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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07 한국도로공사 에베레스트 로체 원정대'의 기록이다. 원정대(대장 박상수)는 3월 28일 한국을 떠났으며, 4월 9일경 베이스 캠프를 설치한 뒤 '에베레스트' 등반대와 '로체' 등반대로 나뉘어, 4월 11일경 동시에 등반을 시작했다. 원정대는 지난 4일 로체봉 정상 등정에 성공했으며, 16일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까지 마쳤다. 이 원정대에는 지난 90년 맥킨리 단독등정에서 사고를 당해 열 손가락을 잃은 김홍빈씨가 부대장으로 대원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이 기사는 원정대 홍보담당대원으로 따라간 이평수 기자가 현지에서 직접 작성해 송고한다. 이 기자는 원정대가 귀국할 때까지 원정대의 일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편집자주>
▲ 정상에 오른 김홍빈(좌)·김미곤 대원.
ⓒ 김창호

"더 이상 걸어갈 곳이 없습니다. (김미곤 대원)"
"대장님 정상입니다. 감사합니다. (김홍빈 대원)"
"정상입니다. 곧 내려가겠습니다. (윤중현 대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눈 아래 하얀 설봉을 거느린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 그 정상에 오른 '희망을 위한 2007 한국도로공사 에베레스트 로체원정대' 김미곤, 김홍빈, 윤중현 대원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무전으로 알린 일성들이다.

기록상으로는 5월 16일 아침 8시 34분(김미곤), 10시 39분(김홍빈), 11시 45분(윤중현)에 올랐다. 또한 김미곤·윤중현은 이번 에베레스트 등정으로 지난 4일 시즌 초등한 로체봉(8501m) 정상 등정에 이은 2개 봉 동시등정이다.

인간의 겸손과 헌신과 협동을 요구한 드라마. 에베레스트는 역시 세계 최고봉이다. 결코 호락호락 정상을 허용하진 않았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장애를 가진 김홍빈과 함께 정상정복에 이르기까지 길고도 긴 시간이 걸렸다.

열 손가락이 없는 김홍빈을 정상에 올리는 데는 함께 정상에 선 윤중현·김미곤 대원을 비롯 박남수·김주형·김창호·강연룡 대원의 눈밭에서 로프를 깔아주고 짐을 올리고 체온을 나누는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드라마다. 산사나이들의 목숨을 건 도전을 압축했다.

15일 단독 정상공격 시도, 그러나 실패

원정대원들은 11일 베이스캠프를 출발해서 C1 C2에서 거친 바람을 견디며 사흘을 보내고 14일 본격적으로 준비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히려 며칠 쉬면서 몸이 뻐근하기까지 했다. 순조롭게 C3로 오른다.

그러나 14일 오전 중대한 작전 변경이 생겼다. 공격일을 15일로 하루 앞당기기로 했다. 당초 공격 예정일인 16일 날씨가 나빠질 가능성이 있어 미리 우리 팀 자체로 로프작업을 할 필요성 때문이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우리가 로프를 깔고 가서 에베레스트 정상을 올라보자는 야심찬 공격 작전이다. 정상 부근의 로프작업은 워낙 힘들어 원정대마다 서로 기피하는 일 중 하나. 여기에는 우리가 지난 5월4일 로체봉(8501m) 등정에서 우리 원정대만의 힘으로 올랐다는 자신감도 작용했다.

오전 9시경 C3에 도착한 김창호 김미곤은 오전 10시경 사우스콜(7906m)로 직행하기로 했다. 베이스캠프에서는 김홍빈을 위해 미리 길을 낸다는 것이므로 적극 지원했다. 1차로 김창호·김미곤이 로프를 깔고 올라가고 2차로 김주형·김홍빈·윤중현이 치고 올라가는 것이다.

베이스캠프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창호·김미곤은 사우스콜로 올라갔다. 8300m 부근까지는 로프가 깔려있으나 그 이후부터는 로프가 없다. 우리 대원들이 로프를 깔고 정상을 오르고 그 로프를 이용해 김홍빈을 비롯한 2차 공격조가 오르자는 것이다.

만약 16일 공격에서 전 대원이 동시에 C4에서 오르다가 로프 없는 구간이 나와 로프를 설치하며 오를 경우 시간낭비와 체력소모가 우려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공격일자를 수정한 것이다.

관건은 날씨다. 14일 저녁과 15일 저녁까지는 날씨가 양호하다. 그러나 15일 밤부터 16일 아침까지는 일부 기상예보에 의하면 바람이 거세다고 하고 잠잠하다고도 한다. 인도 공군 산악대로부터 날씨정보를 얻었다. 날씨는 해볼 만 하다.

식사도 휴식도 없이... 결국 일보 후퇴

김창호·김미곤이 C4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경. 뒤늦게 C2에서 출발한 밍마가 저녁 7시 30분쯤에 도착하는 바람에 두 대원은 정상공격을 위한 식사 및 휴식을 충분히 취하지 못했다. 밍마가 코펠·버너·매트리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

밤 10시경 차 한 잔만 마시고 김창호·김미곤은 사우스콜(7906m)을 출발하고 15일 새벽 2시쯤 로프가 끝나는 구간에 도착, 3시간 동안 로프작업을 해 발코니(사우스콜과 에베레스트 정상 사이의 중간지점) 근방까지 갔다. 그러나 청빙구간이 나타났다. 바람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자기를 한 시간 동안 발코니에서 쪼그리고 졸면서 기다렸다. 그러나 피로감과 졸음이 더해왔다. 바람은 여전히 강했다.

정상 부근의 로프작업은 워낙 힘들어 원정대마다 서로 기피하는 일 중 하나. 우리 대원들은 눈치보고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개척하려 했던 것이나 후퇴를 할 수밖에 없다.

김창호는 "더 이상은 위험하니 내려가서 내일의 기회를 보자"고 했다. 김미곤은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너무 아깝고 에베레스트 남봉(8750m)까지만 올라가면 아침 9시경에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설 수 있는데"라며 망설였다. 그것도 이번 시즌 초등기록을 우리가 세우는 것이라는 욕심도 미곤의 머리에 맴돌았다.

한동안 김미곤은 김창호의 하산종용을 못들은 체 하며 버텼다. 그러나 체력적인 고려와 날씨로 하산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등반 도중 중요한 결정은 선배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관례다.

새벽 5시가 넘어 동이 트는 것을 보며 하산을 시작, 오전 7시 50분께 사우스콜로 복귀했다.

후퇴 결정의 결정적 이유는 전날 오후 C4에서 추위에 떨며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휴식도 없이 올라간 것이다. 선배결정을 따르는 것이 현명했던 것 같다. 피곤했다. 캠프4에서 한 모금 한 모금 더운 물을 넘기는 사이에 고개가 앞으로 절로 떨구어질 정도였다. 피로에 푹 쓰러졌다 눈을 뜨니 오후였다.

16일 아침, 협동 공격에 성공하다

작전 수정이다. 외국원정대들과 로프작업을 공조하는 것이다. 김창호·김미곤이 C4에서 자다깨다 15일 낮을 보내는 사이에 C3에서 대기 중이던 대원들이 C4로 속속 올라왔다. 5월 15일 저녁 7시. C4에는 김주형·김창호·김홍빈·윤중현·김미곤이 모였다. 에베레스트 공격을 위한 우리 원정대의 정예멤버들이다.

그런데 기류가 이상하다. 자력 공격작전 실패 때문이다. 김창호·김미곤의 무리한 돌진과 후퇴에 따른 후유증이다. 지나친 자신감이 오히려 약간의 무기력증으로 흐르는 것 같다. 대원들 사기 측면에서는 대단한 위기다.

대원들 분위기는 C2로 내려가 며칠 쉰 후에 재공격하자는 생각들이 많은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관건은 정상으로 가는 길에 로프작업이 안 되어 있다는 상황이다.

김창호·김미곤의 1차 정상공격 실패 이후 자체적으로 로프를 깔고 공격해 나가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두 대원과 세르파 밍마 도로지의 체력소모도 큰 손실이다. 하루 만에 이들 멤버의 체력회복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여기에 C3에서 C4에 올라 온 대원들의 도착이 늦었다. 그들도 약간은 피곤한 상태다.

마침 저녁 7시경 외국원정대가 우리 캠프로 로프작업을 위한 세르파 지원을 부탁하러 왔다. 그런데 그 쪽 세르파의 숫자도 3명뿐이라고 한다. 우리가 1명을 도와준다 해도 고작 4명의 전력이다. 크게 도움이 안 된다.

C4 저녁회의에는 침묵이 흘렀다. 김홍빈이 침묵을 깼다. 양손에 장애가 있어 그동안 원정대에서는 김홍빈에게 전담 세르파 싼누를 붙여서 그림자 수행을 해왔다. 김홍빈은 "로프작업에 싼누 세르파를 보내고 올라가자"고 했다.

조용하다. 즉 여전히 분위기는 미루자는 게 대세다. 로프를 깔면서 단독 정상 공격은 역부족이라는 인식이다.

몇 가치의 담배... "물러날 데가 없다"

날씨 정보를 제공해준 인도공군 산악대

이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에베레스트 등정을 며칠 앞두고 D-데이를 15일과 16일로 잡고 온 신경을 날씨에 맞추고 있었다. 인터넷 날씨정보를 얻어 보았다. 상업원정대로부터 날씨정보도 수집했다. 그러나 두루뭉술 하다. 우리 네팔측 대행사 왕추 사장이 우리 텐트 부근에 인도공군(IAF) 원정대가 있다고 했다.

어느 날 우리 텐트로 두 명의 장교를 데려왔다. 영어도 어눌하고 초라한 행색에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그러나 인터넷상으로 자신들이 본부로부터 날씨 정보를 받아서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의 이메일 주소를 받아갔다.

다음날은 산악대장과 다른 한 장교가 왔고 그 다음에는 한 장교와 또 다른 장교가 와서 본부와 전화통화까지 해서 성의껏 날씨정보를 제공했다. 원정대장 트리파티(TRIPATHI 43세) 3000번 이상 낙하경력이 있는 교관으로 영어에 능통하고 유머가 뛰어났다.

한 장교는 수호이기 네비게이터이고 다른 한 명은 미그전투기 조종사로 로체봉 원정대장이다. 공군 산악대는 자원자 단체로 정식 근무를 하면서 일 년에 한 달 정도 원정을 다닐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인터넷상으로 인공위성 구름사진을 보내주고 상세히 설명까지 해 주었다. 위성전화 사정으로 통신문제가 있자 자신들이 본부에 전화를 걸어 일일이 고도별 날씨, 즉 풍속·기온· 눈·비 가능성을 아침 낮 저녁까지 세분해 펜으로 일일이 적어서 메모를 전달해 주었다.

그것도 부족해서 다음날 아침 9시에 날씨정보를 새롭게 고쳐주겠다고 하면서 간다. 그들이 우리에게 부탁한 것은 우리가 가져온 로체봉 원정보고서 정도였다.

트리파티 원정대장은 "산에서 서로 돕지 않으면 어떡하나, 나눌 수 있는 것은 돕자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라고 한다. 우리가 등정을 시도한 15일의 날씨 메모는 그대로 들어맞았다. 이들 공군산악인들은 내일 로체봉을 향해 오르고 24~25일 정상등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로체봉을 이미 등정한 김미곤 대원은 C4에 두고 온 텐트캠프를 사용하도록 하고 정상 부근의 다양한 등반정도를 주고받았다. 헤어지면서 나는 그 미그전투기 조종사이며 로체봉 원정대장인 나렌더에게 방한 우모복 상의를 고마움의 표시로 주었다.
이 때 베이스캠프 박상수 대장과의 통화가 이뤄진다. 대원들로부터 공격을 다음으로 미루자는 의견을 접한 박 대장은 잠시 침묵했다.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미룬다면? 다시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데는 또 며칠이 걸릴 것이고 그사이 대원들의 체력 소모도 크게 된다. 박 대장은 담배를 거푸 몇 대 태우고 나서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무전기를 잡았다. 박 대장의 입에서는 단호한 최후통첩이 무전기를 타고 C4에 전달된다.

"물러날 데가 없다. 오늘로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은 정리하자."

즉 오늘밤 공격명령이다.

이 결정에는 베이스캠프에서의 다양한 정보수집을 근거로 했다. 한 외국원정대도 오늘 밤 공격결정을 했고 준비도 다 되었으므로 우리는 그들과 보조를 맞추면서 올라가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

마침 인도공군 산악대의 친절한 기상정보도 손에 들어와 있다. "날씨는 맑다. 바람은 약간 있으나 견딜만하다. 눈보라도 3~4시간 내릴 것이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런 기상정보를 충분히 김미곤에게 전달했다.

C4대원들 회의는 일단 대장 뜻을 따르기로 하고 마감했다. 출발은 밤 9시경. 김미곤은 세르파들을 종용, 가져갈 물을 끓이도록 했다.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대원을 제외하고 김홍빈과 이를 뒷받침할 윤중현과 김미곤이 나섰다. 모두 3명의 정상공격조가 구성되는 순간이다.

세르파 밍마는 일찌감치 로프작업조로 외국원정대와 손을 맞추라고 보냈다. 지난 회에서 소개한 바 있는 23세의 유망한 세르파 밍마. 이미 로체 등정도 했고 매사 적극적이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녹초가 된 상태. 특별한 인센티브(등정 보너스와 다음 원정 때 고용의사)를 주기로 했다.

드디어 준비 완료, 에베레스트를 향해 걷는다

드디어 준비가 끝난 밤 11시. 김미곤·김홍빈·싼누·윤중현 순으로 올랐다. 김미곤은 "솔직히 올라갈 때 심적 부담이 컸다, 중현 형은 로체등정 이후 체력이 바닥난 상태고 장애를 가진 홍빈 형을 생각하니 혼자 올라간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인도공군 기상예보대로 밤새 눈발이 내렸다.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가는 세르파와 외국원정 대원들도 보였다. 3명의 대원이 발코니(8500m)까지 도착하니 새벽 5시쯤이다. 앞선 세르파들의 로프 작업을 김미곤이 돕기 위해 치고 나갔다.

중간 중간에 로프작업이 안 되어 있는 위험한 구간은 눈 밑에 묻힌 로프를 꺼내서 연결시키며 나아갔다. 작업 중이던 네팔 출신 세르파들이 김미곤을 세르파로 착각하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김홍빈도 발코니에 올라서서야 비로소 가능성을 확인했다. 김미곤 자신도 남봉에 올라가고 나서야 성공을 예감했다. 오전 7시 15분경이다. 베이스캠프에 무전을 보냈다. 남봉부터 정상까지는 얼음과 눈 능선 부분이다.

여기서부터 위험 구간은 로프작업을 두었다. 정상이 보이지만 로프작업으로 전진이 느리다. 대원들도 남봉 급경사를 타느라 느리다. 그렇게 1시간여가 흘렀다. 앞에서 가는 세르파 10여명의 발자국으로 러셀이 되어 있으나 눈이 계속 내려 한발 한발 떼기가 어렵다.

드디어 정상이다. 오전 8시 24분이다.

뒤따르던 대원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린다. 밍마를 내려보냈다. 혹시 모를 포기를 막기 위해서. "형들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산소가 부족할 것에 대비해서 흡입량을 최소화했다. 쪼그리고 앉아 티벳 쪽 경치를 구경하며 시계를 수시로 보았다. 한 시간이 흘렀다. 안 보인다. 겁이 서서히 난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정상에서 쓰러진 홍빈이 형의 눈물, 나는 그가 자랑스럽다

▲ 힐러리 스텝을 오르는 클라이머들.
ⓒ 김창호
두 시간이 다 되었을 쯤. 아래에서 올라오는 김홍빈과 세르파 싼누가 보인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천근같이 올라오는 것 같다. 정상에 도착한 김홍빈은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푹 쓰러진다. 무전기를 갖다주어도 잡지도 못하고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 죽을 힘을 다해 올라온 홍빈이 형이 자랑스럽다.

그는 "장애인인데도 이렇게 도와주어서 고맙다, 이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다, 희망이 보인다"고 더듬더듬 말했다. 김홍빈과 김미곤은 작년 가을 가셔브롬II 등정을 함께 했던 인연이 있어 이번 에베레스트 등정이 더욱 뜻깊다. 그러나 김홍빈은 세계최고봉이라서 그런지 등정을 훨씬 힘들어했다.

그리고 또 윤중현을 기다린다. 정상에는 이제 우리 두 대원뿐이다. 1시간쯤 기다리는데 멀리서 빨간 옷이 보인다. 촬영을 담당한 윤중현은 남봉을 오르고 나서 캠코더를 꺼냈다. 정상이 보이는 힐러리스텝(정상에 거의 다다른 지역에 있는 7~8m의 가파른 바위턱) 에베레스트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이어서다. 30분간 김홍빈의 등반 모습을 잡았다. 외길이라 하산하는 외국원정대의 통과를 기다렸다.

김미곤은 김홍빈의 뭉툭한 손목을 잡았다

밍마로부터 김미곤이 기다린다는 소식과 정상이 1시간 30분 정도 안에 있음을 알고 마지막 힘을 냈다. 도착시간이 너무 늦으면 포기할 뻔했으나 이 속도면 12시 이전에 정상에 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기를 쓰고 발을 떼었다. 한편, 11시를 넘기면서 베이스캠프에서는 윤중현의 하산 결정을 마음먹고 있었다. 다행인지 윤중현에게는 무전기가 없어 알릴 방법이 없다.

11시 30분경 정상에서 3시간째 기다리고 있던 김미곤의 눈에 윤중현이 비틀비틀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두세 걸음 걷다 쉬고 걷다 쉬면서 올라온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정상에 도착한 윤중현은 "기다려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7년의 공백을 딛고 로체와 에베레스트를 동시 등정한 윤중현이 자랑스럽다. 서둘러 사진 찍고 12시 10분 하산했다.

하산하는 길. 김미곤은 김홍빈의 뭉툭한 손목을 잡았다. 눈 아래 깔리는 히말라야 설산을 내려 보면서 또 한 번의 '아름다운 동행'을 기약했다.

산에서 하늘로 간 현조·희준에게

▲ 사고 직전날 자신이 오를 남서벽을 올려다보고 있는 고 이현조 대원의 생전 모습

* 5월 16일 새벽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 등정도중 산사태로 유명을 달리한 이현조 오희준 대원의 명복을 빌며

너의 체온이 녹이고 간 푹 꺼진 빈자리를 본다.

17일 새벽이다. 너희의 숨결이 에베레스트의 설산 속으로 날아 들어가고 난 다음날이다.
어제는 바람과 잔 눈발이 텐트를 뒤흔들더니
오늘은 에베레스트가 시치미를 떼는 양 얄밉도록 조용하다. 포근하기까지 하다.
간밤에도 눈사태 소리가 몇 번씩 잠을 깨우더니
여명은 말없이 그렇게 아이스폴 사이로 밝아 오는구나.
여전히 주방에서는 또 하루를 시작하는 불 지피는 소리가 나고.

현조 희준야, 너희가 정상의 파란 꿈을 꾸었던 노란 텐트가 어제 말없이 접히더구나.
나는 차마 그 광경을 끝까지 쳐다볼 수 없었다. 치우며 눈물을 흘리던 후배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무슨 말 한 마디 건넬 수도 없었다.
그냥 고개를 돌려 에베레스트 쪽 너희가 가버린 아이스폴만 한 없이 한없이 쳐다보았다.

오늘 새벽 눈을 비비고 나왔다. 또 너의 체온이 녹였을 푹 꺼진 텐트자리를 본다.
너의 체온이….
(아,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푸모리봉이 이고 있던 눈을 또 털어내는구나. 한 30초를 그 우르르르 소리가 마음을 짓누른다.
그토록 볼만한 장관이더니 너를 잃고 난 후는 이리도 무거워지는구나)

현조야, 나는 너희들을 여기에 와서 보았다.
30대 중반의 노총각들로 그동안 수없이 사선을 넘으며 여러 좋은 봉우리를 올랐다지.
루팔벽 오른 얘기에 빠지던 모습, 신실한 너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혼자 캠프를 지키던 너를 저녁에 불렀더니
전라도산 반찬 누룽지 된장국에 밥을 세 그릇이나 비우던 너의 모습이
어제 나를 많이 울렸다.
그것이 너와 나의 짧은 인연의 마지막이었구나.

그러다 8000m 고산에서 누구도 닿지 않았던 에베레스트의 가슴을 안고
너희는 눈을 만났더구나.
길지 않은 청춘을 너희는 그렇게 장렬하게 산 속으로 날아가 버리는 구나.
너희에게 지워진 '한국 산사나이 차세대'라는 이름이 그리 무겁더냐 .

에베레스트를 오르던 길,
투클라에서 흰 가다(무사함을 빌고 성공을 기원하며 목에 걸어주는 흰 비단)를
날리던 에베레스트 초르텐(네팔식 화장 돌무덤)에
현조와 희준을 기릴 줄은 몰랐다.
이 곳 산에 오니 살고 죽는 것이 바로 우리 코앞에 있더구나.
그래도 30대의 창창한 현조 희준이를 보낼 줄은 몰랐다.
헛되고 헛되구나. 세상만사 속절없이 무엇이라 말할 길 없구나.
아, 어차피 우리는 바람을 잡으려고 했는가.
현조 희준, 너의 새 아침은 누구랑 불을 지피고 있느냐.
현조야 왜 말없이 누워만 있느냐.
그 한 없이 넓고 넓은 표정으로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느냐.
너의 체온이 녹이고 간 푹 꺼진 빈자리를 본다.
그 자리에 너희의 꿈, 너희의 바람이 눈과 함께 말없이 쌓이고 있구나.
잘 가거라.
현조야 희준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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