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 교수
안희경
2011년 벽두에 몰아쳤던 구제역 살처분. 죽어가며 젖을 물리던 어미 소, 생매장 구덩이에서 발버둥치던 돼지, 사슴, 염소들. 살처분에 투입되었던 경상북도 수의사와 최근에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지금까지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살처분 현장을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비유했다. 당시 새벽까지 기계처럼 주사기를 꼽아 1, 2분만에 쓰러뜨린 소가 첩첩이 싸였고, 받은 지 얼마 안 된 송아지에게도 석시콜린(근육 이완제) 주사를 꼽았다.
그에게는 아직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한순간이 있다. 할머니가 10년 넘게 키워온 단 한 마리 소만 있던 집. 노파의 울부짖음은 한 나절을 넘겼고, 마침내 몸속에 주삿바늘이 꽂히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던 소의 큰 눈망울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의사는 도망치고 싶었다. 그도 눈물을 흘리며 소에게 빌었다.
"그래도 이 놈아, 넌 할매 덕에 행복했겠구나… 미안하다… 잘못했다."
처음에 반발하던 기업농들은 보상금으로 수지타산을 맞추고 난 후 잠잠해지고, 수의사들 중엔 과로와 충격에 시력장애를 호소하는 이도 나왔다.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그는 한밤에 놀라 깨고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고백했다.
농업의 산업화, 현대인의 소비습관, 자본의 이동, 빈곤까지 한데 얽혀있는 이 고리에서 하나씩 심각한 증상이 불거지고 있다. 이 얼기설기 엮인 타래를 풀어주길 기대하며 실천윤리학자인 피터 싱어 교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지난 2월 말이었고, 반나절이 채 지나기 전, 답을 들었다. 올해 싱어 교수는 안식년으로 호주 자택과 일정에 따라 외국에 머문다. 다만, 버클리 강의 때문에 나흘간 미국에 있을 예정이라 했고, 우리는 지난 4월 18일 오후, 버클리 교정에서 대화를 나눴고, 이후 한두 차례 이메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