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카투만두 도착 이틀째. 두 달 간 먹을 김장을 하는 날이다. 장비구입 등 여러 일을 분담했는데 기자는 김치 담그는 일을 자원했다. 네팔에서 한국 맛의 정수인 김치를 만드는 일이라 그 과정을 참관하고 싶었다.

김치는 산행에서 입맛을 돋우는 필수품 중에 필수품. 장정 20여명이 두 달 동안 먹을 양이니 그 양도 만만치 않다. 5인 가족 4가구에서 겨울철을 날 정도의 김장을 해야 한다.

양이 많아 항공료 때문에 한국에서 공수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네팔의 야채가 신선하고 무공해로 맛이 괜찮다. 한국에서 담아가지고 온다 해도 긴 시간 동안 시지 않게 보관할 방법도 없다. 그래서 카투만두의 한국식당에서 주문하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담기로 했다.

▲ 현지 배추로 담그는 김치 200kg
ⓒ 이평수
네팔인 요리사가 직접 김치를 담그다

새벽 5시 30분. 시장에 나가 배추 150kg, 무 110kg, 갓, 파 25kg, 마늘 45kg, 양파60kg에 조미료, 생강, 부추, 당근 등을 구입했다. 우리 돈 20만원 가량 야채 구입비로 들었다. 매우 저렴한 수준이다. 일단 구입한 야채를 현지 여행사 사장집 안마당으로 옮겼다.

네팔인들이 배추 무를 먹는 것은 그렇다 치고 갓을 발견하고 놀랐다. 내 고향 여수 돌산에서 나는 특산품 갓을 네팔 카투만두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네팔인들은 갓을 카레에 고기 감자와 섞어서 먹는다고 한다. 톡 쏘는 갓의 맛이 카레와 어울릴 것 같다.

김치 담그기는 베이스 캠프에서 주방을 맡을 네팔인 요리사 리마가 지휘했다. 주방장 리마는 98년 마나슬루 한국원정대의 키친보이로 시작해서 카투만두 한국식당의 요리사로부터 한국요리를 배웠고 수년째 원정대 주방장 일을 보고 있다. 원정대와 같이 갈 주방보조원들 대여섯과 동네 아낙네들까지 10여명이 달라붙었다. 좁은 슬라브집 안마당이 잔치집마냥 사람으로 붐볐다.

우리 원정대의 행정식량담당 김미곤과 이석희가 리마에게 오후 3시까지 김치로 만들어내라고 다그친다. 대개 원정초반이니까 요리사들 군기 잡는 것이려니 했다. 현지고용인인 능력이 천차만별이지만 부리는 기술도 필요하다. 세르파와 주방요원 쿡은 철저히 주종관계로 군기를 단단히 잡아두어야 한다. 그래야 극한 상황에서도 내팽개치고 하산해버리거나 산행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다.

대개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인정 많은 한국원정대나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일본원정대에는 종종 파업이 있다. 오히려 철저하게 계약관계로 쿨하게 대하는 유럽원정대가 현지 세르파나 쿡들을 잘 부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배추김치, 갓김치, 파김치 등이 무려 200kg

김치얘기로 돌아가자. 도대체 무슨 재주로 3시까지 저 많은 양을 김치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리마의 김치 담그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리마는 날렵한 칼솜씨로 김장용 양념을 만들었고 오전에 산더미같이 쌓아진 배추, 무, 갓이 점심때도 안 되어서 소금이 뿌려지고 오후 2시쯤 소금기를 씻어냈다. 실로 순식간이었다.

리마의 일사분란한 지휘 속에 엄청난 양의 배추, 무, 파, 갓이 대거 인부들이 달려들어 인해전술방식으로 김치로 변했다. 그것도 배추김치, 갓김치, 파김치, 부추김치, 깍두기김치까지 200Kg 정도로.

김치는 이동이 쉽게 플라스틱 통 5개와 작은 반찬통에 분리해서 담았다. 큰 통에 든 김치는 베이스캠프에서 전 대원들이 두 달간 먹을 양이고 작은 반찬통은 10일 정도의 상행 캐러밴 기간 동안에 먹을 양이다.

애초에 기자가 김치 만들기 조를 자원했던 이유에는 네팔인들이 자기들이 먹을 김치가 아니니 소홀히 할까 싶어서였다.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보았다. 왕년에 군대생활 할 때 식당사역 나가면 삽 들고 장화신고 올라가서 김장했던 아주 입맛 없는 기억들이 남아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기우였음이 확인되었다. 소금으로 숨이 죽은 배추 무를 거의 10번은 헹구는 것 같았다. 정말 정성을 다 기울였다. 김치 속을 만드는 솜씨도 대단했다. 고춧가루에 찹쌀 죽에 마늘 양파 생강 멸치 젓갈까지 고루고루 비벼 넣었다. 완벽했다.

리마가 양념이 범벅이 된 손으로 김치를 말아 한입 넣어준다. 양념간은 딱 좋은데 배추가 조금 싱겁게 간이 되었다. 김치가 싱거우면 베이스캠프까지 가면서 빨리 시어지거나 가스가 찰 우려가 있는데 너무 소금양이 적었던 것 같다.

3톤 화물을 남체 인근의 샹보체로 보내다

여하튼 오후 4시가 못 되어서 큰 통 5개와 대여섯 개의 반찬통에 김치를 가득 담았다. 그리고 마치 개선장군처럼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의 도심 길을 달려 숙소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도 자세히 몰랐던 김치공정 전체를 일괄로 네팔 요리사한테 거꾸로 배운 소중한 기회였다.

"출국 비행기만 오르면 산에는 다 간 거나 마찬가지."

행정준비 담당에다 선발대로 이틀 먼저 도착, 행정 식재료구입 장비구입 현지인 세르파와 요리사 채용 등을 맡은 김미곤 대원의 말이다. 14명의 원정대를 꾸려서 서울에서 장비와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이 그만큼 복잡하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출발 10일 전 거의 1주일을 합숙하면서 각종 장비와 식재료 구입과 포장 탁송까지 해서 항공화물로 보낸 것을 카투만두에서 다시 찾아서, 30kg짜리로 잘게 분리 포장했다. 상행 캐러밴 때 야크에 60kg씩 싣거나 포터들이 지고 가기 편리하게 하는 작업이다.

31일 겨우 헬리콥터 편으로 3톤에 달하는 화물을 남체 인근의 샹보체로 보냈다.

내일부터는 드디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선택한 고행의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