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에 뿌리내린 동강할미꽃, 동강을 굽어본다.강기희
설레는 마음으로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남쪽에서 들려오는 꽃 소식도 부럽지 않았다. 하루 한 번은 동강으로 갔다. 동강할미꽃이 피었는지 확인하는 일로 며칠을 보냈다. 날은 궂었다. 궂은 날에도 동강할미꽃은 하나씩 싹을 틔웠다.
동강할미꽃이 꽃대를 밀어올리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임 마중 나가는 심정으로 동강변으로 나갔다. 꽃이 피어나길 기다리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았다. 부끄러운 듯 피어나는 동강할미꽃은 미세한 바람에도 자주 흔들렸다.
꽃이 피어날 무렵 비가 연일 내렸다. 장대비를 동반한 폭우도 지나갔다. 비로 인해 동강엔 때아닌 장마가 졌다. 강한 폭우가 내리는 시간 가리왕산엔 폭설이 내렸다. 흰눈을 덮고 있는 산과 붉은 물의 홍수. 요즘 동강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생강나무 핀 동강변에도 봄은 오고
간밤엔 바람이 강했다. 바람이 휩쓸고 간 자리엔 몸을 눕힌 풀들이 힘겹게 굽은 어깨를 편다. 오늘은 먼 산이 가려질 정도로 하늘이 뿌옇다. 처음엔 안개라고 생각했다. 안개낀 산자락이 멋스럽다며 카메라를 들고 나서는데 느낌이 다르다.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것은 안개가 아니라 황사먼지다.
중무장을 하고 강원도 정선 귤암리의 동강변에 섰다. 봄꽃이 지고 있다는 남쪽과 달리 동강변은 이제 봄을 맞았다. 산자락에 핀 생강나무가 이 고장에도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알린다. 어젠 여주에 터를 잡은 홍일선 시인과 통화를 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정선도 진달래 졌지?"
"예? 여긴 아직 피지도 않았는걸요."
"그래? 부러운걸."
"부럽긴요, 여기선 꽃동네가 더 부럽습니다."
벚꽃 축제가 한창이라는 남쪽 소식은 먼나라 이야기 같다. 요즘 정선에서 볼 수 있는 꽃은 산수유와 생강나무꽃밖에 없다. 개나리나 진달래, 목련은 저들이 피어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생강나무꽃은 산수유꽃보다 색이 짙다. 정선지역에서는 동백(동박)이라 부른다. 동백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 머리에 바르던 옛 시절이 있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 '정선아라리' 가사 중에서
동백나무 열매는 가을에 빨갛게 익는다. 그것이 다시 까맣게 익을 무렵 따서는 기름을 짠다. 그렇게 짠 기름이 동백기름이다. 그 사연을 올해 일흔다섯이 된 어머니께 물었다.
"옛날에 동박낭구 열매를 따 기름을 짜서는 머리에 바르곤 했지. 바를 게 있었어야지. 그것도 멋쟁이들만 했지 아무나 못했어. 가격도 비쌌어."
어머니도 동백기름을 몇 번 발라보지 못했단다. 귀한 동백열매를 따러 간다는 핑계는 정선아라리 가사에도 나온다. 아우라지 처녀가 강 건너 마을인 싸리골에 있는 총각을 만나러 가기 위해 강변에 나서지만 장마로 인해 뱃사공은 배를 띄우지 않았다.
처녀는 싸리골에 있는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며 뱃사공에게 하소연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싸리골에 있는 총각이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시시장철 님 그리워 못 살겠다고 노래를 받아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선의 봄소식을 알려주는 진객 '동강할미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