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L 물통에 식수를 담아 맨발로 2시간 산길을 걸어 집에 돌아오는 동티모르 아수마노 마을 아이. 인도네시아 식민지 시절, 토벌군이 진입하기 어려워 독립군의 은신처였던 산간 오지로 주민 70% 이상이 한 두 시간 떨어진 산간 식수원에서 물을 길어온다. 주로 아이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통티모르는 2011년 국민의 37.4%가 국제빈곤선인 1일 $1.25 이하의 삶을 연명한다.
더프라미스 제공
- 빈곤 지역에 대해 열정적이십니다. 한국도 해외 구호에 대한 지원이 늘어가는 추세인데요. 한편에서는 국내에 먼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네, 한국에도 아직 빈곤이 있죠. 그래도 저는 다른 나라들이 겪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 사람 중에 하루 1달러나 2달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보다는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는 경우라고 봅니다. 극단적인 상황과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는 저소득층에게 지원하는 것보다 기아로 고통받는 지역에 도움을 주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여깁니다.
한국의 가난에 손 놓고 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제 한국이 절대 빈곤선의 위험에 빠진 이들을 돕는데 우선 나서야 할 이유가 있다는 거죠. 같은 액수의 돈도 빈곤 국가에서는 더 오랜 시간 힘이 됩니다. 왜냐하면 500달러를 한국에 있는 한 가족에게 줄 경우, 아마 일주일 생활비나 한 달 생활비 정도일 거에요. 이 돈을 사하라 사막 남쪽에 있는 아프리카 국가에 주면 어떨까요?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서 500달러는 한 가계의 1년 수입보다 큽니다. 1년에 500달러만 필요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내는 돈이죠. 꼭 돈이 아니어도 그 동네에 깨끗한 물이나 위생시설을 도와 줄 수 있고, 의료 지원이나 학교 짓는데 거들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주 적은 돈으로 가능합니다. 물론 그들은 그 돈조차 구할 수 없는 처지고요."
절대 빈곤은 단지 물질적 결핍만이 아니다 - 우리네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하는 속내에는 어떤 방관자 심리 혹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에 앞서 효과를 따져보는 경영 심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실험을 한 예가 있어요. 르완다 난민촌에 1500명의 난민을 살리는데 성금을 모으자고 말하면서 전체 인원수를 계속 바꿨습니다. 결과는 1만명 중에 1500명이라고 했을 때보다, 3000명 중에 1500명이라고 할 때 가장 많은 기금이 만들어졌죠. 저는 우리가 살릴 수 있는 그 생명만 바라봤으면 합니다. 생수 한 병을 줄이면 한 아이가 하루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였으면 해요.
우리가 다른 이의 고통을 외면하면, 세상은 더욱 폭력적이 될 겁니다. 절대 빈곤은 단지 물질적 결핍만이 아닙니다. 힘의 결핍, 힘 없는 자의 설움이 함께 하죠. 뺏고 빼앗기고, 경찰도 손 쓰기 어렵고, 부패가 함께 합니다. 성폭행이 만연하고요.
사람들이 가난할 때, 아이를 많이 낳아요. 그리고 교육하지 않죠. 왜냐면 아이가 교육되기 전에 죽을 거라 짐작하고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아이를 많이 원합니다. 적어도 하나 둘은 살려서 늙었을 때 보호받겠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이러면 또 인구 증가로 이어지고 다음 세대에는 문제로 대두할 겁니다."
- 선생께서는 개인의 변화와 실천을 강조하시는데, 쓰나미가 휩쓴 아이티를 보면 자연재해가 오기 훨씬 전부터 다국적 자본에 의해 경제 구조가 자급력을 잃었습니다. 산업화 속에서 농사를 포기하고 결국은 경제 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식량난까지 겪는 빈한한 처지로 떨어졌습니다. 아이티 수도 가난한 지역에선 강간 등 범죄가 일상이 되었고요. 이런 구조적 모순에 빠진 곳에 문제점을 들추기보다 돈을 보내는 일은 오히려 부자에게 위로를 주고 경제 시스템이 갖는 이익을 보장하는 것 아닐까요?
"아이티는 매우 가난하고 오랜 시간 그래 왔어요.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진단 내려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아주 나쁜 정부가 (그런 문제점을) 되물려왔고요. 개발도상국의 부패한 정부와 엮이는 다국적 기업들은 제겐 장물아비로 보입니다. 다른 점은 국제법과 정치적 역학 관계가 이들을 소유권을 행사하는 당당한 존재로 인정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좌파들이 제게 부자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비난도 합니다.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 놓습니다. 하지만 각자 바라는 혁명적 방식이 성공하기 어렵다면, 가난한 사람을 돕는 현실적 방법을 더 다양하게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봅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흐름이 그래도 긍정적이에요. 세계은행이 절대빈곤 기준으로 내놓은 액수가 하루 1달러25센트입니다. 이 이하의 수입을 버는 사람의 수가 14억명이구요. 1981년에는 19억명이었어요. 열 명 중 네 명이 절대빈곤선 아래 있었는데, 지금은 네 명 중 한 명으로 줄었습니다."
기부 문화, 부자에게 주는 위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