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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부모 이야기, 그 중에서도 치매는 텔레비전 특집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다. 자료를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1995년 SBS 창사 특집 드라마〈인생〉이 그랬고, 1996년 5월, 역시 SBS가 민영 TV의 날 특집 드라마로 방송한 〈아까딴유(태국말로 불효자라는 뜻)〉가 그랬다.

올해도 SBS는 노년의 두 어머니 이야기와 치매를 특집 드라마의 소재로 삼고 있다. 노년의 자리가 힘들고 어려운 만큼 자녀 세대가 겪는 고통 또한 만만치 않아 드라마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갈등 구조가 명확해 드라마를 끌고 나가기가 오히려 수월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7, 8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맏며느리로서 시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친정 어머니를 모셔야만 하는 딸의 이야기가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 집안의 사연이 골고루 펼쳐져 구성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는 정도이다. 갈등구조는 다양화 됐지만, 치매에 대한 이해 부족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보자. 명희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학원 강사. 방송 작가인 남편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집안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 세자매의 큰딸로 친정 어머니를 모셔야 하기 때문에 시어머니는 둘째아들 집에서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짐을 챙겨서 큰 아들네로 오신다. 분홍 보자기로 곱게 싼 한복 상자 속에는 영정 사진으로 쓸 검은 테의 사진 액자가 들어 있다. 아들네 집에 오셨지만 모든 게 낯설고 편치 않은 시어머니, 딸네 살림을 다 맡아 해 주시면서도 시어머니 앞에서 괜히 주눅 드는 친정 어머니.

두 분의 팽팽한 신경전은 계속되고, 급기야 친정 어머니는 둘째딸네로 가버리신다. 그리고 이어지는 치매 진단. 한쪽에서는 어머니 모시는 일로 삼형제가 설왕설래하고, 또 한 쪽에서는 치매 어머니 일로 세자매가 우왕좌왕한다.

그러는 가운데 친정 어머니의 치매 증세는 날로 심해져 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아들들은 아들들대로 자기 어머니를 앞에 두고 서로 '모셔라, 절대 못 모신다' 미루며 치고 받고 싸우느라 난리를 피운다. 아들 개개인의 사정이 하나같이 다 딱하기는 하지만, 이리 저리 공처럼 던져지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워 어머니는 정말 죽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들들이 어머니 모시는 일을 서로 떠넘길 때 그 아들들을 보며 앉아 있어야 하는 어머니…. 지금 여기서 노년으로 사는 것이 너무도 구차하고 서글퍼 그 어머니 대신 내가 펑펑 운다. 영정 사진 액자를 보자기에 싸들고 이 아들네서 저 아들네로 옮겨 다니시는 그 모습이 너무도 외롭고 쓸쓸해 또 펑펑 운다.

자신으로 인해 딸과 사위의 불화가 계속되자, 친정 어머니는 모아 놓은 약을 한꺼번에 삼키지만 어렵게 목숨을 구한다. 그러나 그동안 단 한 번도 아프다는 말씀이 없으셨던 시어머니가 신부전 말기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것을 알고는 대신 나서 주시고, 그동안 뒷바라지 한 시동생들에게 차용증을 받아주시며, "네가 네 엄마를 모시려고 그렇게 애쓰는 게 무슨 잘못이냐"며 며느리에게 말씀하시던 시어머니. 뒤늦게 시어머니의 진심을 안 명희는 시어머니 간병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느 날 밤, 침대 밑 보호자 침대에 누운 명희에게 안사돈의 미음 걱정, 시동생들 부탁, 뒷마당 손질, 아들 잘 돌봐달라는 당부, 며느리 건강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다 챙기고 조용히 숨을 거두신다.

드라마에서 드러난 문제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치매 환자 돌보기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친정 어머니에게 치매 증세가 나타났을 때 얼른 병원에 모시고 가 진단을 받은 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사람들의 머리채를 잡고 때리기까지 하는 '문제 행동'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나서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

더구나 '배회' 습관이 있어 다섯 번이나 집을 잃어버렸는데도 환자의 옷에 이름표를 달아준다든가, 손목에 치매 팔찌를 끼워준다든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치를 하나도 취하지 않는다. '배회'를 막기 위해 잠시 집이 비어 있게 되면 방문에 자물쇠를 잠글 뿐이다.

치매는 개인이나 가족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가까이에 있는 '노인복지관 치매 주간보호소'라든가 '서울시치매종합상담센터', '한국치매가족협회' 등에 전화 상담이라도 한다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기본적인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방송에서 언제까지 계속 치매를 가족끼리만 부둥켜안고 씨름하다가, 결국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상처 입히고 상처 입는 모습으로만 보여줄 것인가. 참으로 답답하다.

또 한 가지는 노인 요양 시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다. 도저히 견디기 어렵게 된 명희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겠다고 하자, 동생들은 "그딴 곳에 못 보내!"하며 돈이 많아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한다고 비난하면서 "실컷 부려먹고 내다버린다"고 공격한다.

물론 어머니에게는 남편 같고 아들 같았던 큰언니 그늘에서 동생들이 가졌을 상처를 짐작 못할 바는 아니지만, 노인 요양 시설을 꼭 그렇게 그렸어야만 했을까.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해도, 요양원 입소 절차를 알아보면서 동시에 그들의 갈등과 화해를 그릴 수는 없었던 것일까.

또 하나 크게 아쉬웠던 것은 자녀들이 어머니를 가리키는 호칭이다. 큰아들, 큰며느리, 작은며느리, 작은 딸 할 것 없이 다들 '노인네'다. 어머니가 안 계신 데서는 물론이고 어머니가 버젓이 눈앞에 계신데도 그저 '노인네'다. '노인네'는 곧 '늙은이'라는 뜻. '어머니'라고 하면 될 것을 '노인네'라고 하는 순간, 어머니는 정말 너무도 귀찮고 보잘것없고 거추장스런 낡은 짐이 되고 만다.

나중에 치매 걸린 사돈의 얼굴을 깨끗하게 씻겨 주시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 분들의 그런 모습이 조금만 더 일렀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아들 유세와 잘난 딸 자랑을 조금 일찍 그만두고 두 분이 사이좋게 사셨더라면 두 분의 노년이 그런 대로 좋았을 것을….

죽음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화해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노년을 다룬 드라마 자체가 물론 소중하지만, 노년의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더욱 더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죽기로다 우리들 키운 죄 밖에 없는' 내 어머니, 이 시대 어머니들의 외침에 답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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