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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에 의해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이 받아들여진 27일 오후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앞에서 국화송이를 든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8명이 희생된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높은 담장안에 모인 유가족과 지인들이 고인들을 추모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사대체 : 27일 오후 3시 55분]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의 사형이 집행된 서대문 형무소 사형장에는 한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한기가 몰려오는 그곳. 8명의 '빨갱이 사형수' 유가족들이 흰 국화꽃 한 송이씩을 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칠십 세를 훌쩍 넘긴 노인들의 얼굴을 적신 눈물은 좀체 멈추지 않았다.

"천벌을 받을 놈들, 나쁜 놈들…"

30년 동안 흘렸던 눈물은 여전히 마르지 않았다. 30년 전 남편 송상진씨를 이곳에서 떠나보낸 김진생(77)씨는 "이제야 마음놓고 울 수 있게 됐다, 억울하고 슬퍼도 제대로 울지 못했던 세월... 사람의 삶이 아니었다"며 흐느꼈다.

"억울해도 울지 못했던 세월,, 사람의 삶이 아니었다"

"남편을 잃고 2남 3녀를 키웠고, 1975년 당시에 큰 아이가 15살이었다. 당시 아이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물어볼 때 가장 힘들었다. 모든 신문과 방송에서 아버지가 빨갱이 사형수로 나왔는데, 그 아이들이 받은 상처가 어땠겠는가.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매일 '빨갱이의 자식'이란 소리를 듣고 살았다."

고 하재완씨의 부인 이영교(70)씨의 회한이다. 이씨는 "이젠 아이들도 모든 진실을 알고 있어서 떳떳하게 살고 있지만, 절대로 언론을 상대하지 않을 정도로 큰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 한켠에 자리한 사형장 앞은 인혁당 사건으로 희생당한 사형수 8명의 유가족들이 쏟아내는 통곡과 오열로 뒤덮였다. 이날 오전 법원은 지난 2002년 유가족들이 제출한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1975년 4월 9일 사법부가 스스로의 손으로 저지른 '사법살인'의 원죄를 씻는 길을 연 셈이다.

재판부의 판결이 나온 직후 유가족들은 곧바로 사형수 8명이 처형된 형장을 찾았다. 유가족과 전창일(인혁당 사건 생존자)씨, 유진숙(인혁당·민청학련사건 진상규명위원회 부위원장) 등 관련자 50여명은 낮 1시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앞에 모여 재심 판결을 환영하는 의미로 흰 국화를 헌화했다.

이날 법원의 재심 결정으로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의 무죄를 입증할 길이 열렸지만, 형장 앞에 선 유가족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사형수 8명 중 한 사람이었던 우홍선씨의 아내 강순희(73)씨는 헌화를 마친 뒤 주저앉으며 오열했다. 다른 유가족들도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

헌화를 마친 생존자 전창일씨는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와 문화를 파괴한 박정희 정권의 인간 말살 현장에 와 있다"며 "법원이 재심 결정을 내린 만큼 유족 동지들의 힘을 합쳐 진실 입증을 위한 법정 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강순희씨도 "지금 인혁당 사형수를 죽인 대법원 판사 13명에 대해 비판하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내 소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인권을 지키지 못한 그 사람들의 신상만은 공개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시작, 끝이 아니다"

▲ 인혁당 사건 사형수 8명 중 한 사람이었던 우홍선씨의 아내 강순희(73)씨가 오열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편 인혁당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와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날 긴급 성명을 통해 "법원의 재심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또 "국정원의 조사결과 발표와 오늘 사법부의 재심개시 결정으로 지난 30년간 유족들과 관련자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이 조금이나마 풀렸기 바란다"며 "앞으로의 재심 과정에서 인혁당 관련자들이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대책위는 사법부도 재심 판결을 통해 부끄러운 과거를 벗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성명에서 "사법부가 권력의 편에서 부끄럽고 끔찍한 사법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뼈를 깎는 반성과 노력으로 국민에게 신뢰받는 법원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추모행사를 마친 유가족과 대책위 관계자들은 서대문 형무소 앞의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이들은 "30년 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이제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죽은 사람의 명예를 살리는 길도, 역사를 바로 잡는 일도 지금부터 시작하자"라며 소주잔으로 건배했다.

김진생(77)씨는 "오늘 같은 날 한잔 해도 좋은데, 술을 못 마신다"며 술잔만 살짝 입에 갖다댔다. 뜨거운 갈비탕 국물을 입으로 넘기는 김씨의 눈은 또 젖어 있었다.

인혁당사건 생존자들 "이젠 말할 수 있게 됐다"
[인터뷰] 전창일·이창복씨... "사법부도 자정능력 생긴 듯"

75년 인혁당 사건을 심리했던 재판장 분위기는 어땠을까.

"당시는 헌병 경찰들이 재판과정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었다."

당시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았던 생존자 이창복(68)씨의 말이다. 27일 사법부의 인혁당 사건 재심 결정에 대해 생존자들은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당시 재판정에서 "공포 분위기에 억눌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오늘에서야 군사파쇼 정권의 독재문화를 종식시켰다"고 덧붙였다.

이날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를 참배한 생존자 전창일(78)씨는 "재심요청을 하기 전에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보다 민주화가 진전된 현 시류에 대한 믿음이 더 컸다"며 재심 결정 소감을 밝혔다.

그는 "사법부가 양심선언과도 같은 재심결정을 하는 걸 보면서 이제는 그들도 시대흐름을 판단하는 자정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재판부의 변한 모습을 환영했다.

전씨는 "유족들과 함께 인혁당 사건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많은 자료를 제시해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겠다, 투쟁의 첫 고지를 밟은 것이지 이게 끝은 아니다"며 앞으로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 안윤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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