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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아버지는 스물 여덟에, 나흘만 다녀오겠다며 부모님을 떠나오신 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셨다. 부모님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다는 괴로움이 여든 하나 되신 아버지 가슴에 뼈아프게 새겨져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역시 아무 기억이 없다.

나의 두 딸은 나와는 전혀 다르게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모두 건강하시고 가까이 살고 계셔서 자주 만나는 편이다. 종이 접기를 배우신 할아버지가 손수 만들어주신 꽃이며 인형을 받아들고 좋아서 입이 벌어지는 아이를 보거나, 할아버지 생신 선물이라며 용돈을 모아 산 손수건 석 장을 열심히 포장하는 아이를 보면 예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할아버지들이 우리 아이들을 대하시는 것을 보면 솔직히 손자, 손녀가 좀 다르고, 친손과 외손이 또 다른 것 같다. 물론 표나게 드러내지는 않으시지만 '친손자'에 대한 할아버지들의 사랑과 기대는 늘 각별하게 느껴지곤 한다. 노년 세대에게 있어 아들이라는 존재, 친손으로 이어지는 핏줄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기에 서운한 마음을 접은 지는 이미 오래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우리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아빠의 아빠, 엄마의 아빠이며 자주 만나기는 하지만 별로 이야기 나눌 일은 없는, 어른들이 어려워하기에 자신들도 덩달아 어려워하는 그런 존재일까.

내리사랑을 알기는 하지만, 자주 만나도 같이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없으니 늘 일정한 거리로 떨어져 있을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물론 한 집에서 같이 살거나 직접 길러주신 할아버지라면 또 많이 다를 것이다.

친정 아버지께서는 외아들을 두셨고 거기서 친손자 둘을 보셨다. 홀로 월남하신 까닭에 명절 아침이면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 부부 그리고 남자 조카 둘, 모두 여섯 명이 둘러앉는다. 왁자지껄한 시댁의 명절 아침에 나는 늘 조금은 적적하기도 할 친정의 명절 아침상을 생각하곤 한다.

지난 여름 친정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으셨는데, 퇴원하시기까지 둘째 손자가 병 문안도 오지 않고 전화도 한 통 없더란다. 속으로만 끙끙 앓으시던 아버지께서 퇴원 며칠 후 섭섭하고 괘씸하다며 내게 속내를 내보이시는 것이었다.

하루를 꼬박 고민한 끝에 결국 내가 아버지 설득에 나섰다. 지금 재수 중인 그 아이에게도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고, 그 아이를 보내지 못한 오빠 부부에게도 나름의 까닭이 있을 것이며, 물론 도리라는 것이 있지만 솔직히 내리 사랑이다, 아버지께는 금쪽 같은 손자지만 그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똑같이 금쪽 같기야 하겠는가 등등.

나의 설득에 쓴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나신 아버지는 며칠 후 그 둘째 손자의 사연을 전해 들으시고는 그만 기함을 하셨다. 아버지의 입원 기간에 아이는 친구들과 싸움을 했고, 그만 눈을 다친 것. 오빠 부부는 편찮으신 아버지께 사실대로 말씀드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안와 골절'이라는 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눈 주위의 외상으로 인해 눈을 둘러싸고 있는 뼈인 안와가 골절된 상태여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부모가 겪을 고통에 나 역시 소식을 듣던 날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무리 그 사연을 몰랐다고는 하지만, 손자에게 직접 혹은 아들 부부에게 그 아이가 병 문안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을 노기와 함께 털어놓으셨더라면 어떻게 할 뻔했는가. 어른이기에 모든 것이 옳고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것, 서운함과 섭섭함을 자기 안에서 소화해 낼 줄 아는 것도 분명 지혜일 것이다.

조카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예정대로 수능도 치렀다. 누구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치사랑이 내리사랑을 못 당한다며 내리사랑과 치사랑의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내리사랑 올리효도를 말하기도 한다.

'어린이를 위한 인생 이야기' 시리즈인〈할아버지의 하모니카〉는 할아버지와 어린 외손녀가 같이 보낸 그리 길지 않은 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책 속에서 혼자 사는 할아버지의 일상은 무척이나 덤덤하게 흘러가지만, 그것이 결국 손녀에게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되고 나중에 할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게 만들어 준다.

혼자 사는 할아버지는 겨울에는 집안 일을 하며 조용히 의자에 앉아 집 앞을 오가는 열차를 바라보며 지내시고, 봄과 여름에는 야채 밭에 온갖 야채를 심고 가꾸느라 땀 흘리며 살아가신다.

어느 해 여름, 외손녀를 맡아 돌보게 된 할아버지. 어린 손녀를 돌보는 일이 하나 늘어났지만 불편한 표정이라고는 없으시다. 어린 손녀 역시 낯선 곳에서 할아버지와 지내게 됐지만 무서워하지도 않고 불편해 하지도 않는다. 잘 적응해 간다.

초록빛 새싹을 실수로 밟기도 하면서 괭이질도 하고, 나무 그늘에 앉아 점심도 먹고, 할아버지가 낮잠을 주무시는 옆에 나란히 누워 아이는 나뭇잎도 보고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도 본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시간이 꿈처럼 흘러갈 때 할아버지의 하모니카 소리도 함께 흘러간다.

다음 해 여름을 약속하며 헤어지는 두 사람. 그러나 이듬해 여름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셔서 딸과 손녀는 자기네 집으로 할아버지를 모셔 간다. 야채 밭이 있는 집이 그립고 걱정 돼 넋을 잃고 슬퍼하는 할아버지, 아이도 할아버지를 따라 같이 슬프다.

결국 아이는 할아버지의 하모니카를 기억해 내고 열심히 연습을 해 할아버지께 하모니카 소리를 들려 드린다. 갑자기 빛나기 시작하는 할아버지의 눈 그리고 이어지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웃음소리….

맑은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이야기 옆에 펼쳐져 있는 이 책에서 할아버지와 손녀는 시끄럽지 않게 참 조용히 서로를 받아들인다. 할아버지는 혼자 사시면서 땀 흘려 야채를 심고 가꾸는 가운데 배우셨던 것일까. 아이는 할아버지 옆에서 금방 그것을 배웠던 것일까.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은 꼭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잡초 대신 새싹을 뽑고 부끄러워하는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네 덕분에 오늘 일은 잘 되고 있구나" 말씀하신다. 내리사랑 치사랑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상대를 바라볼 일이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는 헤아려 보지도 않은 채 해야할 역할만을 강제하고 요구한다면 그 누가 관계를 맺고 싶어하겠는가.

손자에게 품었던 기대와 그것이 어긋나는 서운함과 아이가 맞닥뜨린 큰 고통을 보며 아버지는 좀 변하셨을까. 상대를 고치고 바꿀 수 없다면 스스로 변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며 유일한 해결책이다. 영영 안 보고 살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 다음에 두 분 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할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지금 옆에 계실 때 할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넉넉함과 푸근함만이라도 맘껏 느끼고 누렸으면 참 좋겠다. 슬프게도 나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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