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민주주의가 갖는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고 모든 제도의 출발이 기득권의 효율적 통치 수단으로 나왔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회는 본능적으로 안정을 바랍니다. 갈등을 잠재우는 적당한 타협을 찾아갑니다.
"이건 참으로 흥미로운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18세기 미 헌법 창안자들이 했던 그런 질문이 정치 과학사의 초창기부터 나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정치그룹이 나눈 고민도 같습니다. 그는 여자도 아니고 노예도 안 되며 자유를 갖고 있는 남자들과만 토론했습니다. 미국의 근대 민주주의와 아주 비슷하죠. 그는 아테네에서 '다수가 지배하는 일이 생긴다면?'이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도 이렇게 말할 거에요. '다수들은 부자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힘을 사용하겠지. 그리고 그것은 옳지 않아.' 시간을 뛰어넘어 아리스토텔레스와 매디슨은 같은 질문을 마주했습니다. 하지만 둘은 정 반대의 답을 끌어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결론은 불평등을 감소하는 것입니다. 그는 복지국가를 이루는 법이 답이라는데 도달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본질적으로 중간 계급으로 만들어야,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매디슨의 해법은 다릅니다. 민주주의를 규제해야 한다는 확신을 얻었죠. 그렇게 미국의 민주주의는 대중을 갈라놓고 파편화시킴으로써 권력이 부자의 손에 집중되도록 해왔던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미국의 정치 역사를 관통해 보면, 늘 이 제한의 범위가 싸움의 이슈였습니다."
- 매디슨은 미국의 4대 대통령을 지냈죠. '헌법의 아버지'라고 불렸고, 공화당을 조직한 인물인데요. 선거 때면 세금을 주요 이슈로 부자의 단결을 도모하는 미국 보수의 정치 패턴, 외면당하는 국민의료보험, 대중교통뿐 아니라 현재 중산층의 몰락을 유발하는 배경을 여기까지 올라가는구나 느껴집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 시절이 도래하면서 부자의 손안으로 권력이 흡입되듯 모아지는 극단적인 퇴행까지 겪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수년 동안 부자는 더 많은 자유를 얻었고 세금혜택 자본이 그들에게로 집중되는데, 이는 명백한 역사 후퇴입니다. 회귀죠. 이것이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이에요. 매우 반민주적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나는 한국인들이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부분보다 훨씬 잘요. 이 말을 하고 싶어요. 답은 그리 먼 데 있지 않다는 것. 1980년대 그때 한국인들은 잘 조직되었고, 함께 모였고, 열심히 싸웠어요. 매우 용감하게, 매우 효율적으로 미국의 지지를 받던 잔혹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자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무너뜨렸죠. 이 땅에 대단한 민주적 혁명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바람을 불러일으켰죠. 그때 한국인들은 누구에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고, 오직 그것을 하고 있을 뿐이었고, 해냈습니다. 기회는 그때보다 지금 훨씬 많아요. 한국에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만 이는 전에 있었던 암울한 독재는 아니지요. 수없이 많은 할 일들이 있으며, 그대들은 오직 그대만의 역사 속을 들여다보면 됩니다. 그 속에 답이 있습니다."
변질했다 치부하고, 권력이 되었다 멀어지려던 우리의 과거를 선생은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었다. 놈 촘스키 선생을 통해 만난 우리의 80년대, 하나의 피륙을 짜내던 숭고한 헌신이었다. 우리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그 연대의 마음에 기회를 주어야겠다.
[인터뷰이(interviewee)]
놈 촘스키(Noam Chomsky, 1928년 12월 7일생) 교수는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인지과학자, 역사학자, 사회운동가로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이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언어학과 교수로 50년 넘게 재직하고 있다. 촘스키는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컴퓨터 공학, 수학, 심리학에까지 영향력을 미쳐왔다. 더불어 미국의 대외정책, 현대 자본주의에 관한 논평으로 대중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여론을 이끌었다. 100여 권이 넘는 전문 분야 서적 및 시론서가 있다.
[인터뷰어(interviewer)]
안희경 작가는 성신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불교방송 PD로 활동할 당시, 1998년과 2000년에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2002년 미국 이주후 여러 매체에 미국의 시사 문화와 명상 트랜드를 다양하게 소개해왔다. 또한, 세계의 석학 및 현대미술 거장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예술을 뒷받침하는 근원적 삶의 자세를 드러내 진한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환경을 지키는 책 <우리가 머무는 세상>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