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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은 설거지와 식구들 잠자리 준비를 마치고, 입가심으로 나눠먹을 과일을 부지런히 깎고 나서 시계를 보니 9시가 막 지났다. 나머지 세 식구 모두 듣게 큰 소리로 "엄마 퇴근합니다!" 외치며 앞치마를 벗는다.

우리 집에서 '엄마 9시 퇴근제'를 시작한지는 한 3년 정도 된 것 같다. 퇴직을 하고 결혼 10년만에 처음으로 전업주부가 됐는데, 사소하고 잡다한 일이 이어지는 집안 일은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아무리 끝도 없고 표도 안 나는 집안 일이라고는 하지만, 내게는 일을 시작하고 마치는 규칙성이 필요했다. 또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일이 무한대가 아니라 일정한 시간과 양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식구들이 모여 앉아 의논한 후 드디어 약속을 하기에 이른다. 준비해 놓은 것 이외의 늦은 밤 간식은 아이들이 스스로 챙기거나 라면 같은 것은 아빠가 기꺼이 맡아 끓여주기로 했고, 아이들이 받아가야 하는 엄마의 숙제 검사 사인 역시 가능하면 9시 되기 전에 끝내기로 했다.

어느 날 온 식구가 늦은 외출에서 돌아와 요기 거리를 챙기는데, 작은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묻는다. "오늘은 퇴근 안 하시나요?" 그 모습이 귀여워 하하 웃으며 "사랑의 특별 근무입니다"라고 대답한다.

9시 이후의 자유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나란히 엎드려 책을 읽거나, 네 식구가 같이 뒹굴면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컴퓨터가 있는 공부방에 들어앉아 밀린 일을 한다.

사실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나를 비롯한 식구들의 생각이 달라졌을 뿐이다. '엄마의 9시 퇴근'은 365일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강제 규칙이 아니다. 가족들이 어느 한 사람의 가족이 원하는 방식에 기꺼이 따라주며, 서로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는 데 그 뜻이 담겨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면 집에 오는 시간이 자정을 넘기기 일쑤라고 하니까, 그 때는 아무래도 퇴근 시간이 조정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특별히 내게는 만족스럽게 '엄마의 퇴근 시간'이 지켜지고 있다.

〈바다의 선물〉을 출간했을 때 저자 앤 머로 린드버그는 우리 나이로 오십이었다. 최초로 대서양을 무착륙 횡단 비행했던 찰스 린드버그의 아내로, 미국 여성 최초로 비행 면허를 취득했고 그 후 작가, 시인, 수필가, 사회사업가, 비행사로 다양한 삶을 살았다.

어느 해 여름 외딴 섬에서 홀로 휴가를 보내게 된 린드버그는 혼자 만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며 귀한 보석들을 캐내게 된다. 그것은 바로 바닷가에서 수없이 발견하게 되는 갖가지 조개 껍데기들이었다.

한 때 소라게가 머물러 살았던, 이제는 텅 비어있는 "소라고둥"에서 저자는 먼저 생활의 단순화를 배운다. 임신과 육아, 양육, 교육, 처리해야 할 수천 가지 집안 일, 얽히고 설킨 수많은 대인 관계로 어수선한 여성들의 생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앞으로 이 복잡한 생활에 무엇인가를 더 보태려는 유혹을 느낄 때, '그것이 필요한가?'를 반드시 물어보라고 권한다.

달팽이 껍질 같은 '달고둥'에서는 이제 다시금 고독을 배울 것을 이야기한다. 여성의 시간과 정력과 창조력은 기회만 있으면 그리고 빠져나갈 구멍만 있으면 흘러 없어지고 말기에, 내면의 샘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주는 것이 여성의 임무이고 역할이라 해도 다시 채워지지 않으면 더 이상 줄 수 없는 법. 저자는 일년 중의 일정 기간, 일주일의 어느 한 때, 하루의 일정 시간을 홀로 지내는 '고독'을 통해 그 샘을 채우라고 강조한다.

이번에는 조개의 두 쪽을 오므리면 빈틈없이 딱 붙는 '해돋이조개'. 처음의 순수한 관계가 결혼을 통한 책임으로 이어지고 결국 생활의 때에 찌들어 스스로를 잃어버리기에 이른 사람들에게, 린드버그는 최초의 순수한 관계는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중압에 깔려 있을 뿐이라고 위로한다.

그러면서 이미 불가능해진 아기자기한 관계로 되돌아가려 하기보다는 관계의 변모와 발전으로 받아들일 것을, 그래서 지속성이 곧 진실과 허위를 재는 기준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저자는 군살처럼 부풀어 오른 등에 조그마한 다른 조개 껍데기들을 잔뜩 달고 있는 '굴조개'에서 중년 여성들의 삶을 확인한다. 악착같이 바위 위에 붙어 있던 굴조개가 이제 빈 껍데기로 놓이자 린드버그는 거기서 자식들을 길러내고 생활을 꾸려나가려 애쓰던 우리들 생존 경쟁의 흔적을 본다.

그러면서 동시에 중년에 이르러 굴조개의 빈 껍데기처럼 생존 경쟁의 갑옷을 벗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회복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중년을 제2의 개화기, 제2의 성장기, 제2의 청춘기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강변한다.

마지막에 나오는 '배낙지조개'는 어린 배낙지의 요람이며, 어미 배낙지의 임시 주택이다. 이제는 비어버린 배낙지조개를 보면서, 린드버그는 성장은 곧 분화와 분리이기에 '상대를 위해 스스로가 하나의 세계'가 될 것을 권한다. 그러면서 안정된 인간 관계란 현재를 살면서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휴가가 끝나고 린드버그는 그 외딴 섬의 바닷가를 떠나게 된다. 홀로 자신을 들여다 본 소중한 시간을 뒤로 하고 떠나는 그의 손에는 생활의 단순화, 육체적·지적·정신적 생활의 균형, 압박감 없이 하는 일, 고독과 공유의 시간, 정신적인 생활, 창조적인 생활 등을 일깨워 주는 몇 개의 조개 껍데기가 남는다.

중년의 나이는 야심, 집착, 소유욕, 이기심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시기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그런가…. 나 역시 나의 한계는 충분히 깨달았지만 그에 따르는 벗어남은 아직 요원한 상태이다. 누군들 이 생존 경쟁의 사회에서 50년 가까이 입고 산 갑옷을 쉽게 벗어 던지며, 하루도 놓지 못하고 지낸 뾰족한 창을 그리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수필의 참 맛이 나는 글을 통해 자신이 받은〈바다의 선물〉을 소개하고 있는 린드버그는, 우리에게 '의식적인 선택력'을 지녀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하면서 진지하게 묻는다. "뒤떨어진 모습으로, 쇠퇴한 채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형태, 또 다른 경험의 세계로 옮아가야 할 것인가?"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는 것이야말로 중년의 가장 커다란 축복이며 과제. 그러나 그 어떤 쪽의 길이든 결국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린드버그는〈바다의 선물〉을 받았는데, 나는 어디에서 내 나이에 맞는 귀한 선물을 받게 될까. 그저 이것이 또 하나의 새로운 욕심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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