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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오후 6시23분, 오마이뉴스에 3만번째 뉴스게릴라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자축하며 <뉴스게릴라 3만돌파 기념 이벤트>를 다양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이벤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뉴스게릴라가 만난 뉴스게릴라'의 마지막 기사입니다... 편집자 주)

▲ 3일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유경기자
ⓒ 김진석
“노인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은 다름 아닌 '가족'이에요.… 사람들은 흔히 나이에 따라 어릴 때는 공부, 청년기 때는 일, 노년기 때는 여가로 공식화시켜 버리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사회는 세대간 갈등이 단절을 넘어 거의 냉전에 다다른 느낌이에요.”

유경 기자는 어떤 사람?

유경 기자는 7년 동안 기독교방송(CBS) 아나운서로 근무하면서 노인 방송을 통해 노년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후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이대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해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졸업 후 4년간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서 근무했던 유기자는 일을 그만 두고 2001년께부터 지금까지<오마이뉴스>에 <유경의 녹색 노년>을 연재 중이다. 그 외 유경 기자는 여성신문, SBS 라디오 ‘마음은 언제나 청춘’, 마산 MBC-FM ‘가요 응접실’ 등에 <유경의 녹색 노년〉을 싣고 있으며 노인대학 프리랜서 강사 활동도 겸하고 있다.

또 오마이뉴스에 올린 연재기사를 모아 저서<꽃 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서해문집, 2003)를 출판하기도 했다. 현재 유 기자는 '어르신 사랑 연구 모임' (http://cafe.daum.net/gerontology)을 운영하며 책·영화 등의 매체는 물론 일상에서 만나는 노년의 모습을 겉으로 드러내 우리의 노년을 얘기하고 있다. / 김은성
2001년부터 지금까지 <오마이뉴스>에 160회의 기사를 송고하며 끊임없이 ‘노년’의 얘기를 전하는 뉴스게릴라가 있다. 할머니가 돼서도 계속 ‘노년’의 얘기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겠다는 유경(42) 기자를 지난 3일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누가 시킨 것도, 돈을 많이 받는 것도, 남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꾸준히 시민기자로 활동한 유씨의 얘기를 모아봤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오! 마이뉴스”

CBS 아나운서로 노인방송을 맡은 것이 계기가 돼 ‘노인복지’라는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도전한 유씨는 ‘인생의 전환점’에서 우연히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노인 복지 현장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약 14년 전. 그 때만 해도 한국엔 전국을 통틀어 노인복지관이 단 두 개가 있을 만큼 ‘노인복지’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노인복지 분야의 전문성에 필요성을 느낀 유씨는 뒤늦게 사회복지대학원을 마치고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서 근무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그 당시 한국엔 노인 복지가 막 싹 틀 무렵이라 유씨가 펼친 모든 활동들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방송에 나오는 등 큰 화제를 모았다.

ⓒ 김진석
유씨의 활동은 고스란히 노인 복지 정책 및 활동의 기초가 돼 기록과 역사로 쌓이기 시작했다. 그는 '천직' 이라 생각하며 ‘일중독’에 걸릴 만큼 4년간 정신없이 내달렸다. 그 후 어느 순간 생각했던 ‘노년’과 실생활에 괴리감을 느낀 유씨는 2000년말 일을 접고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노년이란 삶을 앞, 뒤, 옆으로 천천히 다 살피며 살아야하는데, 일의 성취감에 그저 앞만 보고 내달리는 제 삶에 모순을 느꼈죠. 정말 그때는 가족도 안중에 없었어요. 과연 나에게 노년이란 직업적인 것만을 뜻하는 것이었나, 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고 일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 인생에 있어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왔어요. 그런 제 시각을 정리하며 오마이뉴스에 부담 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죠.”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는 유씨에게 생각지 못한 영욕(?)을 안겨주었다. 글쓴 지 3개월만에 뉴스게릴라 상을 받은 유씨는 온 가족에게 책 선물을 하고, 독자들과 맺은 소중한 인연으로 기사를 모아 <꽃 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라는 책까지 출판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 70대 할머니가 책을 읽고 자필로 써서 보낸 편지가 집에 도착했어요. 노년도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란 걸 알게 해줘 고맙다며, 다음 책 구상을 위해 커피 한 잔 하라고 50달러를 동봉했더라고요. 정말 잊을 수 없는 독자이고 지금도 생각하면 감격에 눈물이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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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는 기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뜻하지 않게 너무 많은 것들을 받았노라며 <오마이뉴스>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나 항상 해 뜰 날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익명성'이라는 네티즌의 미명아래 그 또한 적잖은 상처를 입은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러고도 기자냐? 때려쳐, 라는 등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적나라한 욕설들을 보며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몰라요. 그 당시만 해도 저 또한 인터넷을 시작한 초기여서 정말 상처를 많이 입었죠. 처음엔 막 가슴이 벌렁 벌렁거려 도대체 어떻게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기사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말도 안 되는 욕설로 지적한 답글을 보면 꼭 굳이 그렇게까지 상처를 줄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처음엔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는지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기사를 읽고 오해하는 건 그 사람의 몫이다’, ‘이젠 결코 아무도 날 건드리지 못한다’ 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어가요. 중년은 이래서 좋아요(웃음).”

“왜 하필이면 ‘노년’이냐고요?”

ⓒ 김진석
유씨는 ‘노년’이라는 소재의 특성상 기사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지 못함에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기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아! 나도 늙는구나”라는 작은 느낌을 전달하고 싶다며 "결국 우리 모두는 예비 노년 세대”라고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노년’하면 흰색, 검정색, 회색 등 무채색만을 떠올려요. 꽃이 피는 시기가 청춘이라면 꽃이 진 후 가장 푸르를 때가 노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들은 꽃이 필 때만을 보느라 꽃이 지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나무가 더 푸르다는 걸 미처 모르죠.”

그는 “꽃이 진 자리에 더 푸른 잎이 돋아나는 걸 아무도 보려하지 않는다”며 ‘노년’을 ‘무채색’이 아닌 ‘녹색’에 비유했다. 유씨는 노인 복지 산업이 과거에 비해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삶의 질’적인 부분에선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고 아쉬워 했다.

“그저 무조건 예산을 늘려 천편일률적으로 복지관을 늘리거나 모든 이에게 똑같이 돈을 주는 식의 막연하고 획일화된 정책은 지양했으면 해요. 어르신들이 각자 처해진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돈, 친구, 일, 의료지원 등 필요한 것들이 다 제각각 일 거예요. 좀더 세밀히 관심을 기울여 대상의 차이에 따라 적합한 정책들을 구체적으로 마련했으면 해요.”

이어 그는 “노인네들은 다 그래!”라며 어르신을 따로 구분해 ‘획일화’시키는 젊은이들의 시선 또한 잘못된 것이라 지적했다. 유씨는 “청춘이란 결코 스타카토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다”며 “청춘과 노년은 함께 이어진 인생”이라고 강조했다.

“노인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은 다름 아닌 ‘가족’이에요. 지금껏 만났던 어르신들 가운데 대부분이 가족들 사이 보이지 않는 벽 때문에 상처를 입으셨죠. 이는 ‘세대전쟁’이라 부르는 세대간 대화 단절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흔히 나이에 따라 어릴 때는 공부, 청년기 때는 일, 노년기 때는 여가로 공식화시켜버리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살이는 여가와 일 공부를 같이 하며 연령을 넘나들어야 하는데 서로 충돌된 개념으로만 생각해요. 실업문제만 해도 어르신들이 취업을 하려하면 젊은 우리도 못 하고 있는데 어르신이 무슨 취업이냐고 그러죠. 모든 연령이 종합적으로 섞인 열린 사회가 돼야 하는데 지금 사회는 세대간 갈등이 단절을 넘어 거의 냉전에 다다른 느낌이에요.”

ⓒ 김진석
유씨는 많은 이들이 노년을 청춘과 단절시켜 별개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또 그는 노년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아무런 계획 없이 그저 ‘돈’만 모으려 하는 젊은이들의 노후대책을 꼬집었다.

“노년을 아는 게 곧 잘 사는 방법이에요.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선 결국 청춘을 잘 보내야 하거든요. 노년을 아는 건 운동화를 신고 마라톤 라인에서 정성스레 끈을 매는 것과 같아요. 슬리퍼를 신고 막 뛰다가 대충 운동화로 바꿔 신고 급하게 끈을 매는 것이 아닌, 이미 인생에 대해 준비하는 마음가짐부터가 다른 거죠.”

유씨는 “어른신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왜 그럴까?’를 생각하며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노년을 준비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며 “착하고 깨끗한 얼굴로 노년을 맞이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들만의(?) 오마이뉴스가 되지 않기를”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가 유씨에게 자아존중감을 주며 ‘노년’에 대한 시각을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그는 남이 시켰다면 못 했을 것이라며 자신과의 약속이기에 행복한 부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전에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어떤 모임에 나갔던 적이 있었는데 다른 기자분들이랑 인사도 못하고 그냥 왔어요. 기사로만 만났던 기자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얼마나 설레였는지 몰라요. 하지만 명찰이 없어 누가 누군지 얼굴도 모르고 마땅히 어디에 끼어들 상황도 아니어서 결국은 말도 한 마디 제대로 못했죠.”

유씨는 일부러 두 딸과 동행했던 그 날 이후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모임엔 나가기가 조금 꺼려진다고 토로했다. 또 그는 책이 출판됐을 때도 <오마이뉴스> 측과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해 섭섭했노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이젠 오마이뉴스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어요. 3년 전 보다 훨씬 매체 영향력이 높아졌다는 걸 피부로 느낄 정도죠. 어디든 제 약력 소개를 할 때면 ‘오마이뉴스기자’라는 걸 가장 먼저 소개할 정도예요.

뭐랄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마이뉴스가 자기네끼리만 한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저도 정확히 그 정체가 무언지 모르겠어요. 그 점이 잘 돼 오마이뉴스만의 개성과 색깔로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글쎄요… 왠지 가끔은 쉽게 끼어들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과연 이게 뭘까요… ?”

ⓒ 김진석
그는 <오마이뉴스>가 기존 언론을 닮아 권력화되는 걸 스스로 경계해야 된다며 ‘초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덧붙여 유씨는 “특히 인터넷 신문의 속성상 ‘하이에나’가 될 가망성이 높다”며 “확실하지 않은 정보는 사람 목숨에 위협을 줄만큼 무서운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선 인터넷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본적인 작법을 갖추세요. 그 후 어느 분야든 남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기르는 게 중요해요. 어디에서 과연 시민기자에게 이런 지면과 목소리를 할애 할 수 있게 해 주나요? 시민기자들의 노력만 있다면 얼마든 길은 열려 있어요.”

뉴스게릴라 3년차 선배인 유씨가 뉴스게릴라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유씨는 자신의 기사로 역사를 만들어 가는 당당한 뉴스게릴라가 늘어나기를 바란다며 그들 ‘이름’에 따른 ‘책임감’ 또한 당부했다.

“기사를 쓰면서부터 일상의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지나 칠 수가 없어요. 영화나 TV 혹은 소설을 볼 때마다 이번엔 또 어떻게 기사를 써야 할지 늘 고민을 하게 되죠. 덕분에 더 책임감 있게 살아야 한다는 기분 좋은 부담감도 느껴요. 앞으로 꿈이 있다면 '세대별 노년교육'을 해보고 싶어요. 세대와 연령이 통합되는 사회가 제가 꿈꾸는 미래거든요.”

‘나이 듦’의 과정이 ‘노년’이라고 설명한 유씨는 기사를 통해 계속 성장하고 싶다며 마지막까지도 글쓰기의 의지를 다잡았다. 그가 꿈꾸는 사회, 기사에 위로 받는 예비 노년들, 그리고 유씨가 쌓아갈 귀중한 역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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