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미 시민기자와 관련한 보도를 내보내고 있는 TV조선
TV조선 갈무리
아침. 일어나 텔레비전을 켜보니 '신은미 주체사상을 옹호하다'라는 내용의 뉴스가 나온다. 종편을 비롯한 몇몇 언론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뉴스로 만들어내는 '비상한 재주'를 타고났나 보다. 이 뉴스를 만든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주체사상이 뭔지 내게 알려줄 수 있는지 말이다. 뭘 알아야 옹호도 하고 찬양도 할 게 아닌가.
이것이 말로만 듣던 '종북몰이'인가. '종북'이라는 말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한마디로 '빨갱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다른 쓰임도 있다. 공산주의자(또는 빨갱이)가 아닌 사람이 북에 호의적으로 비칠 수 있는 (또는 사실대로) 말을 할 경우, 다른 사람이 그 발언을 한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빨갱이'라는 말 대신에 '종북'이라는 편리한 말을 쓴다.
이런 종북몰이의 배경에는 국가보안법이 있다. '종북'의 특성 중 하나는 점점 범위가 넓어진다는 데 있다. 심지어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과 함께 슬퍼하고 행동하는 사람들까지도 '종북'의 범위에 속한다.
나는 깨달았다. 한국 사회가 '종북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것을. 문제가 된 조계사 통일콘서트에 출연한 국회의원은 텔레비전에 나와 "조계사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우연히 들렀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이 말이 종북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나서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참석해 격려를 해주는 게 보기 좋은 일 아니었을까. '통일의 꽃'이라 불리는 그 국회의원에게 '통일'은 그의 정치적 자산(political capital)이다. 나는 그가 자신의 훌륭한 자산을 훌훌 털어 버리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누구도 "너 종북이지?"라는 질문에 "그래, 나 종북이다"라고 반박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자신은 종북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지만 오히려 종북의 올가미에 더 깊게 걸려들기만 할 뿐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검열을 한다. 진보를 자처하는 인사들조차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두고 "나는 그 당에 절대 반대하지만"이라는 전제를 깔고 나서야 "정당해산 심판은 잘못됐다"라고 첨언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나는 내가 북에서 보고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러니 종북몰이를 하는 이들에게 나보다 더 좋은 먹잇감은 없었을지 모른다.
종북으로 모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종북이 뭐냐'고 물어보고 싶다. '내가 본' 북한과 북녘동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 모국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협력 나아가 통일을, 그것도 평범한 민간인이 원하고 이야기하면 '종북'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종북'이야말로 멋진 별명 아닌가.
"그래, 난 통일을 염원하고 북녘동포들을 사랑하는 '종북'이다!" 조국에 있지만 갈 곳이 없다예정대로라면 나는 2014년 11월 26일 서울을 떠나 중국 심양을 거쳐 평양으로 가게 돼 있었다. 그러나 에볼라로 인한 북한의 외국인관광객 입국금지 조치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나는 비행기 예약을 취소하고 겨울 북한 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의 다음 일정은 12월 6일부터인데 그 사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남편과 나는 타이완과 말레이시아에 있는 친구들을 찾아 여행이라도 하고 돌아올까 생각해봤으나 지금은 여행을 할 기분이 전혀 아니다.
대신 우리는 기분 전환을 위해 숙소를 바꾸기로 했다. 호텔에서 나와 한 대학 안에 있는 외국인 교수 전용 숙소로 거처를 옮겼다. 남편이 다니던 대학이다. 돌아가신 시아버님도 이 대학 교수셨다.
방이 세 개 있고 부엌이 있는 아파트 같은 곳. 가정집 분위기가 나서 호텔보다 훨씬 좋다. 게다가 이곳은, 남편이 미국에 오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옛집이 있던 곳으로부터 몇십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남편의 옛집은 현재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나도 이 대학 근처에 있는 대학을 다녀서인지 친근감이 배가 된다. 남편과 나는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한동안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정했다...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