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구 NNAA-J(탈핵 아시아 행동-일본) 사무국장
유혜준
- '박종석 사건' 이후에 히타치 등 대기업에 재일한국인들이 많이 입사하게 되었나.
"많은 건 아닌데... 당시 재일한국인들은 일류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못했다. 취직이 안 된다는 게 당연하다는 게 상식이었다. 우리는 상식에 대한 투쟁을 한 것이었다. 히타치에 다른 재일한국인들이 입사하게 되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재일한국인을 국적을 이유로 취업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판결이 난 것이니까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을 만한 일이었다."
하나 덧붙이지만 박종석 소송을 지원한 이들은 재일한국인만이 아니었다. 오보 야스마사 '겐카이 원발 플로서말 재판회' 사무국장은 일본인이지만 당시 박종석을 지지하며 지원활동을 벌였다. 일본인들 역시 재일한국인 차별 문제를 보고만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도 박종석 사건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고, 많은 관심을 끌었다는 곳이 최 국장의 설명이다.
최 국장은 이후 가와사키 지역에서 '한국인 차별문제를 따지기 시작하는 활동'을 벌였다. 기독교인인 그는 교회를 중심으로 유치원을 만들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재일한국인들이 받는 다양한 차별을 시정해나갔다. 취직뿐만 아니라 은행대출을 받을 때도 차별을 받았던 재일한국인들. 그렇다고 재일한국인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기 때문에 이 정도로 정리하기로 한다.
- 탈핵운동은 언제부터 시작했나?"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3·11 이후다. 그 때 내가 느낀 것은 결국 민족이나 국가와 상관없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다.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사회를 바꾸자, 해서 '발신'하게 되었다."
재일한국인으로 탈핵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 국장은 "탈핵문제를 이야기하면 일본인들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한다며 "탈핵문제는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와 내 자식들 그리고 후손들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민족과 국적에 상관없이 탈핵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 최 국장의 주장이다.
물론 모든 일본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와 함께 이번 탈핵원전투어에 참여한 다수의 일본인들은 최 국장의 표현대로 '민족과 국가를 넘어' 함께 탈핵운동을 하고 있으므로. 그리고 그와 함께 탈핵운동을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에는 탈핵문제에 관심이 없었는지?"있었다. 일본 원전에 문제가 있지만 대형사고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작은 원전사고는 많이 있었지만 굳이 참여해서 운동은 하지 않았다."
-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그 때 (원전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었고 공부를 해서 한국이 원전을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원칙을 세워놓고 탈핵운동을 시작했고, '원전체제를 따지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CNFE)'를 만들었다."
- 언제였나."2011년 5월인가 6월 정도로 기억한다. 일본 크리스천을 중심으로 사회의식이 있는 사람들과 같이. 처음에는 10명~20명 정도였는데 몇 개월 사이에 100명이 넘어섰다."
이렇게 탈핵과 관련된 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최 국장은 몽골을 방문하고 한국과 대만을 방문하면서 탈핵운동을 하는 이들과 연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탈핵운동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최 국장의 설명이다. 최 국장의 주장대로 탈핵운동은 민족과 국가를 넘어 공감대를 넓혀 갔고, NNAA-J를 조직하기에 이른 것이다.
- NNAA-J의 회원은 몇 명인가? "중심이 될 만한 사람이 20명 가까이 된다. NNAA가 중심이 돼서 원전 메이커 소송을 시작하자, 그렇게 되었고 그걸 우리가 준비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일으킨 기업이 히타치, 도시바, GE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가 원전문제를 따지게 되면서 알게 됐고, 원전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시작할 예정이다."
원전 만든 회사엔 책임 물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일본에서 이번 탈핵원전투어를 준비하고 진행한 단체는 NNAA-J다. 탈핵원전투어 일정을 준비하고 꼼꼼하게 일정을 체크하고 회계를 담당했던 오쿠보 테츠오씨와 야기누마 유타카씨도 NNAA 회원이다. 이들의 꼼꼼함에는 한국 참가자들이 죄다 감탄할 정도였다.
NNAA는 와타나베 노부오 목사를 회장으로 위촉했다. 최 국장은 처음 와타나베 목사를 소개받았을 때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나이가 90이나 되는 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어 거절하기 위해 그를 만나러 갔던 일화를 소개했다.
"와타나베 목사는 내 얘기를 듣고 '내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남은 인생을 다 바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분은 나이가 90세인데도 매일 신문 3개를 보고, 이메일을 하고 페이스북을 하시는 분이다. 한국과 대만에 가서 강연도 하시는 분으로, 일본이 전쟁 책임을 충분하게 지지 않았다면 교단에서 나와 새로운 교단을 만든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