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평양의 맥주집. 두 여성이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은미
강연 내용에서 흠을 잡아내는 데 실패했는지, 검·경은 이번엔 2012년 11월에 출간된 <재미동포 아줌마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의 집중 분석에 들어갔다. 누군가가 서문부터 마지막 장까지 노란 형광펜으로 필요한 대목 일부분만 줄을 그어놨다. 그리고 그 단편적인 문장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면서 북한을 고무 및 찬양했다는 질문을 내놨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고 말함으로써, 마치 북한이 지상낙원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는 식의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러더니 이번엔 또다시 '북한 맥주'로 돌아간다. <오마이뉴스>에 올린 연재 기사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중 내가 평양의 맥줏집에서 목격한 여성들에 대해 쓴 부분을 물고 늘어졌다. '평양의 고급 맥줏집에서 여성들이 술을 마신다고 적어놨는데, 북한에서는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한 병에 수십, 수백만 원짜리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럴 수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수사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직업상 하는 수 없이 임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정예 경찰이 이런 질문을 하다니 스스로 얼마나 한심하다고 느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는 이들의 변호사들이 '일일이 대꾸하는 대신 가능하면 묵비권을 행사하라'는 조언을 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책 내용에 근거한 질문 중 가장 어리석었던 것은 내 신앙고백과 관련한 대목에서 나왔다. 첫 북한여행 당시를 담은 기행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진정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살았을까. 내 이웃은, 내 형제는, 내 민족은 다름 아닌 바로 설경이고, 만룡 안내원이며, 리인덕 운전기사 아저씨인 것을…. 먼 길을 돌고 돌아서야 만날 수 있었던 사랑하는 이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들이 바로 내 그리운 반쪽 나라, 내 민족, 내 선한 이웃이었다. 회개하는 심정으로 창밖 하늘을 바라본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었다."2011년 10월 열흘간의 첫 북한방문을 마치고 평양을 떠나며 독백한 나의 신앙고백이다. 경찰은 나의 신앙적 체험을 통한 회개의 글귀까지 끄집어내면서, '이렇게 감동을 주는 글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북한을 좋아하게끔 선전·선동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진정 모국 한국에서는 신앙고백마저 북한동포들에 대한 것이라면 죄가 된다는 말인가.
내가 '종북'이라면 문체부와 통일부도 '종북'내 첫 책이 한국 정부로부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됐을 당시 나는 이것을 개인적인 명예나 영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전직 음악 교수이며 전업주부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날아갈 듯 기뻤다. 우수문학도서 선정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 통일에 관심을 두게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 내 기행문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한 문화체육관광부와 2013년 8월 나를 통일 홍보용 다큐멘터리에 출연시켜준 통일부에 감사했다.
이렇듯 문체부와 통일부에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음에도 나는 수사 과정에서 차마 하기 싫은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수사관이 말끝마다 '선전·선동' 운운하길래 문체부와 통일부의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기행문을 통해 북한을 선전하고 독자들을 선동했다면, 제 책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이 책을 무려 1200권이나 사들여 전국 공공 도서관에 배포한 문체부와 저를 출연시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통일부도 북한 선전·선동에 앞장섰다는 말인가요? 그럼 문체부와 통일부도 함께 수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수사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통일 토크콘서트'가 종북몰이 대상이 되자 통일부는 내가 출연한 동영상을 통일부 누리집에서 내렸다. 그리고 문체부는 국무총리 지시에 따라 내 책을 전국 공공도서관에서 회수해버렸다.
책과 <오마이뉴스> 연재 기사에서 북한을 고무·찬양한 혐의를 찾지 못한 경찰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수 없겠다는 판단을 했는지 이번엔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를 밝히기 위한 조사에 돌입했다.
수사관은 내게 "통일콘서트가 어떤 행사인지 다음 중 하나를 골라주십시오, 정치, 경제, 예술, 문화"라고 물었다. 나는 "문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수사관은 내 대답을 무시하고 '외국인이 무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통일 토크콘서트 같은 정치활동을 했으니, 이는 출입국관리법 위반인 동시에 강제 추방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수사관의 말 한마디에 문화 행사가 '정치 활동'으로 둔갑해버리는 순간이었다.
지난 1월, 한 무리의 미국인들이 한국에 입국해 대북 전단을 날렸다. 이 미국인들이야말로 여차하면 남북 간에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정치 활동을 한 것이다. 요즘 수많은 외국인들은 나처럼 무비자로 입국을 하는데, 그 미국인들은 도대체 무슨 비자를 받고 한국에 입국했길래 그런 위험천만한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통일부는 "강제로 규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왜 이들에게는 '정치 활동'의 낙인이 찍히지 않았는지 법무부는 밝혀주기 바란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을 불법고용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