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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 9일 오후 4시]

▲ 정인봉 전 의원.
ⓒ 오마이뉴스 박정호
7.26 재보선 서울 송파갑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 예정이던 정인봉 전 의원에 대한 공천이 취소됐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심사를 받고 후보로 확정 발표까지 된 뒤에 당이 공천을 취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 전 의원은 그동안 16대 총선 직전 '기자 성접대' 전력이 드러난 데 이어 세금 장기체납 사실이 밝혀지면서 후보 자격 시비를 낳았다.

이에 한나라당은 지난 8일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정인봉 전 의원에 대한 공천을 취소했다고 공천심사 위원인 박형준 의원이 9일 전했다.

박 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어제(8일) 최고위원들이 긴급히 모여 회의를 한 끝에 정 전 의원에 대한 공천을 유보하기로 하고, 공천심사위원들을 재소집했다"며 "사실상 정 전 의원에 대한 공천을 취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8일 오후 소집된 공천심사위원회(위원장 이경재)는 서울 송파갑을 전략지역으로 결정하고, 재심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은 공천심사위 재심에서 새로운 후보를 확정해 발표할 때, 정 전 의원의 공천 취소에 대한 공식 입장도 밝힐 예정이다.

이에 따라 당의 공천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 첫 보도에 당 지도부 "국민이 판단할 일"

<오마이뉴스>는 지난 5일 정인봉 전 의원이 16대 총선 직전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단순 향응이 아닌 수백만원대의 성적 접대를 한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이후 한 방송사의 양심추적 프로그램에서 정 전 의원의 세금 장기체납 사실을 보도했던 것이 드러나면서, 결국 한나라당은 정 전 의원의 공천을 취소하게 됐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해 보도한 2001년 정 전 의원에 대한 서울지법 형사 합의23부(재판장 김용헌 부장판사)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정 전 의원은 2000년 4.13 총선 공천을 받은 뒤 "보도를 잘 해달라"며 한나라당을 출입하던 4명의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에게 46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했다.

이 판결문에는 정 전 의원이 기자들에게 음식과 술 외에도 성적 접대 등의 향응을 제공했고, 본인 또한 성적 접대를 받은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정 전 의원은 1심에서 7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뒤 고등법원에서 벌금 300만원으로 감형되기는 했지만, 성적 접대 등 향응 제공에 대한 혐의가 모두 인정돼 2002년 대법원 상고심을 거쳐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정 전 의원은 당 인권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서울구치소 성추행 은폐 사건' 진상조사단장을 맡았고, 지난달 30일 8명의 예비후보와 경쟁을 벌인 끝에 서울 송파갑 후보로 공천이 확정됐다.

▲ 지난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주요당직자 연석회의. 이 자리에서 김영선 대표는 정인봉 전 의원의 전력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당시 당 공천심사위는 정 전 의원의 성적 접대 등 선거법 위반 전력에도 불구하고 당에 대한 공로가 인정되기 때문에 정 전 의원의 공천을 취소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경재 공천심사위원장은 4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사람은 한두번의 실수를 한다"며 "그것(실수)에 비해 정 전 의원은 정부 여당의 정치적인 공작이나 큰 사건들을 변호해 (한나라당의) 무죄를 이끌어 낸 것이 한 두건이 아니었고, 그런 공이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김영선 대표 등 당 지도부 역시 "공천심사위에 맡겨놓았기 때문에 전혀 관여할 수 없다"면서 "재보궐 선거 타임스케줄상 (공천을) 되돌릴 수는 없지 않겠느냐, 국민들이 판단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 소장파의 리더격인 원희룡 의원은 "공천심사위원회가 정 전 의원의 성 접대 등 과거 전력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맹비난했다. 원 의원은 "정 전 의원의 전력 문제는 (재보선 선거 기간동안) 계속 문제가 될 것"이라며 "게다가 다른 성 관련 문제까지 겹쳐지면 크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인봉 전 의원의 성접대 전력 사실을 접한 당내 여성 의원들도 "사실이라면 경악스러운 일"이라며 "어떻게 그런 사람이 인권위원장을 지내고 공천을 받을 수 있느냐"고 반발했다.

반면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박형준 의원은 "공천심사라는 게 공적인 과정과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당의 여러 가지 공식적인 심의를 거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결정적인 문제가 나타나면 물론 재논의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정 전 의원에 대한 공천이 확정돼 있는 상태"라고 신중한 모습을 보여왔다.

권영세 이어 이재오 "당 대표 되면 재심 요청할 것"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정 전 의원의 전력을 거론하며 거세게 비판하고, 여성단체까지 나서서 공천 철회를 요구했지만 한나라당이 정 전 의원의 공천을 번복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새 당 대표를 선출하는 한나라당 전당대회 경선 과정에서 정 전 의원의 성접대 전력 문제가 제기되면서 파장이 급속히 확산됐다.

당내 소장·중도개혁파인 '미래모임'의 단일후보로 출마한 권영세 후보는 7일 대전에서 열린 후보자 합동연설회에서 "부패와 성적인 부도덕 문제를 가지고 있는 (재보선) 후보가 있다면 확실하게 바꿔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응징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후보는 연설회 직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도 "(정인봉 전 의원의 공천을) 취소해야 한다"며 "당시 그런 사건이 있었다면 (공천을 준 것은) 적절한 판단이 아니었다"고 말해, 정 전 의원에 대한 재심을 촉구했다.

이어 유력한 당권 주자인 이재오 후보 역시 정 전 의원에 대한 공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7일 밤 KBS 심야토론이 주최한 후보자 토론회에서 이재오 후보는 "각종 부패나 성추문 등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사람을 공천해서 당이 오히려 비난받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식으로 공천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특히 "우리 내부 사정으로 보면 가슴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민의 눈으로 한나라당을 봐야 한다"며 "내가 당 대표가 되면 (정 전 의원에 대한) 재심을 요청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전 의원이 전력 문제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데다 유력 당권주자들까지 나서서 "대표가 되면 재심을 요청하겠다"고 하자, 현 지도부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정인봉 전 한나라당 의원이 기자들에게 행한 성접대 내용이 수록된 판결문.
ⓒ 오마이뉴스
여기에 정 전 의원의 세금 장기체납 사건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7일 "정인봉, 국회의원 때부터 고액체납자"라는 기사에서 정인봉 전 의원이 4억여원의 세금을 체납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고액체납자로 나왔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2003년 10월 방송 당시 모자이크 처리가 된 채 J씨로 나온 사람이 바로 정 전 의원이었다.

이에 대해 정 전 의원은 "지금은 다 냈다"고 해명했지만, 성 접대 전력에 이어 세금 체납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정 전 의원의 도덕적 자질 논란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결국 한나라당은 8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정인봉 전 의원의 공천을 취소하고, 공천심사위를 재소집해 새 후보를 공천하기로 결정하게 됐다.

'침묵'을 지키던 당 지도부가 주말에 전격적으로 정 전 의원의 공천 취소를 결정한 것은 오는 12일까지 재보선 후보등록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11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새 지도부가 정 전 의원의 문제를 논의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현 지도부가 공천한 후보의 문제를 차기 지도부에게 떠넘기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002년 6월 의원직을 상실 한 뒤 4년 동안 키워온 정인봉 전 의원의 재기의 꿈은 공천을 받은 지 9일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발목을 잡은 것은 결국 자신의 과거 전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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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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