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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생전의 할머니는 완전히 엽기 할머니다. 동네 택시 기사가 할머니한테 와서 밥을 먹을 때면 김치며 나물을 손가락으로 집어 밥숟가락에 올려놓아 주고, 국물은 손가락으로 휘휘 젓는다. 또 자기가 빨아먹던 막대 사탕을 딸처럼 드나드는 구멍가게 주인 아줌마 입에 쓱 집어넣고는 좋아라 웃는다.

사는 것이 고만고만한 동네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계시다. 할머니는 여인숙 주인은 남동생처럼, 택시 기사는 아들처럼, 구멍가게 주인은 딸처럼 스스럼없이 대하면서 정을 붙이고 살아가신다. 그 사람들 역시 늘 할머니를 들여다보고 챙겨드린다.

흰머리가 반 넘게 섞여있는 머리는 언뜻 보면 회색이고,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반으로 접힌 허리에, 제대로 펴지지도 않는 양쪽 무릎, 거기다가 가느다란 팔다리와 좋지 않은 혈색은 할머니의 70년 인생이 그리 녹록치 않았음을 보여 준다.

할머니는 허리춤에 늘 전대를 차고 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야기한다. "나 장사 지낼 돈 백만원이야, 나 죽으면 이 돈으로 장례 치러 줘."

그 돈의 존재를 아는 동네 사람들. 교회에 그 돈 백만 원 헌금하고 천당 가시라고 권하는 구멍가게 아줌마도, 여인숙 주인 아저씨도, 젊은 택시 기사도 그 돈에 결코 무관심할 수 없다. 그러던 중에 할머니가 누군가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백만원도 홀연히 사라진다.

용의자로 경찰서에 불려온 마을 사람들. 연극은 범인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할머니의 의문의 죽음을 중심 축에 놓고 사람들의 얄팍한 심성과 야비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진행된다. 또한 사이사이에 생명 있는 존재들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가벼운 듯하지만 진지하게 묻는다.

할머니가 평생 외롭고 힘들게 살았던 땅에서는 범인을 찾느라 부산하지만, 세상 밖으로 이미 떠나간 할머니는 할머니가 꾼 꿈처럼 하얗고 커다란 꽃으로 변한다. 부모를, 남편을, 자식을 떠나며 살았던 할머니의 인생은 이제 움직이지 못하며 한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꽃이 된 것이다.

연극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온 또하나의 장면이 있다.

동네에는 10대로 보이는 두 아이가 함께 자취를 하며 살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인 미나는 할머니가 '친구랑 같이 아침 먹으러 오라'고 하자, 할머니께 외로우시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할머니에게 미나는 큰 소리로 다시 묻는다.

"그렇게 늙어도 외로움을 타요?"

가난한 집안 육남매의 맏딸, 난봉꾼인 첫 남편에게서 도망 나온 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먹고살기 위해 병든 두 번째 남편을 등졌으며, 기르기가 어려워 세 아이 가운데 하나를 남에게 줬지만 남은 두 아이를 볼 때마다 보낸 아이가 눈에 밟혀 결국 두 아이마저 남의 집에 보냈다는 할머니….

이 할머니에게 아이는 묻는다. 그렇게 늙어도 외로움을 타느냐고. 지난 세월의 아프고 슬픈 수많은 이야기가 가슴에 넘치도록 담겨 있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인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노년의 삶에 어찌 외로움이 없을까. 초록 새싹 같은 시절을 보내는 아이가 그것을 어찌 짐작인들 하겠는가.

할머니의 뼈아픈 과거를 이야깃거리로 삼아 들쑤시는 동네 사람들.
"그게 그렇게 고통스러웠으면 이 연세까지 살기나 했을까, 그렇지 않았으니 이때껏 사신 거지."

정말 노년의 목숨을 이렇게 구차하고 수치스럽게 만들 수 있을까.

번갈아 와서 뼛속 깊이 비수를 들이밀던 동네 사람들이 다 돌아간 빈집에서 할머니는 밥을 꾸역꾸역, 말 그대로 입에 쑤셔 넣으며 울음 섞어 이야기한다. 이만큼 살았다고 잘 산 게 아니라고. 평생 어깨에다 돌 가마 지고, 모래를 입에 물고 살았다고.

홀로 지고 살아온 짐이 무거워 밥을 한 가득 입에 물고 우는 할머니를 보면서, 내 뺨 위로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할머니의 밥은 목숨 가진 한은 살아야 한다는 처절한 비명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도 평생 '모래를 입에 물고 살았다'고 하셨다 보다.

솔직히 돈 앞에 드러나는 사람들의 야비함과 얄팍한 심성에 몸서리가 쳐졌다. 죽음까지도 돈의 위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땅 우리들 삶이 참으로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연극은 입담과 웃음으로 포장되어 있어 무겁지 않다.

버리고 떠나면서 살아온 할머니의 생은 어쩌면 정말 길 위의 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할머니는 죽어 한 자리에 붙박여 있는 꽃이 되는 것도 참 좋다고 말씀하셨나보다. 연극 속 소년의 대사처럼 우리는 길을 보지 않고 아무 데로나 가기에 늘 길을 잃고 마는 것일까. 할머니도 그러셨던 것일까.

바람에 흔들리기는 해도 움직이지 못하는 꽃이 된 할머니. 무덤 속에서나마 허리 쭉 펴고 웃으셨을까. 사람의 한 평생이 남루하고 구차스러워도 목숨 다하는 날까지 사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두려우며 엄숙한 일인가. 작은 몸집의 할머니는 이런 계절에는 하얀 꽃이 아니라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마른 잎 하나로 삶의 진정성을 가르쳐 주실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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