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태균 선수.
한화 이글스
야구 경기는 처음에는 외야에서 관람했으나 이글스 파크에서는 언제나 1루에 있는 관객들이 완전 돋보였고 드디어 나는 1루 응원석 티켓을 손에 넣게 되었다. 처음에는 좌석에 앉았다 일어서는 것도, 응원을 위해 손동작을 하는 것도 어색했으나 어느새 "김태균 홈런 날려 버려라"부터 "제럴드 호잉~"을 연호하고 1루 견제구를 던지는 상대방 투수를 약 올리는 멘트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고 8회 육성 응원의 짜릿한 감동도 맛보게 되었다. 교회 예배에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두 손을 들고 통성 기도를 하고 있는 교인을 떠올리면 된다.
한편 우리부부를 진정한 대전 사람이라 여기지 않던 서울과 부산의 형제들도 우리의 한화 이글스 팬으로의 커밍아웃에는 "드디어 대전 사람이 다 됐다"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판정을 내려 주었다. 다른 지역 지인들은 내가 한화 팬임을 밝힐 때마다 갑자기 나를 인내심 깊고 신의를 지키는 사람으로 업그레이드해준다.
야구를 보러 가서 1루 응원석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들과 나는 1회부터 9회까지 세 시간 가량 잠시 하나가 된다. 마치 특별한 이슈로 만났다가 헤어지는 플래시 몹에 참여한 느낌이다. 성별, 나이, 인종, 종교, 정치색을 떠난 공동체 의식, 어쩌면 이것은 현대인이 느끼는 잠깐의 소속감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종교나 인종, 정치색으로 뭉치는 소속감보다 스포츠팬으로의 이 작은 소속감이 어떤 면에서는 더 무해하다고 생각한다(훌리건 제외).
대전에 거주하는 시민 중에는 대전이 고향이 아닌 사람도 적지 않다. 그 사람들이 기억에만 의지하여 추억의 자리를 생각한다면 언제까지나 타향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고향이란 그리고 공동체란 무엇인가? 나는 한화 이글스 파크의 1루 응원석에 앉아 생각한다. 이 흥겨운 순간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고... 어쩌면 우리의 삶과 추억도 한화 이글스의 경기 시간만큼이나 짧고 강렬한 불꽃같은 것이 아닐까.
한편 한화 이글스 경기를 보며 웃고, 울고 화내고 스트레스 받는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한화 이글스 경기를 보며 느끼는 스트레스가 아무리(?!) 커도 내 삶의 스트레스만 하겠는가? 한화 이글스에 빠져 스트레스도 받고 아주 가끔 기쁨도 맛보는 것, 그것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다. 나는 오래 고민해봤자 해결 되지 않는 내 삶의 여러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스포츠 경기를 보며 삶에도 삼진, 홈런, 밀어내기, 역전패, 역전승이 있다는 진실을 배운다. 한화 이글스의 성적보다도 형편없을 내 삶의 성적표를 겸손하게 받아들 수 있는 시간을 번다.
거주지를 자주 옮기거나 자발적으로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원치 않는 현대인의 생활에서 '한화 이글스' 팬이 되는 경험은 잠깐의 소속감을 얻는 체험이며 가상 스트레스를 통해 진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만화 '추억은 방울방울'이 주인공에게 가상의 노스탤지어, 현대인에게 사라진 고향을 떠올리게 해주었다면 한화 이글스는 나에게 긍정적 의미에서 '가상의 공동체'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니까 이 글은 '가상의 공동체'를 통해 내 삶과 마음의 자리를 돌아보게 된 해피엔딩의 스토리이다.
오세란 :
어린이청소년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창비어린이》 편집위원, 청주교대와 충남대 출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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