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이 칙센미하이 클레어몬트대 교수.
안희경
- 곧 러시아로 떠나신다면서요? 재선된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이 있다고 하셨는데, 국가 경영에 대해 조언을 하실 건지요? "제 책 두 권이 러시아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합니다. 푸틴 대통령이 만나고 싶다고 해요. 물론 구성원이 행복하도록 민주적 동기를 부여하라는 제 생각을 전할 겁니다. 충분히 이해시키기 쉽지는 않겠지만, 의미는 있을 겁니다."
- 그동안 스웨덴, 오스트리아, 일본, 핀란드, 헝가리 등 많은 나라의 지도자에게 조언해 오셨습니다. 더불어 한국에서도 큰 제안을 받으셨고요. 2년 전 밴쿠버에서 인터뷰했을 때, 선생님은 제게 서울시와 한국 정부에 대해서 물으셨습니다. "그때 한국 정부로부터 국가적인 창의력센터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자금 지원과 협조였어요. 하지만 맡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한국어를 모른다는 거였고, 그 일에 대해 확신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이징도 '다오 마스터'가 되달라고 초청했어요. '베이징대 다오 마스터 아카데미(Beijing De Tao Masters Academy)'에서 세계적인 석학과 예술, IT 등 각 분야의 최고를 초청하는데, 국제적인 거장들이 참여합니다. 정부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대화하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자리죠. 창의적인 프로그램이지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창의력은 대부분 사람이 다 갖고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이 사회 속에서 표출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창의력을 쓸 마음이 안 생긴다는 겁니다. 사회가 개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죠. 공급 부족이 아니라, 수요가 부족한 겁니다."
-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센터를 만들기에 앞서 사회 리더들의 열린 자세가 있어야겠군요. 당시 선생님의 질문에 한국 정부의 눈에 보이는 개발 위주 행정과 신자유주의에 휘둘리는 모습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도 한국 인문학이 새로운 기운을 받을 기회였는데 괜한 말씀을 드렸나 하는 자책도 조금은 있었고요. 물론 여러 경로로 의견을 수렴하셨을 거라 여깁니다. "창의적인 환경은 창의력을 불러주는 '뮤즈'입니다. 역사를 보면, 어느 시기 한 도시에 느닷없이 창의성이 번성합니다. 그리스의 아테네, 이탈리아의 플로렌스, 프랑스의 파리 등이 그랬죠. 갑자기 수많은 창의적 기운이 과학, 예술, 철학, 인문 등에서 일어났어요.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시절도 단지 25년 사이에 플로렌스에서 불었던 기운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알약을 먹고 갑자기 창의적이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 이전에나 이후에나 똑같습니다. 다만 그 시기에 도시 전체가 뭔가 창조적인 결과물을 원했을 뿐이죠.
우리가 더 염두에 둬야 하는 건 '창의성을 무엇에 적용하도록 할 것인가'입니다. 활개를 펼 여건만 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나설 거에요. 창의적인 사고가 퍼져 나가게 됩니다. 흔히들 선입견에 아시아 문화는 너무 고답적이라고 합니다. 참신한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요. 우리가 과거의 틀에 심하게 메어 있다면 창의적인 생각이 나와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창의력으로 향하는 첫걸음은 세상에 옳은 답은 오직 하나라고 더는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 창의성이 요구되는 사회는 분명 좀 더 밝고 활기차리라 여겨집니다. 아쉽게도 요즘 한국은 우울합니다.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고, 20년 전과 비교해 5배나 늘었습니다. "자살 증가에 대해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1880년대에 글을 썼어요. 19세기 말 당시 프랑스도 자살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일찍부터 통계를 내고 있었는데, 그래프를 뒤르켐이 분석했습니다. 자살은 경제 상황이 갑자기 좋아져서 나라가 부자가 될 때나 또는 갑자기 가난하게 될 때,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도덕적 규범이 붕괴될 때, 자살을 결심한다는 이론을 발표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전부터 믿고 의지했던 규범들이 무너질 때 휘청댄다는 겁니다. 내 생각에 한국도 이와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물건을 아끼고, 잘 건사해서 오래 쓰는 것이 미덕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럴 경우, 물건을 잘 깨뜨리는 옆집 사람보다 잘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을 겁니다. 자녀에게도 절약을 가르치며 존경을 받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릇이 깨지면 오히려 새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더 이상 절약은 미덕이 아니라 구차해지는 겁니다."
사회적 가치가 무너질 때 삶을 포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