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 부어오른 지가르의 온몸(2007. 11. 21).
진주
요즘엔 오후 6시가 되기도 전에 이곳 바라나시에도 어둠이 짙게 깔립니다. 이제 두 살 된 지가르가 아빠의 품에 안긴 채 바라나시의 공공병원(Varanasi District hospital Din Dyal Upadhyay hospital)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50분.
아빠 문나와 엄마 강가잘리에게도 지가르만큼이나 도시는 낯설고 두렵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도시에 왔고, 생애 처음으로 이렇게 큰 병원엘 왔습니다. 임신 7개월째인 강가잘리는 맨발이 아픈지도 모른 채, 오는 내내 손을 꽉 잡고 놓질 않았습니다.
마을에서 도시까지 거리는 40km 정도입니다. 이만하면 먼 거리도 아닌 듯 들립니다. 마을과 도시 사이에는 도로도 있고, 교통수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가르를 병원에 데려가기로 결정한 시간은 정확히 오후 3시 20분. 40km를 가는 데 3시간 30분이나 걸리도록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무차별적인 카스트 차별... 무사하르와는 차도 함께 타기 싫다지가르가 사는 무사하르(쥐를 먹는 사람이란 뜻으로, 달리트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자티 중 하나) 공동체는 아네이(Anei)라 불리는 마을에 있습니다. 큰 도로에서 쭉 걸어 들어오면 상층카스트인 브라만들의 논밭을 지나 무사하르들이 살고 있는 작은 공간이 눈이 들어옵니다. 진흙을 개서 만든 초가집이 대부분이라, 한눈에 봐도 제일 가난한 이들의 낮은 땅이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지가르의 몸은 땡땡 부어오른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지가르의 몸에 열이 오르고 설사를 하기 시작하자, 11월 초쯤 아빠 문나는 지가르를 데리고 보건소(Primary Health Centre, PHC)에 가서 약을 타왔습니다. 그런데 지가르는 그 물약을 먹고 난 후 몸이 조금씩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약을 복용하는 건 중단시켰지만, 지가르의 상황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11월 20일이 넘어가면서 지가르는 먹는 것도 힘들어했고, 몸은 더 부풀어 올라 원래의 모습을 알 수조차 없게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지가르의 엄마 강가잘리는 문나가 돈이라도 가져와서 병원에 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웃 마을 랄리푸르에서 카펫을 짜는 문나의 수입은 한 달에 1200루피(약 2만8천원) 정도입니다. 요즘엔 농사일이 있어서 상층카스트 브라민인 논 주인에게 곡물을 받아오기도 합니다.
보건소에라도 가려면 차량을 불러와야 하지만 이조차 쉽지 않습니다. 약한 자들이 더 약한 자들을 핍박하기 쉬운 법이지요. 무사하르들이 차량을 안으로 부르면 운전수는 400루피를 요구합니다. 문나에게는 한 달 수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돈입니다. 무사하르라는 이유로 보통 사람의 두 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지가르의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병원에 데려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바라나시에서 이런 마을 단위로 일하는 인권단체의 도움도 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차량을 부르러 간 사람은 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덜거덕거리는 차를 한 대 불러왔습니다.
처음에 어렵게 잡은 차의 운전수는 동반하는 손님을 기다리길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한참 뒤에 온 브라만 출신의 여자 손님은 무사하르 공동체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합석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거리도 멀지 않고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가야 한다고 아무리 사정해도, '무사하르'라는 단어를 듣는 그 순간 얼굴을 찡그린 채 같이 합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운전수도 무사하르 공동체에는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포기하고 다른 차량을 또 잡는 데 시간을 허비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카스트 차별은 모든 거리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뤄집니다.
청진기는 들이대면서 책임은 질 수 없다?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오후 5시. 보건소에 왔습니다. 있어야 할 의사도, 간호사도 보이지 않습니다. 의사 한 명은 이미 퇴근했고, 다른 한 명은 전근 대기 중이었습니다. 전근을 기다리는 의사에게 지가르를 데려갔습니다. 맥을 짚고, 청진기를 여기저기 들이대었습니다. 의사는 친절해보였습니다. 아이가 심각하니 바라나시의 큰 병원으로 당장 데려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의사에게 진단서를 요구했습니다. 큰 병원으로 가기 전 보건소의 진단서는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는 전근을 대기하고 있다며 자신은 진단서를 쓸 수도, 처방전을 줄 수도 없는 위치, 즉 책임질 수 없는 처지라며 거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