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사무실 앞에 모여 있는 이주노동자 가족들.진주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라나시의 한 민간 인권단체(PVCHR, 인권감시위원회)에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이른 아침, 보따리를 이고 지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사무실의 작은 앞마당에 그저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19명의 남자들, 17명의 여성들, 그리고 아이들은 28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무실의 한 직원은 이들을 위해 성명서를 작성했습니다. 직원이 한 명 한 명 이름을 기입한 뒤 그 옆에 본인 지문을 날인하게 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쓸 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두 무슬림인 이들은 서벵골주에서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바라나시로 온 이주노동자들입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라고 하면 대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각국에서 온 3세계 노동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나라 인도에서는 자신의 고향과 주거지를 떠나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대표적인 이주노동자들입니다. 몬순 시기엔 거의 대부분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일자리가 있는 특정 시기 동안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 일을 마친 뒤 몬순이 시작되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이들은 2006년 11월부터 2007년 5월까지 바라나시의 볼라 벽돌생산업체(Bhola Brick Kiln)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두 100만 루피(한화 약 2275만원)나 되는 임금이 체불되었습니다. 체불된 임금을 지급받기 위해 함께 모여 고소장을 작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벽돌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들과 같이 이주노동자들이거나 달리트들입니다. 부유층의 집이나 새로 지어진 근대적인 집들은 그 재료와 형태가 상이하지만, 바라나시의 집이나 건물의 대부분은 벽돌로 지어져있다는 걸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최하층 달리트 마을의 집들은 그저 물에 진흙을 이겨 만들어져 있습니다.
선지급 굴레에 묶인 예속노동자
벽돌이 생산되는 과정은 인도에서만 볼 수 있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언제나 돈이 없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달리트들은 벽돌 생산업자가 제공하는 선지급 임금을 거부하지 못합니다. 벽돌 생산업자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달리트들에게 임금을 선지급합니다. 한 사람당 1천~2천 루피(한화 약 2만2750원~4만5500원) 정도 미리 지급해 생계를 유지하게 한 뒤, 축제가 끝난 10월이나 11월에 벽돌을 생산할 시기가 되면 이들을 불러 모아 벽돌을 생산하게 합니다.
예속노동(bonded labour). 21세기 인도 사전에 있는 이 단어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말 중 하나일 것입니다. 강제노동도 아닌 이 노동방식은 선지급된 돈 때문에 노동자들이 정해진 노동에 묶여 일이 끝날 때까지 꼼짝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돈을 받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미리 지급된 돈을 받는 건 개인의 선택 아니냐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와 다릅니다. 이는 카스트제도가 낳은 구조적인 실업과 빈곤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돈을 받아 먹을거리를 사든지 아니면 굶든지, 삶을 연명하는 방식은 둘 중 하나입니다.
벽돌을 만드는 노동일은 달리트 사회에서도 가장 피하고 싶은 노동입니다. 어느 달리트에게 물어보아도 벽돌 생산일을 하는 달리트 공동체들이 가장 열악하다고 말합니다.
벽돌 생산일을 하는 이들은 황량한 사막 같은 곳에 먼저 가족들이 몇 달 동안 함께 지낼 만한 작은 흙집을 만듭니다. 노동력이 있는 모든 가족 구성원은 섭씨 45도를 넘어가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최대한 많이 벽돌을 만들어야 합니다.
볼라 벽돌 생산업자는 노동자들이 거주할 공간으로 생산현장 근처에 짚으로 만든 헛간을 제공했습니다. 짚으로 만들었으니 비가 오면 어떨지 상상이 됩니다. 그리고 1000장의 벽돌을 만들면 지불되는 급여는 160~170루피(한화 약 3640~3825원) 정도 됩니다. 3~4인의 가족은 하루에 1000~1500장의 벽돌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지급받는 돈은 일주일에 한 번, 매주 토요일 300~500루피(한화 약 6825~1만1375원)였습니다. 온 가족이 일주일 동안 먹을거리를 사고 나면 이 돈은 동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