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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정대 뒤편에 있는 라마제단
ⓒ 김창호
4월 26일 아침. 한 세르파의 사고사 소식은 등반준비에 분주하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전체를 일순 감전시켰다. 사고를 당한 세르파는 솔로 쿰부 출신의 다와(34). 네 자녀의 아빠라고 한다.

이탈리아 원정대의 세르파로 C2에서 C3로 이동하다가 청빙구간에서 미끄러져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청빙구간은 만년설이 녹았다 다시 얼어붙은 구간으로 푸른빛을 내기 때문에 청빙구간이라고 한다. 에베레스트 봉으로 가는 도중, 1km에 걸쳐 아이젠 앞 발톱으로도 잘 찍히지 않아 매우 미끄럽고 위험한 구간이다.

이 사고로 대부분의 원정대가 등반일정을 중단했다. 동시에 베이스캠프에는 예기치 않은 거친 바람이 불어닥쳤다. 사고 3일째도 여전히 등반운행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비공식적이며 묵시적인 애도기간을 갖는 분위기다.

동료이자 동포인 세르파들의 표정은 담담한 것 같다. 네팔인들에게는 망자(亡者)는 더 좋은 세상으로 간다는 죽음을 긍정하는 정서가 있다.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이별을 슬퍼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침울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 원정대 세르파 싼누는 "슬프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왕추 세르파는 "슬프다. 올라갈 때 조심해야겠다. 아침에 올라갈 때마다 기도한다"고 한다.

시신 운구를 위해 C2로 오르는 세르파들

26일 밤에는 바람이 거셌다. 한밤 내내 거센 바람이 텐트를 뒤흔든다. 귀가 멍멍하고 텐트가 날아갈 정도다. 27일 새벽 동이 트면서 더욱 거세진다. 아침에 보니 전망 좋은 곳에 설치된 박 대장 텐트가 반쯤 기울었다. 오전이 되면서도 바람의 기세가 꺽일 것 같지 않다. 바람이 전하려는 것이 있는 걸까. 비명에 간 세르파의 고혼을 위로하려는 건가.

28일 새벽. 베이스캠프에 온 30여개 원정대 소속 세르파들은 자체회의를 갖고 각 팀에서 한 사람씩 30여명이 시신운구를 위해 시신이 있는 C2로 올라갔다. 우리 팀 5명의 세르파 가운데 밍마(23)가 자원했다. 새벽 3시 캠프를 출발했다.

세르파. 에베레스트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다. 세르파는 히말라야 근방 산악 계곡지대에 거주하는 세르파 족을 일컫는다. 히말라야 원정대의 고산등반 가이드로 유명하다. 1953년 뉴질랜드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텐징 노르가이가 가장 유명한 세르파다.

1920년대 서구 등반가들이 히말라야를 찾으면서 등반가이드로 면모를 드러낸 세르파 족은 천성이 착하고 강인하다. 이들은 추운 기후와 높은 고도에서의 생활에 익숙하다. 유능하고 쓸모 있는 등반 고용인으로 명성을 굳혔다. 설산에서의 작업을 쉽게 익히며 특히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김홍빈 대원은 싼누 세르파와 손을 맞추고 있다. 작년 시샤팡마 등반 때 다른 팀의 세르파로 일하던 싼누의 등반기술과 체력, 때 묻지 않은 자세가 돋보여 이번 등반에 같이 한다.

며칠전 C1 C2 등반 때, 싼누는 김홍빈을 2박3일간 거의 1m거리 안에서 그림자처럼 뒤따랐다. 세르파 싼누는 아이스폴지대를 통과할 때도 안전확보를 위해 확보슬링을 걸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다. 김홍빈은 "싼누는 한순간 뒤에 붙었다가 금세 옆에 붙었다 하면서 그림자 커버를 했다"고 헌신성에 만족스러워한다.

"단돈 몇 루피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솔로쿰부지역의 세르파 마을들인 남체바자르 쿰중 쿤데가 유명해지고 남체바자르 출신 세르파를 최고로 치기도 한다. 우리 원정대는 5명의 세르파를 고용했다. 카투만두에 있는 세르파 관리용역회사에서 일괄적으로 조달받았다.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한국원정대 요리사 출신인 왕추(Wangchu)가 추천한 도루지A, 싼누, 왕추, 도루지B, 밍마가 이들이다. 리더격인 사다는 도루지A다.

세르파는 베이스캠프 이상에서 등반물자를 수송하고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이 주 임무다. 원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경우에 따라 대원의 생명과 직결될 만큼 크다. 그러나 전문등반인의 경우, 등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세르파 없이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르파는 대개 몇 명씩 팀으로 움직인다. 그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자를 사다(Sirdar, 인도어로 리더)라고 한다. 사다는 포터선발, 교육, 산중 작업조율을 맡는다. 세르파의 팀웍은 끈끈한 유대를 갖고 있다. 단순히 돈만을 위하기보다 모험을 위해서도 한다. 텐징 노루가이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라면 단돈 몇 루피 때문에 산에 오른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김미곤 대원은 "그러나 과거와 달리 세월이 많이 흐른 현재 세르파 대부분은 돈에 너무 물들었다. 그래서 원정 때마다 때 묻지 않은 새로운 세르파를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상업대 (한 사람당 3~5000만원의 고액을 받고 정상등정을 돕는 전문회사)가 성행하면서 운행 도중에 더 많은 조건을 내걸고 스트라이크를 하거나 태업을 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등반일정에 차질이 와서 전체 등반을 망치는 경우도 많다.

원정대 세르파 대부분은 "특별히 공부한 것 없이 한 시즌에 한 원정대를 위해서 일하면 엄청난 돈벌이가 된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매달린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원정대 세르파 리더인 사다 도루지A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두 번 오른 베테랑. 한 시즌에 2500달러를 번다. 고수익이다. 35세인 그는 12세, 9세인 두 딸을 두고 카투만두에 살고 있다. 한 5년 더 일하고 싶다고 한다. 이후에는 미국이나 한국 등지로 나가서 일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 칼라파타르에서 본 에베레스트
ⓒ 김창호

산신에게 성의를 다하지 않으면 산이 희생자를 요구해

세르파들의 신앙은 티벳불교다. 원정이 시작되면 베이스캠프 주위에 돌로 쌓아서 만든 라마제단을 신성시한다. 돌로 된 제단을 쌓을 때도 집안에 부정한 일이 없는 정갈한 세르파들이 우선 쌓는 등 온 정성을 다 기울인다.

세르파들이 한 사람당 15kg 내외의 짐을 C1, C2에 올리기 위해 산행할 때마다 빠짐없이 라마제단에 안전을 기원한다. 향불을 태우거나 라마제단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의식을 거친다.

세르파들은 산에서의 죽음이나 불행에 대해 전체 집단에 대한 벌로 간주한다. 원정대 세르파 싼누(30)는 "산은 신이 사는 곳이어서 산에 오를 때에는 신에게 안전산행을 기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산신에게 너무 무성의하게 기원하면 산이 희생자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한 세르파는 "사고를 당한 세르파가 움마니 밤베오(신의 가호를 빈다는 뜻의 주문)를 적게 했다"고 할 정도다. 세르파는 사망사고의 경우 보험으로 2~300만원 정도의 보상금을 받는다.

시신후송 자원봉사로 나간 우리 원정대의 막내 세르파 밍마(23)는 28일 오후 3시경 30~40여명의 세르파들과 아이스폴 지대를 무사히 통과해 세르파의 주검을 내렸다. 새벽부터 거의 하루만에 내려온 것이다. 지난 89년 에베레스트 동계 등반 도중 세르파 사망 사고를 경험했던 김홍빈 대원은 "당시에는 대원들이 운구했는데 이렇게 세르파들이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고 한다.

28일 오후. 베이스캠프를 휘감던 바람은 자고 갑자기 아이스폴 옆 산에서 거대한 눈사태가 한바탕 치면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커다란 눈보라 구름이 뒤덮는다.

29일 아침 9시경. 군용헬기 한 대가 베이스캠프에 날아와 그의 주검을 실어갔다. 가난한 세르파는 죽어서야 비로소 헬기를 타고 하산하는 마지막 호강을 누린 것 같다. 베이스캠프에서는 수많은 세르파 요리사 주방보조 등 네팔인들과 많은 원정대원들은 낮게 떠가는 헬기를 보며 명복을 비는 모습이다.

우리 원정대의 최연소 세르파, 밍마

▲ 줄로 아이젠을 갈고 있는 세르파 밍마
우리 원정대의 세르파 가운데 가장 어린 밍마. C2에서 사고를 당한 네팔인 세르파의 주검을 아이스폴 위험지대까지 올라가 운구해 왔다. 얼굴이 까맣다. 175cm 정도의 훤칠한 키와 맑은 미소를 가진 23세의 청년, 아니 정확하게 한 아이를 둔 가장이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그를 만난다면 스키시즌에 얼굴을 그을린 '있는 집' 아들로 여길 만큼 외모가 준수하다.

밍마는 5년 경력의 세르파다. 그러나 에베레스트봉(8850m) 등정 기회가 온 것은 처음이다. 밍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에베레스트 정상에 꼭 오르고 싶다"고 까만 눈을 더 크게 뜬다. 단지 돈만을 위해 나선 세르파 등반 보조자가 아닌 등산인의 열정이 엿보인다.

밍마는 용감하다. 밍마는 에베레스트에서의 시신 운구는 처음이다. 하루 전 새벽부터 동료의 주검을 수천m 고산의 얼어붙은 눈 길과 얼음 길을 돌고 돌아 온종일 끌고 내려 온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놀랍다.

밍마에게 "부모가 세르파 일이 위험하다고 걱정하지 않느냐"고 묻자 "물론 부모 아내 모두 집에서 농사만 짓고 살자고 한다"고 답한다. 밍마는 "쿡(주방장)이나 키친보이(주방보조)를 한다고 둘러댄다"며 "나 혼자가 아니고 그룹으로 산행을 하므로 안전하다고 설득한다. 부처님께 항상 기도한다"며 목에 건 부처님의 목걸이 두 개를 보여주며 맑은 미소를 짓는다.

밍마의 집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걸어서 일주일 가야 하는 마카루 지역 곰탈라. 15가구가 사는 조그만 한 마을. 그의 2살 연상인 아내와 부모 장인장모가 한 마을에 산다. 부모들끼리 중매로 19세 때 결혼했다. 집에는 소 10마리, 야크 1마리, '야크와 소의 교배종'인 적교 1마리가 있고 감자농사가 주업이다.

밍마는 6살 때 초등학교에 다녔다. 밍마가 다닌 양딘 초등학교는 집에서 내려가는데 30분, 올라오는데 1시간 떨어져 있다. 학교를 오가는 데만 1시간 30분이 걸린다. 이래저래 5년제인 초등학교를 한 3년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밍마의 최종학력인 셈이다.

집에서 농삿일을 돕다가 10살 때부터인가 때때로 히말라야 짐꾼인 포터로 일하거나 히말라야 원정대의 주방보조로 일했다. 트렉커 가이드로도 일했다. 한국인 트렉커팀도 두 번 따라갔다. 이후 등반세르파로 일하는 동안 히말라야의 마나슬루(8163m)에 오른 것을 비롯 9~10개 봉우리에 올랐다.

밍마는 봄과 가을시즌에 약 1000달러의 수입을 손에 넣는다. 고수익이다. 그 돈은 전부 어머니께 보낸다. 아내에게는? 조금 따로 준다고 웃는다. 세르파 가운데는 돈 관리를 잘못해서 술이나 도박으로 탕진하는 경우도 있다. 밍마는 성실한 편이다.

내일도 대원들과 운행을 앞둔 마카루 청년 밍마. '돈과 생존의 운명적인 줄다리기'를 펼칠 그는 이날 오후 모처럼의 히말라야 햋빛을 받으며 청빙구간을 기어오를 아이젠 발톱을 쇠줄로 갈고 또 간다. 행여나 있을지도 모를 털끝만큼의 불운이라도 털어버리겠다는 듯이. / 이평수

태그:#세르파, #로체원정대, #희망원정대, #에베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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