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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노인대학에 가서 강의를 하는데, 강의 시작에 앞서 인사를 드리고 나서는 어르신들의 기분도 풀어드리고, 앞에 선 내게 집중을 하시도록 쉬운 수수께끼를 내기도 하고,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간단한 빼기 문제로 머리 운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나 어르신들께서 정확하게 맞추시는 문제는 "세상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정답은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이다.

빨리 죽고 싶다는 말씀이 진짜 거짓이어서 일까. '칠십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지금은 안 간다고 전해주세요, 팔십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아직은 빠르다고 전해주세요, 구십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재촉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백세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서서히 간다고 전해주세요'라는 가사가 들어 있는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노래가 요즘 노인대학에서 최고 인기다.

영화〈오구〉의 할머니도 떡장수, 밥장수해서 고생고생하며 자식 기르고 이제 좀 살만해졌는데 가야 한다니, 억울하고 싫다며 댓바람에 울음부터 터뜨리신다. 노래 가사에서처럼 할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 며느리, 손녀 놔두고 혼자 가고 싶지 않으신 것이다.

설핏 든 낮잠에 꿈을 꾸셨는데, 일찍 세상 떠난 남편이 검은 소를 타고 오셨더란다. 할머니는 안 갈거라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동네 무당 석출을 찾아 나서고, 장롱 밑에 숨겨 놓았던 통장을 굿 비용이라며 아들 부부에게 내민다.

석출은 타지에 나가 사는 딸들을 불러모아, 이승에서의 한과 업을 풀고 깨끗한 마음으로 저승에 가려는 소원을 담은 산오구굿(줄여서 '오구')을 준비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우리 동네에서 굿은 절대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다.

굿 사이사이에 할머니의 둘째 아들 용택과 석출의 딸 미연의 사랑, 거기에 얽혀든 동네 청년들의 사연이 드러나고, 굿을 반대하는 동네 사람들이 굿판을 뒤집어엎는 소동이 벌어지면서도 영화는 앞으로 꿋꿋이 나아간다.

일찍 남편이 세상 떠나는 바람에 홀몸으로 온갖 고생 다하며 아들 둘을 키웠는데, 둘째 아들을 졸지에 잃어버리고만 할머니의 지난 시절 아픈 이야기는 굿판에 녹아들며 노래로, 사설로, 눈물로 풀려 나온다.

영화에는 할머니를 모시러 온 저승사자 셋이 나오는데, 때로는 벌거벗은 몸으로, 혹은 지나가는 사람의 옷을 빼앗아 입고, 아니면 개의 몸을 빌리기도 하면서 할머니 옆을 떠나지 않는다. 모시고 갈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저승사자 셋은 물론 모두 남자이고, 셋의 성기 모두 방망이만큼 큼지막하다. 거기다가 벌거벗기까지 했으니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은 남자고 여자고 모두 까무라칠 만큼 놀랄 수밖에.

사실 그동안은 '15세 이상 관람 가' 영화라도 보호자인 내가 동반해서 열세 살, 열두 살 두 아이와 함께 볼 수 있었다. 〈오구〉는 할머니의 죽음을 다룬 데다가, 우리 전통의 슬프고도 신명나는 굿이 한 바탕 펼쳐진다고 해서 함께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저승사자의 벗은 몸에서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는 성기를 보면서 망설이게 되었고, 거기에 동네의 숨겨진 사연인 윤간 사건이 더해지면서 아이들과 함께 보려던 계획은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거기다가 그렇게 큰 사건이 동네 사람들의 묵계로 은근히 봉합되는 것에 이르면, 도저히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없는 영화임을 깨닫는다.

동네 어귀에는 정자나무가 있고, 그 아래 평상에는 늘 동네 어르신들이 계신다. 둘러앉아 화투도 치시고, 술추렴도 하신다. 예전에는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정겨운 풍경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몇 분이 여느 때처럼 둘러앉아 노시다가, 농담 끝에 할아버지 한 분이 남자로 아직도 얼마든지 자신 있다며 벌떡 일어나 아랫도리를 훌렁 벗어 던지고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하며 어깨춤을 추신다.

젊은 사람들도 모여 앉아 놀다가 자기 정력을 자랑하려고 옷을 훌렁 벗어 던지는가. 주책부리는 노인의 모습은 그 순간 이미 영화의 재미를 넘어선다.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아래 평상 위에서 앙상한 맨다리를 내놓고 그 누구의 눈도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추는 할아버지, 나이 들면 다 그러려니 하는 편견 속에서 노인은 주책부리고 어이없는 짓을 하는 사람으로 일찌감치 자리가 정해져 있다.

영화 속에서 할머니의 죽음에 바로 이어 손자가 태어나면서, 우리들은 삶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이어지는 것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가기 싫다고, 억울하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할머니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아시고 굿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할머니는 굿을 통해 당신 인생의 아픈 상처를 씻고, 동네 사람들 사이에 얽힌 매듭을 풀어주고 떠나셨다. 그래서 할머니는 저승에 계신 할아버지께는 족두리 쓰고 활옷 입은 새색시였겠지만, 여기 남은 모두의 가슴속에는 아주 특별한 존재로 남으신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에 조금만 더 노년을 바르게 이해하고 만들어졌더라면, '엄마 아빠 손자 며느리 할머니 할아버지 한 가족이 모두 모여 놀러 오세요'하는 안내지 문구처럼 좋은 가족 영화가 됐을 것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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