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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중앙병원 빈소 앞에 유가족이 내건 천글씨
예산 중앙병원 빈소 앞에 유가족이 내건 천글씨 ⓒ 심규상
'최근 기간제 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강요해 교권을 침해하고 전교조 비하 발언을 했다'며 전교조 충남지부와 논란을 벌여오던 한 초등학교 교장이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해당 교장이 유서를 남기지 않아 죽음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밝혀지고 있지 않는 가운데 각 언론들은 '전교조와 갈등으로 자살' '전교조의 활동에 대한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등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전교조가 자살의 직접 동인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언론이 진위 확인보다는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전교조 활동이 잘못된 것으로 비쳐지게 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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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측도 언론보도와 주변 진술을 토대로 "기간제 여교사와 전교조 충남지부가 사실을 왜곡했고 이를 일부 언론이 사실확인 없이 전달해 죽음을 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가족 측은 이어 지난 5일 기간제 여교사 진모씨(28)와 전교조충남지부장 고모씨 등을 예산경찰서에 형사 고발한 상태다.

@ADTOP1@
고 서 교사의 영정과   빈소
고 서 교사의 영정과 빈소 ⓒ 심규상
유가족측은 또 서 교장의 빈소가 마련된 예산중앙병원 영안실 입구에 '기간제 여교사와 전교조 교사의 조문을 거부한다'는 천 글씨를 내걸었고 빈소에는 예산군 초중등교장장학협의회 명의의 '사인동기 철저 규명, 단위학교 책임경영 실현'이라고 씌여진 천 글씨를 내걸고 조문객을 맞고 있다.

이와 관련 이 학교 홍승만(58) 교감은 지난 달 28일 충남도교육청 홈페이지에 해명글을 올렸다. 홍 교감의 '차 시중' 논란과 관련한 해명의 요지는 이렇다.

"진 교사에게 교장선생님은 부친상 중이시라 학교에 요즘 못 나온다고 하면서 진 선생님을 위하여 한마디했다. "진 선생님도 예산 사시고 교장 선생님도 예산 분이시니 근무 잘하고 어린이 지도 잘해 다음에도 또 채용 되게끔 잘 보여드려야 돼요" 그러자 "진 선생님이 '예'하고 대답했다.

교장선생님께서 나오시는 2월27일.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는 진 선생에게 의자를 내서 앉으라고 하자 "교감선생님 차 한잔 드릴까요?"해 "좋지요"하고 대답했다. 이어 "진 선생님 교장선생님이 지금 막 교장실로 가셨는데 교장선생님도 한잔 드리는 게 어떻겠어요"하니 "예" 하면서 차 한잔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드린 것이 전부였다. 매일 아침마다 교장선생님 차 접대하라고 하였다는데 그날 (그런)말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진 교사의 진술은 다르다. 진 교사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3월 7일. 교감 선생님이 '교장선생님께 잘 보여야 한다'며 '아침에 교장선생님 차 좀 갖다드리라'고 했다. '그렇겠다'고 했지만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매일 아침마다 차를 갖다드리라는 소린가'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다음 날 교감선생님을 면담, '출근하면서부터 아침활동 지도를 해야 하고 교재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 매일 아침마다 교장선생님 차 드리는 것은 부담스럽다' 말했다.

그러자 교감선생이 "진 선생 직장 생활 안해 봤나? 하기 싫으면 하지마! 못하는 건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못 하는 거야?" 재차 되물었다. "못 하겠습니다"고 말하고 마음을 다스리느라 1교시 도덕시간과 2교시체육을 교환하기로 했다. 체육은 운동장 사정이 좋지 않고 날씨가 추워 책 읽기로 대체하고 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교실로 들어와 절대 수업시간표 바꾸면 안 된다"고 했다.

'사인동기 철저 규명과 단위학교 책임경영 실현' 예산군 초등교장단은 전교조에 의해 책임 경영권이 실추당했다는 주장이다.
'사인동기 철저 규명과 단위학교 책임경영 실현' 예산군 초등교장단은 전교조에 의해 책임 경영권이 실추당했다는 주장이다. ⓒ 심규상
이날 낮 수업 끝나고 교실로 오는데 교장이 계약서를 꺼내 보이며 "계약서에 '기타 업무 이행'이 있는데 불이행시 그만둬야 해. 나도 교육위원회에도 회부해야 하고. 빨리 말해. 말해야 나도 사람을 구할 게 아닌가. 옆에서 충동질한 사람하고, 만약 접대할 거면 어디까지 하겠는지. 교감한테는 못하겠다고 했다며. 당돌하군. 윗사람이 시켜서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전교조야. 진 선생 전교조야?"

몇 번을 이런 식으로 다그쳐서 "그럼 제가 그만두겠습니다"하니 교장과 교감선생님이 수그러들어 결국 찻잔 정리와 손님 접대 준비로 합의했다.

사표 제출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홍 교감과 진 교사의 진술이 서로 다르다.

진 교사는 "본격적인 괴로움은 그날 이후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갈아가며 수업 중에 들어와 큰 소리로 야단쳤다. 온갖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모르는 게 있으면 옆 반 선생님께 물어보며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지만 교장은 기간제 수업에 참관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면서 계속 단점을 지적하고 겁을 줬다.

3월 18~19일 머리가 아프고 학교 갈 생각만 하면 몸서리가 쳐 병가를 내고 결근했고 20일 사직을 결심하고 이날 아침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를 받자마자 교장은 사표를 수리했다.

지금도 '수업 중에라도 손님이 오면 키폰으로라도 연락해서 내려와 차를 타야 한다'는 그분들의 말씀이 귓가를 맴돈다. 교권이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느꼈고 여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접대를 강요받으며 상처 받는 기간제 교사가 없었으면 하는 제 바람에 이 글을 올린다."

이에 대한 홍 교감의 주장은 이렇다.

"사직처리는 진 교사가 18. 19일 이틀간 결근을 하고 20일 출근해 사직원을 가지고 와 '어느 직장이든 처음엔 다 어려우니 조금만 참고 견디면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만류했다. 진 선생과 교장실로 가서 또 만류했지만 '그만두겠다'고 해 사직처리했다.
이것이 진 선생과의 사건전모인데 진 선생이 인터넷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고 교직에 한평생을 몸바친 저로서는 서글픔만 느껴진다."

"서 교장 거듭 서면사과 약속했었다"

이 문제는 진 교사가 지난 달 20일, 도교육청 홈페이지 등에 글을 올리면서 공론화됐고 지난 달 24일 전교조충남지부의 이 학교 항의방문으로 이어졌다.

26일엔 예산교육청 장학사, 서 교장, 진 교사, 전교조 관계자 등이 전교조 충남지부 사무실에서 만났고 이 자리에서 서 교장은 "진 교사의 복직과 계약서상 '접대 및 접대기구(찻잔 등) 관리 조항' 서면사과 등을 모두 긍정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빈소 앞
빈소 앞 ⓒ 심규상
하지만 28일까지 하기로 했던 서면사과는 서 교장이 수용의사를 밝힌 반면 홍 교감이 진 교사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거부해 실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전교조 충남지부의 설명이다.

전교조 충남지부 관계자는 "보성초 교감이 진 교사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엄연히 사실"이라며 "때문에 진 교사의 복직이 이루어졌고 서 교장도 이를 시인하고 26일과 28일 거듭 서면사과문을 제출하기로 약속했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예산군 초·중등 교장단 장학협의회가 열리고 언론에 알려지는 등 파문이 확산됐고 서 교장은 지난 4일 새벽 돌연 목을 매고 숨졌다.

언론, '전교조의 강압과 과도한 대응'으로 몰아 '

그러나 다음 날 각 언론의 관련 기사는 이렇다.

<조선> 초등학교 교장, 전교조와 갈등으로 자살/ 여교사에게 차 심부름을 강요하고 전교조 비하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전교조의 사과요구를 받아오던 초등학교 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민> 전교조 사과요구에 고민 초등학교 교장 자살 /4일 오전 10시쯤 충남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이모씨(85) 집 옆 은행나무 가지에 이씨 아들인 예산 B초등학교 서모 교장(58)이 나일론끈으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부인 김씨(52) 등이 발견했다.

<동아> 전교조 사과요구 받던 교장 자살/ 한 초등학교 교장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으로부터 '기간제 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강요하고 전교조 비하발언을 했다'는 주장과 함께 서면사과를 요구받아 오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최근 일선 교육현장에서 발언권을 높이고 있는 전교조의 활동에 대한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전교조충남지부 홈페이지에는 '살인집단' '책임 져라' 등 비난의 글이 연일 수백여건씩 쏟아지고 있다.

전교조충남지부 사무실
전교조충남지부 사무실 ⓒ 심규상
충남 예산군 초·중등 교장단 장학협의회도 "평소 아동교육을 위해서는 신명을 다 바친 서 교장이 참담한 결단을 내리시기까지의 고뇌에 대하여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동병상련의 좌절을 느낀다"며 이번 일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고 동시에 우리 교육이 바로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자신을 신문방송학과 학생이라고 밝힌 송 모씨는 전교조충남지부 홈페이지에 남긴 글을 통해 "사건의 핵심은 '여교사를 성차별한 교장의 자살'에 있는데도 언론이 성차별 여부 등 사실확인과 본질을 뒤로 한 채 전교조의 과잉대응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교조 충남지부, 핵심은 "의도적인 부당한 억압"

전교조 충남지부는 당초 서 교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심정이 커 아무런 논평도 내지 않기로 했으나 최근 언론보도 내용이 '전교조의 강압과 진 교사의 과도한 대응이 빚어낸 참극'등으로 다뤄지자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충남지부 관계자는 "언론이 이 사건을 '차 한잔에서 비롯된 일'인 양 이야기하고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차 대접을 거부한 진 교사에게 수업시간에 예고없이 들어와 학생들 앞에서 큰소리로 야단치고 겁을 주는 등 본인이 견디기 어려워 사직을 해야 할 만큼의 부당한 억압이 의도적으로 가해졌다는 사실에 있다"고 밝혔다.

전교조충남지부의 또 다른 관계자도 "서 교장의 죽음에 비통한 심정 금할 길 없다"며 "어떤 이유로 목숨을 끊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전교조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사건의 본질과 사실 관계마저 뒤집으려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편 서 교장의 장례는 오는 8일 보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교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사건 일지

▣ 3월 20일 진 교사 사직서제출. 교육부 부조리 신고센터 등 인터넷 게재
▣ 22일 교육청 진상조사
▣ 24일 전교조 충남지부 보성초 방문
- 진 기간제교사 보성초 원상복귀, 학교장 서면사과 등 요구 공문 접수
▣ 25일 교육청 진** 기간제 교사 인테넷내용 사실조사 후
- 업무분장에 제시한 접대 및 접대 기구관리에 대하여 현지 구두 시정조치
- 진 교사 교육청 만나 서운함 호소/ 마음이 울적함 / 학교장 사과요청
▣ 26일 서 교장 / 교육청 장학사 / 전교조 대화
- 서교장, 진 교사 재임용, 서면사과 모두 긍정 검토
▣ 28일 진 교사 재임용
-서 교장, 충남지부 들러 '서면사과 하겠다' 거듭 약속.
-서 교장, 학내 전교조 조합원에게 '사과문 교감이 반대' 말함.
▣ 29일 전교조충남지부 교육장 면담
- 학교장의 서면사과 요구 및 교육청의 사실조사 및 조치사항 미흡 항의
▣ 31일 전교조 교육청 시위
-학교장 서면사과 요구
▣ 4월 1일-2일 보성초 사건 각 신문게재
▣ 2일 예산군 초등교장단회의에서 이 문제 주요 논의
▣ 4일 서 교장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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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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