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를 꽂은 애국국민자신을 애국시민으로 소개한 노인이 태극기를 꽂은 모자를 쓰고있다.
신나리
<조선일보>를 절독했다는 노인이 일베(일간베스트)를 권했다. 좀 전까지 가방을 들고 세월호 리본을 떼려했던 노인은 "노랑 거 붙이고 다니지 말고, 정신 차리고 일베 봐"라며 "거기 가면 빨갱이 폭도들에 대한 진실이 나와 있어. 거짓 나부랭이 뉴스에 속지 말고 일베 봐"라고 거듭 강권했다.
이들은 기존 언론이 '가짜뉴스'를 만들어낸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진실'은 일베에 있었다. 노인들이 추천한 일베에 실린 '진실'이란 무엇일까. 최근 일베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이끌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가 1999년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올라왔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법무부에 확인한 결과 박 검사가 성추행에 관련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지만, 일베에 게시된 글은 여전히 유령처럼 SNS를 떠돌고 있다.
촛불집회와 북한군 특수부대 요원을 연관시키는 글도 있었다. "거물급 고정 간첩의 측근이 술 마시고 중얼거린 말인데, 촛불집회를 5.18 광주폭동처럼 만들려고 상당수의 북한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서울에 잔뜩 들어와 있다"는 글 역시 일베와 SNS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다른 게시글은 "만약 헌재가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리면 헌재가 폐지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거짓말은 뿌리 뽑아야지"토요일인 11일 오후 70여 대가 넘는 관광버스가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몰려들었다. 경남 함양 1호차, 부산 23호차, 포항 1호라는 푯말이 붙은 버스에서 한 손에 태극기를, 다른 손에 성조기를 쥔 이들이 내렸다.
탄기국은 이날 전국에서 210만여 명이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혼자 왔어? 이리 와, 나랑 같이 가." 대한문 앞에서 한 노인이 기자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의 배낭에는 60cm 이상 길어 보이는 태극기 깃발이 꽂혀 있었다. 노인은 익숙하다는 듯이 태극기를 잡아 빼 깃발을 더 높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태극기가 너무 짧아. 내일은 딸애한테 낚싯대 사다가 태극기 꽂아달라고 해야겠어."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서 왔다는 노인은 딱 한 번 빼고 열 한 번의 태극기 집회에 모두 참석했다. '가짜뉴스'를 보고 원통이 터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박사모 정광용 회장님이랑 내가 아는 사이거든. 회장님이 카톡에 보낸 글을 보니까 손석희가 최순실 PC갖고 거짓말을 한다더라고"라며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은 수천 개의 태극기가 휘날렸다. 온 몸에 태극기를 두르고 성조기를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시청역 5번 출구 앞에서 작은 태극기를 1000원에 파는 사람도 있었다.
노인은 그 앞을 지나며 "태극기를 주는 게 아니라 파는 거야? 그럼 박사모가 아니네. 민노총에서 와서 파는 거야"라며 소리를 높였다. 이어 태극기를 사려 했던 사람들에게 "저거 민노총 빨갱이들이 돈 벌려고 파는 거야"라며 말렸다. 상인은 "저도 애국시민입니다"라고 외쳤지만, 주위 노인들은 이미 "민노총이래"라며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