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0일 오후 8시 20분께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씨의 토크 콘서트에서 고교 3년생 A군이 인화성 물질이 든 냄비를 가방 안에서 꺼내 불을 붙인 뒤 연단 쪽으로 향하다가 다른 관객에 의해 제지됐다.
연합뉴스
정신을 잃고 서 있던 나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강연장 뒤에 있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를 주방으로 피신시킨 분은 그날 초청가수로 출연한 백자라는 분이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몸을 숨기듯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몰래 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참 뒤 불에 탄 자국이 난 옷을 입고 나타난 남편과 함께 나는 사람들의 경호를 받으며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익산의 한 독자님 댁으로 갔다.
모든 사건들이 현실 속이 아닌, 뿌연 영화 속 슬로비디오 장면처럼 지나갔다. 폭발물을 몸으로 막은 분은 얼굴과 팔에 화상을 입고 입원했으며 토크콘서트를 주최하신 이재봉 교수님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 후송됐다고 한다. 그리고 관객 중 몸이 불편해 잘 걷지 못하는 한 신부님은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구출될 때까지 유독가스를 마시곤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고 한다.
당일 관객이 너무 많아 강연장 칸막이 문을 모두 밀어 접어놨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 사고가 발생할 뻔했다. 당시 그 성당은 구석에 작은 문이 하나밖에 없었다. 연기로 인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한국에서 북녘의 산하와 동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듣다가 폭발물 테러를 당할 수도 있다니…. 조국의 평화 통일은 아직 요원하다는 생각에 목이 메인다(
익산 통일 토크콘서트 보러가기).
"어서 이 나라를 떠라나"... 공항에 갔더니 '출국금지'익산에서 뜬눈으로 하룻밤을 보낸 나는 곧바로 서울로 향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누군가가 미리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청년이 들어오자 자리를 내주고 사라졌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쿵쾅거리며 뛰고 있는 심장이 안정을 되찾지 못한다.
서울에 도착한 남편과 나는 미국 영사관으로 직행했다. 우리의 연락을 받은 로베르토 파워스(Roberto Powers) 영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영사에게 전날 강연장에서 있었던 폭발물 테러사건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만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영사는 이미 알고 있는 듯 우리에게 "어서 이 나라를 떠나라"고 조언한다.
원래 비행기표 예약이 다음날로 돼 있어 이날 자리가 있을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우리 자리는 비즈니스석이라 아마 좌석에 여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국서 올 때도 자리가 넉넉했으니까. 우리는 독자분께서 제공해주신 차량에 올라 영사의 지시대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라디오에서 "법무부는 신은미씨의 출국을 열흘간 중지했다"라는 뉴스가 나오는 게 아닌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출국정지를 당했다는데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아니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보통 외국인을 출국정지 시킬 경우 해당국 영사관에 통보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미 영사관에 확인해 보시죠. 저희도 여기저기 알아보겠습니다."우리는 곧바로 로베르토 파워스 영사에게 전화를 걸어 "대한민국 법무부로부터 에이미 정 (Amy Chung, 나의 법적 이름)의 출국금지를 통보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영사는 그런 일이 없다며 내게 '일단 출국을 시도하고, 안 되면 바로 전화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체크인을 위해 대한항공 카운터로 가서 여권을 제출했다. 항공사의 직원이 한참 모니터만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이 없다. 기다리다 못해 남편이 묻는다.
"좌석이 없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좌석은 얼마든지 있는데…. 저…, 혹시 체류기간을 넘기시거나 하시진 않았나요?""아니요. 보시다시피 예정일보다 오히려 하루 빨리 출국하려고 하지 않습니까.""아…, 참, 그러시죠. 저…, 에이미 정 승객님께서 출국정지가 돼 있어서 법무부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가셔서 확인해보셔야겠습니다. 승객님."우리는 공항의 출입국 관리소로 가서 나의 출국금지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출국금지가 내려졌을 경우 곧바로 전화하라'던 로베르토 파워스 영사에게 전화를 해봤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그날 온종일 우리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공항의 와이파이를 이용해 미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하려 메일을 열었다. 그러자 '질긴놈'이라는 사람이 보낸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질긴놈? 누군가가 아직도 폭발물을 들고 '질기게' 나를 추적하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질긴놈'의 메일을 열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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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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