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가 풍경. 본문 내용과는 관련 없는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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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가 내리던 오후였다. 찬바람 불고 서쪽 하늘엔 구름 사이로 기운 해가 언뜻언뜻 내비치던 스산한 날씨. 시내 쪽에서 마구 달려오는 작고 초라한 장례행렬이 있었다. 그런데, 종이꽃을 듬성듬성 매단 작은 가마가 자주 멈칫대는 거였다. 만장도 없는 그 행렬은 상여꾼 앞 뒤 한 명씩과 어린 소년 상주 한 사람, 그리고 자주 뒤돌아보며 속도를 조절하던 요령잡이 하나, 이렇게 네 명이었다. 어린 상주는 뛰며, 진눈깨비 질척대는 정강이 아래까지 늘어진 상복을 연신 끌어올리며 앞 선 상여를 필사적으로 따라잡던 거였다. 그렇게 그들은 해 지기 전 장례를 끝내고자 있는 힘을 다해 다리 건너 북쪽으로 멀어져 갔다.
그 시절 많은 이들이 저마다 희노애락을 품고 나무와 흙으로 된 다리를 건너다녔다. 이른 아침 시내로 떠난 이들은 어둑해져서 다시 다리를 밟게 된다. 그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건장한 남자들이 그랬다. 다리 위에는 반짝 야시장이 서고 종이상자를 좌판 삼아 식빵을 낱개로 풀어 파는 젊은 장사꾼도 있었다. 좌판 하나에 촛불 하나씩 밝혀놓고. 그러면 지친 이들이 호주머니에서 땀 젖은 지폐나 동전을 꺼내 빵을 사들고 가로등 없는 길을 따라 밤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삼성교 아래로 흐른 대동천은 대전천, 갑천과 만난 뒤 이십여 리를 더 나아가 이윽고 금강의 너른 품속으로 녹아든다. 이렇게 천과 천이 만나고 강과 합쳐지는 지점에는 비옥한 모래톱이 생겨나고 여기서 김장 재료인 무와 배추가 쑥쑥 자란다. 근교농업이 제대로 자리 잡는 것이다.
늦가을 서리 내리기 직전 삼성교를 건너는 긴 마차 행렬이 다리를 지나 시내 쪽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장관이다. 마부들은 더운 입김을 내뿜는 말 잔등을 가볍게 치고 외마디 외침을 내지르며 걸음을 재촉해 산처럼 실린 무, 배추와 함께 시내 큰 장터를 향해 나아간다. 다리 난간에 기대서서 보면 꿈틀대는 말 잔등과 마부의 낯빛보다 더 검붉은 조랑말의 눈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그리고 말의 몸뚱어리 여기저기 지렁이처럼 툭툭 불거진 핏줄도 선명했다. 그 시절 삼성교를 건너던 모든 목숨들은 하나같이 필사적으로 살아내던 거였다.
봄부터 가을까지 다리 아래 백사장에는 볕 좋은 날 여기저기 가마솥이 걸린다.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온 땔감으로 불을 지펴 빨래를 삶아 모래 위에 길게 널었다. 그 흰빛의 빨래들이 햇볕에 마르는 동안 사람들은 다리 아래 그늘 여기저기 나뉘어 밥을 먹고 낮잠도 길게 잤다.
해가 지면 다리 위쪽 웅덩이가 생긴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인근 여자들이 멱 감으며 철벙대고, 깔깔댔다. 그 다음은 소리 안 내고 하루치의 땀을 씻어내는 남자들 차례였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한국전쟁 바로 뒤 제 몫을 다하던 삼성교와 맑은 물이 흐르던 대동천 그리고 열심히 살아내던 사람들에 관해 짧게 추억한 것이다. 이제 그 자리엔 반세기가 지난 철근 콘크리트 다리와 잔뜩 흐린 물이 있다. 또한 추억 속의 바로 그 다리도 함께 낡아간다.
이면우
시인, <저 석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십일월을 만지다> 등 노작문학상 수상 현재 대전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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