계란까지 넣은 일본식 된장국까지. 반찬으로 오른 간고등어나 무우채가 오히려 빛을 잃을 정도다. 이구동성으로 '대원들도 없는데 너무 진수성찬 아니냐'고 한 마디씩 한다.

주방요원은 캠프2에 올라간 펨바를 빼고 리마 주방장과 4명의 주방보조가 달라붙어 요리를 한다. 대원 6명이 올라갔으니 한가할 수밖에. 그래서 각자 요리솜씨를 뽐내는 것 같다. 오늘 점심에는 까르마가 유럽식 야크 스테이크를 만들겠다고 예고다.

이렇게 베이스캠프에서 먹는데 살이 안 찐다. 이유는 추운 밤을 보내면서 에너지를 태우기 때문이란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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