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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위기-눈사태] 피해는 적었지만, 안 좋은 징조

첫 번째 위기는 정상등정 하루 전. 하룻밤을 보낸 C3캠프에 3일 아침 일어난 눈사태다. 출발준비 중인 이날 5월 3일 아침 5시 반경 갑자기 대원들 텐트를 눈이 밀어붙인 것.

소위 '판상 눈사태'. 간밤에 내린 눈이 기존 얼음 위에서 쌓여 있다가 무게를 못 이겨 미끄러져 덩어리째 우리 텐트를 밀고 들어온 것. 김미곤 쪽이라 일단 몸으로 막았다.

일반 눈사태는 가속도가 붙어 순식간에 쓸려 내려가지만 다행히 이번은 약했고 텐트를 강하게 고정해서 휘어지는 정도로 그쳤다. 김미곤은 몸으로 눈을 밀치면서 세르파에게 시켜 눈덩이를 찍어내렸다.

문제는 기분. 눈이 텐트를 덮쳤다는 것은 안 좋은 징조다. 세르파 대부분은 필시 포기할 것으로 지레짐작하는 눈치다. 눈사태는 '신의 암시' 정도로 겁먹으며.

20~30분간 텐트 안팎을 정리하고 베이스캠프에 눈사태 소식을 알렸다. 대원들은 세르파의 동요를 막기 위해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등정 계속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고소 때문에 하산을 결정한 박남수는 "내가 정리하마"라며 계속 진행하도록 격려했다. 텐트 안을 정리하던 김미곤과 윤중현은 밖에 있던 강 대장과 출발을 결정했다.

이 때가 오전 6시경이다. 에베레스트와 동시등정 계획이 아니었으면 포기하고 하산했을 순간이었다.

▲ 로체 페이스를 힘겹게 오르고 있는 대원과 세르파.
ⓒ 김창호
[두 번째 위기-조난위기] 사람들이 사라졌다, 어쩌지?

눈사태를 수습하고 3일 오전 8시경 김미곤과 윤중현은 출발했다. 높은 고도라 추위를 예상 원피스 우모복을 입었으나 햇볕이 쨍쨍 나면서 평지의 6배라는 눈밭의 복사열이 괴롭혔다.

이른 아침부터 눈사태를 처리하느라 겨우 차 한 잔 마시고 출발한 터. 허기도 지고 경사도 50~60도의 청빙구간을 아이젠을 찍으면서 오르는 것은 중노동이었다.

무엇보다도 세르파 왕추가 하산하는 바람에 그 짐을 나눠진 대원들 짐무게가 15㎏에 육박했다. 고산에서의 무게감은 옷에 재봉틀로 붙인 마크무게도 느껴질 정도라는데 설상가상인 셈이다.

그간 원정공백이 있는 윤중현이 자꾸 처진다. 김미곤은 앞에서 가다 쉬기를 반복하면서 윤중현과 보조를 맞추었다. 의욕을 북돋우면서.

어느덧 오후 4~5시경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면서 로프가 묻혀 보이지 않는다. 앞서가던 사람들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화이트 아웃(White Out)' 현상(등반 도중에 눈과 안개 때문에 순간적으로 방향 감각을 상실하는 현상으로 평원에서도 잦다)이다.

직감적으로 에베레스트 가는 길과 갈림길인데 강 대장과의 무전도 불통이다. 뒤에 밝혀진 바로는 강 대장과 세르파들도 탈진 직전의 피로 때문에 무전기를 켤 생각조차 못했던 것.

산행 경험이 많은 김미곤은 이 순간 비상대피-조난당한 것으로 보고 로체쪽으로 무리하게 움직이기보다는 기존 로프가 깔려 있는 에베레스트 사우스콜 쪽으로 올라가서 빈 텐트를 찾아 긴급대피하는 것-를 염두에 둘 정도로 피 말리는 20~30분이 흘렀다. 최대의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내 눈발이 그치면서 시야가 트였다. 멀리에 노란 텐트와 세르파 도로지의 움직임이 보였다. 가장 긴 하루가 안전하게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세르파 왕추의 하산으로 15㎏를 분담해 체력 소모가 극심했고, 눈사태로 아침을 거른 데다 늦게 출발한 것이 화근이었다. 다행히 결과는 해피엔딩. 오후 6시 30분. 김미곤 윤중현은 C4에 무사히 도착했다.

[세 번째 위기: 갈림길] 정상까지 1시간 20분, 왼쪽? 오른쪽?

▲ 눈사태를 맞기 직전의 캠프3 텐트.
ⓒ 김창호
텐트에서는 눈을 녹여서 물을 끓이고 라면으로 허기를 달랬다. 극도의 피로가 오면 아예 음식을 입에 댈 수도 없는데 다행히 라면이 넘어갔다. 허기를 달래는 정도의 식사량은 라면 1봉지를 셋이 나눈 정도.

비좁은 텐트는 6명의 대원과 세르파가 서로 무릎을 엇갈리게 앉은 자세로 순간순간 고개를 떨구는 잠에 빠진다. 그러나 긴장감으로 깊은 잠은 불가능 상태. 무의식 중에 연신 시간을 본다. 밤 10시다. 준비할 시간이다.

정상 공격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6개의 배낭과 삼중화와 사람이 뒤죽박죽으로 얽힌 텐트 안에서 개인장비를 챙기며 준비하는 데는 1시간이 족히 걸렸다. 밤 11시 40분 출발. 이제는 정상 공격이다.

달빛을 받으면서 무릎 아래까지 빠지는 설원을 오른다. 강 대장과 막내 세르파 밍마가 선두에서 러셀(눈길을 걸을 때 선두가 눈을 다지며 길을 열어주는 것)해준 길을 따라 묵묵히 걸었다. 정상 부근까지 장장 8시간이 흘렀다.

단 한 번도 쉬는 시간이 없었다. 비상식량으로 파워젤(스포츠 에너지 젤)하고 에너지 분말(선식같은 음료수)를 가져갔으나 그대로 남았다. 여기서 산소의 사용이 주효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무아지경으로 전진해 갔다.

해가 밝았는데도 모두의 헤드렌턴은 그대로 켜있을 정도다. 로체봉 정상은 어렴풋이 새벽 4시경부터 보이기 시작했으나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오히려 정상이 보이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다.

새벽 5시경. 두 시간쯤 더 가면 정상에 이를 것 같다는 무전이 베이스캠프로 온다. 그러나 오전 7시. 김미곤과 강연룡은 갈림길에 혼란에 빠진다. 눈 사이로 나와 있는 로프가 왼편과 오른편으로 나 있다. 어디로 갈 것인가. 눈이 너무 덮여 있어 방향이 헛갈린다.

베이스 캠프로 무전했다. 베이스와 C2에서는 왼쪽으로 가라고 한다. 강 대장이 오른편으로 10여m 더 가 보았다. 아니다. 진행하면 로체남벽 낭떠러지. 이윽고 왼편으로 방향을 잡고 진행했다. 여기서부터도 빤히 보이는 정상까지 1시간 20분이 걸렸다. 정상에 올랐다.

[네 번째 위기: 목숨건 하산] '아, 또 한 놈 보내는구나'

정상에서 1시간여가 훌쩍 흐르고 하산이다. 30여분이 흘렀을까. 강 대장의 비명 소리. 설사면에서 세르파 작은 도로지가 미끄러진 것. 정상에서 하산하기 전에 세르파더러 오래된 로프를 잘라 내려가는데 활용하자고 했는데 이를 무시하고 줄도 없이 세르파들이 먼저 내려갔다. 그러다가 작은 도로지가 추락했다.

작은 도로지는 피로감에 앉으려다가 미끄러지면서 추락했다.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 가속도까지 붙어 내려갔다. 밑에 있던 밍마가 도로지를 잡으려 했으나 놓쳤다. '아, 또 한 놈 보내는구나'라는 생각이 악몽처럼 강 대장의 뇌리를 스쳤다. 다행히 10여m 굴러가다가 눈밭에 걸렸다.

윤중현도 하산길에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졸음이 가장 두려웠다고 한다. 순간순간 자신이 졸고 있는 것을 느낄 때는 소름이 끼쳤으나 대책이 없더란다. 강 대장도 하산길이 더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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