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춘당
이경
호연재 김씨를 만나려면 대전 대덕구 송촌동 동춘당 공원으로 들어서야한다. 그곳에는 오랜 역사를 품은 '동춘당 종택'과 '소대헌·호연재 고택'이 잘 정비되어 있다.
'대전 동춘당 종택'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89호로 지정되었으며,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5대조 송요년(1429~1499)이 15세기 후반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90호로 지정되었으며,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1646~1697)가 1674년 종택에서 분가하여 법천동(현, 대덕구 법동)에 건립한 고택이다. 이후,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1682~1764)가 1714년에 현재의 위치(송촌동)으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호연재 김씨는 1681년 8월 19일 홍성군 갈산면 오두리에서, 아버지 김성달과 어머니 연안 이씨 사이에서 6남 4녀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호연재의 문학적 재능은 안동김씨의 가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19세에 동춘당의 증손 소대헌 송요화와 혼인했다. 호연재 남편의 가문은 당대를 대표하는 노론의 핵심가인 송시열 계열의 명문가였다. 28세에 아들 오숙재 송익흠(보은현감, 오숙재)을 낳고, 딸 하나를 낳았으며, 42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194 수의 한시를 남겼다.
호연재 김씨는 조선 후기 사대부 여성의 절제된 감정과 사유를 시문에 담았는데, 세 권이 전해진다. 친정마을 오두리를 추억한 34수 <鰲頭追致>오두추치, <浩然齋遺稿> 호연재 유고집과 스스로를 곧추 세우는 경구 92수 <自警篇> 자경편이 후손 송용억에 의해 출간되었다.
호연재 김씨는 조선후기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시를 쓴 여성문인이었으며,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뒤를 이어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연재 김씨와 동춘당 달빛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