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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합물은행 총책임자 김성수 화학연구원 박사
ⓒ 김요셉
수년 전 A기관에서 제초제를 위한 화합물을 개발해 냈다. 'TTP-1B'라는 화합물이다. 하지만 농작물에 실험해보니 제초제로서 전혀 효능이 없었다.

결국 아무 쓸모 없는 '쓰레기 화합물'이 돼버려 국내 화합물을 통합관리하는 한국화학연구소 화합물은행에 기탁됐다.

그 후 몇 달이 지난 어느날 B대학 K교수가 당뇨병 약효시험을 위해 화합물은행에서 'TTP-1B'를 포함해 수만종의 화합물을 대출해 갔다.

시험결과 전혀 예상치 못한 현상이 나타났다. 사람 죽이는 제초제 'TTP-1B' 화합물에서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호가 나타난 것이다. '설마' 하고 2차 약효시험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화합물은행에서 대출해 간 다양한 구조의 화합물들을 통해 이러한 '돌출 실험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제초제 목적으로 개발된 'Cdc25B'라는 화합물도 실험결과 항암 효능이 있어 차세대 신약개발 과제로 연구 중이며, 전혀 쓸모 없다고 생각했던 합성중간체 'PPAR'라는 화합물도 당뇨·비만용 신약으로 동물 독성시험 직전단계까지 와있다.

지난 2000년 3월 설립된 화합물은행은 신약개발을 위한 씨앗들을 양산하고 축적하고 있다.

'제2의 팩티브' 신약 탄생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생체기능조절물질개발사업단(21C 프론티어 개발사업)'에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신약개발에 동참하고 있기도 하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벌 수 있듯 화합물은행은 국가차원에서 화합물을 모아 단 시간내 한꺼번에 약효시험을 통해 신약후보 물질을 발굴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화학물 은행이 설립됨에 따라 매년 용도없이 방치되거나 버려지는 화합물 2만~3만여종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금까지 국내에는 화합물을 개발해놓고도 특정 목적에 맞지 않으면 주로 폐기하는 실정이었다. 화합물을 통합관리하는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금값보다 수백배 비싼 신약개발 씨앗들

화합물 1mg의 값어치는 적게는 1달러에서 많게는 100달러까지 한다. 금값의 수백배다. 만약 신약으로 개발되면 최소한 1조원짜리다.

화합물은행은 화합물 1mg당 평균 50달러를 들여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새로운 구조의 화합물을 외국에서 확보하고 있다.

화합물은행 설립이래 총괄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김성수 박사는 화합물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신약이 될만한 구조를 가진 화합물만을 구입하기 위해 10년 통밥으로 하루에도 수백개씩 못생긴 화합물을 걸러내고 있다. 그래서 매년 1억5천만원을 투입해 5∼6000개 정도의 외국산 화합물을 확보하고 있다.

약효시험을 위한 화합물 사용 비용도 만만치 않다. 화합물 한 개당 시험비용은 100원∼1000원이다. 한 번 시험하는데 1만개의 화합물을 가지고 시험해도 수백만원이 든다. 더군다나 신뢰성을 위해 적어도 2번은 실험해야 한다.

만약 화합물은행에서 확보된 10만개 전체를 약효 시험하는데 사용하면 한 번 시험하는데 1억원은 족히 든다.

미국 NIH보다 앞선 한국 '화합물 수집' 프로젝트

미국에는 머크社, 화이자社 등 화합물을 수백만개 보유한 제약회사가 있다. 화합물 수집 전담부서를 가동하며 전세계를 대상으로 화합물을 수집하고 신약 후보물질의 씨앗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각 기관별로 화합물 사용이 공유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2004년부터 국가차원의 화합물 통합관리 시스템을 갖춰 5년내 50만개 화합물을 확보하려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이를 위해 2천만불을 투입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3년 전부터 화합물 수집·확보 프로젝트가 전개됐다. 화학연구원 화합물은행을 통해서다. 3년 동안 다양한 구조의 화합물을 10만개 확보했다. 확보된 10만개 화합물 중 4만여개를 '생체기능조절물질개발사업단'이 개발, 기탁했다.

특히 PDE4, 5-LO, COX2 등 기술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신약으로서 가능성이 높은 화합물들을 수집하고 있다.

김성수 박사는 "2007년까지 50만개 화합물을 확보할 것"이라며 "이 화합물들은 신약개발을 위해 제약회사·출연연·대학 등에 지원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부터 국가적으로 '화합물 기탁제'가 추진됨에 따라 전국 160개 기관이 참여해 매년 3만개 가량의 화합물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김 박사는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다양한 구조의 화합물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신약개발 후보물질 발굴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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