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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업원정대의 쾌적한 식당 내부 모습.
ⓒ 김창호

에베레스트. 세계최고봉을 오르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약간의 여유가 있으면 이제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물론 여유라고 하면 두 달 정도의 시간과 6천여만원의 거금 수준이다.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아니지만 마음먹으면 한번쯤 꿈을 꾸어볼 대상이라는 말이다.

에베레스트에도 상업원정대의 바람이 거세다. 5월 6일. 봄 햇살이 매우 따스한 날씨다. 베이스캠프 텐트촌 의무텐트가 있는 중심가 공터에는 원정대원 뿐만 아니라 세르파 등 30~40여명이 모였다. 세르파와 원정대까지 포함한 '임시 국제회의'가 열렸다. '어드밴처 컨설턴트', '마운틴 매드니스', 아이엠지 등 소위 메이저급 상업원정대들이 주도해서 모인 베이스캠프 마을회의다. 안건은 에베레스트 사우스폴부터 발코니까지 로프를 까는 문제다.

상업원정대는 자신들의 고객을 위해 반드시 깔아야만 한다. 문제는 이들의 처지에서 무임승차를 어떻게 최소화하느냐다. 즉 자신들의 고객을 위해 깔아놓은 로프를 일반원정대원들이 공짜로 이용하는 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사전에 각 원정대들을 최대한 참여하게 해서 공동 작업을 하자는 것이다.

이 회의는 각 원정대가 무엇을 내놓을지를 결정하는 회의다. 메이저 상업원정대가 주도하고 우리를 포함한 16개 원정대가 참석했다. 우리 원정대는 막 로체봉 등정을 마치고 하산중이라 우리의 기여분 결정은 미루었다.

다른 팀들의 제안리스트를 보았다. 로프를 200m 내놓겠다는 팀부터 고산작업이므로 산소통(한 개 가격이 50여만원)을 몇 개, 세르파를 몇 명 보내겠다는 팀 등 각각 구체적인 안을 내놓았다. 다시 세르파 전체회의로 이어지면서 구체화한다.

상업원정대로서는 가능한 많은 기여를 일반원정대한테 받는 것이 목표. 자신들은 어차피 고객으로부터 몇천만원씩 받아두고 고객을 정상에 올릴 것이므로 철저한 영업활동이다.

장난삼아 "만약 아무 것도 안 내놓고 무임승차를 하면 어쩔 건데"라고 물었다. 상업원정대팀의 간사격인 마운틴 매드니스(Mountain Maddness)의 테디양은 즉답을 않는다. 달리 자체적으로 로프작업을 할 수 없이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경우, 전체회의에서 원정대의 어려운 사정을 미리 얘기하면 양해가 되기도 한다. 배 째라고, 안 내도 별 수가 없다. 8000m 고산에서, 로프 앞에서 입장료를 받고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 그러나 로프를 이용하고 사후에 알려져 사용료를 내는 경우도 더러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극지여행상품들... 문제는 돈

하여간 에베레스트 정상등정 과정에 단지 순수한 산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의 원리가 지배하기 시작한 상업원정대는 이미 현실이다. 자기 경제능력에 따라 에베레스트를 즐기겠다는 사람을 막을 논리는 없는 것 같다.

한 상업원정대의 광고 팸플릿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극지여행상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내용이 화려하다. 2007년, 2008년, 2009년 매년 3월 30일부터 6월 2일까지 8~9주 동안 에베레스트 등정에 산소 포함 6만달러, 초오유봉(8201m)는 1만8천달러, 가셔블롬II(8035m)는 1만8천5백달러다.

이뿐 아니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는 열흘 등반에 4천2백달러이며 21일짜리 남극여행 중에는 1만3천달러짜리도 있다.

한 상업원정대의 광고는 10년 전(1996년, 4가지)에 비해, 2006년에는 모두 23개의 원정상품으로 늘었다는 설명이다. 이 회사는 특히 지난 10년 동안 120개의 원정대를 꾸려서 3개를 제외하고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에베레스트에만 모두 100명 이상을 정상에 올려놓았다고 자랑하고 있다.

우리 대원 한 명도 7대륙 최고봉 상품인 '세븐서밋' 광고를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에베레스트 주변은 더욱 매력적이다. 200~300만원이면 6000~7000m급을 안전하게 오를 수도 있다.

마침 우리 텐트 가까이에 있는 한 상업원정대의 베이스캠프를 찾았다. 이들의 기상정보가 매우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어 정상 공격일의 날씨를 탐문하러 갔다. 따듯한 햇볕을 받고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세탁물을 빨아서 널고 있다. 정상등정을 위한 고객치고는 나이가 많다. 몇 마디 말을 걸었더니 즐겁게 받으면서 사무실 텐트를 알려주고 담당자를 소개해준다.

상업원정대 담당자는 두루뭉술하게 날씨가 좋을 것이라고 대답해준다. 이 원정대는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해서 남들이 로프 작업을 다해 놓으면 원정에 나선다고 눈총이다. 이 상업원정대에는 모두 9명의 등정신청자가 있었으나 그 가운데 한 명이 포기하고 8명이 등정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며칠 후 다시 들른 이곳은 고객들로 붐비는데, 정상등정 일자를 더 안전한 24~25일로 미루었다고 한다. 식당 벽에는 스태프들의 사진이 있다. 본사 파견 직원 2명을 포함해 약 30여명의 사진이 붙어 있다. 고액의 등산료를 낸 손님 8명에 세르파가 20여명이다. 고객이 혼자 설 수만 있으면 2~3명의 건장한 세르파가 떠메고라도 정상에 올리겠다는 기세다. 세르파들은 정상경험이 몇 번씩 있는 베테랑이다. 한 세르파는 벌써 대여섯 번 에베레스트 정상에 갔다 왔고, 한국 산악인들의 이름을 줄줄이 왼다.

식당 텐트를 들여다보았다. 손을 깨끗이 씻으라는 표기를 보고 들어서면 일반 중산층 가정의 식당을 옮겨 놓은 듯 넓고 쾌적하다. 깔끔한 식탁 위에는 온갖 소스가 가득하고 의자엔 두툼한 보온용 커버가 씌워 있다. 평균 실내 온도를 영상 20도로 유지한다는 소문이다(우리 원정대 텐트 실내최저온도 영하 10도). 호주 와인과 각종 음식 등이 갖춰져 있다. 샤워용 텐트가 마련되어 있고 부엌에는 온수용 보일러가 있다. 캠프2로 올라가면 좌변식 화장실도 있다고 한다.

상업원정대는 돈에 여유가 있으면서 세계 최고봉에 오르려는 특수한 몇 명의 손님을 위해 나선 별난 사람들이다. 미국의 영화사업자인 브레셔스(에베레스트로 돈벌이에 성공한 첫 클라이머)는 1985년 미국 텍사스의 백만장자 사업가인 딕 배스(Dick Bass, 55)를 정상에 세웠다.

당시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자로선 최고령자였다. 이 성공은 에베레스트 등정 역사에 변화를 주었다. 상업원정대 태동의 결정적 전기가 되었다. 상업원정대가 이런 큰 산에 오르는데 자기가 가진 돈을 쓰겠다는 고객을 잡고 이에 자극받은 수요에 충족하려고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지금은 뉴질랜드, 미국을 배경으로 한 굵직한 상업원정 전문회사가 성업 중이다.

태그:#에베레스트, #상업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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