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타버린 자리. 바닥에는 보리 낱알만 뒹굴고 있다.진주
경찰서에 잠시 구금돼 있던 파텔 공동체 사람들은 며칠 후 풀려났습니다. 베차씨네 집에 불을 지른 것도, 불에 탄 돈이랑 잡동사니들도, 재와 함께 묻히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달리트 사람들이 경찰서에 다시 가도, 불지른 파텔공동체 사람들을 찾아가도, 돌아오는 건 그 몇 배에 이르는 폭력과 멸시뿐입니다. 물고기 몇 마리 잡은 대가로 집이 몽땅 타버린 것처럼.
베차씨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을 떠나려할 때, 후진카스트인 파텔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왔습니다. 한 무리의 여성들이 우리 옷자락을 붙잡았습니다. 그 여성들은 참 당당하게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마을 연못이 법적으로는 어느 한 개인에게 혹은 어느 한 공동체에 속한 것도 아니었지만 상층카스트가 연못을 오랫동안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상층카스트들에겐 모든 자연자원에 대한 권리를 누릴 사회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후진카스트 공동체 사람들은 상층카스트들이 이 연못에서 고기를 잡을 때 도와주면서 고기를 얻곤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누리고 있는 영역을 무사하르 공동체와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후진카스트 공동체의 한 여성이 말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그 연못 근처에서 곡물을 기르고 있었던 것은 우리입니다. 오래 전부터 그 연못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도 상층카스트들과 우리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무사하르 사람들이 와서 고기를 잡겠다는 것인가요? 그 연못은 무사하르 사람들 게 아니에요. 무사하르 사람들은 스스로 집을 불태우고 나서 경찰서에 신고했어요. 인도 정부가 달리트에게 얼마나 많은 혜택을 주고 있고 좋은 일을 해주고 있는데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오래 전부터 연못이 그 곳에 있었다는 그녀의 말처럼,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카스트는 존재해 왔습니다. 오래 전부터 이들은 신성한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진카스트로 불리며 사회에서 퇴보하고 있는 이들은, 어쩌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한편으로 상층카스트를 대신해 달리트를 폭행하고 차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자신들이 더 차별받는 존재로 몰락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녀의 말처럼, 달리트에게 정부는 그 차별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몇 가지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그나마 이 정책들이 현실화할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명목상의 정책들은 실행조차 제대로 되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간계급인 후진카스트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이 불안정해질 거라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오래됐다는 이유로 연못의 물고기조차 공유할 수 없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