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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열린 보성초등학교 서모 교장 자살 사건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장에 원영만 위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열린 보성초등학교 서모 교장 자살 사건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장에 원영만 위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유족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전교조가 이 일과 관련해서 완전 무죄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객관적 실체가 밝혀지기도 전에 전교조를 진범으로 지목하고 도덕적인 사망신고를 내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eduhope.net)은 4월 9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로터리 인근 본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보성초등학교 서모 교장 자살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사건이 발생한 지 5일만에 침묵을 깬 것이다. 그동안 일부 언론과 학부모단체의 공격으로 수세에 몰렸던 전교조가 적극적으로 사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정공법을 선택한 것이다. 전교조는 특히 언론의 편향보도에 관련, 이후 사례를 수집한 뒤 언론중재, 명예훼손 고발 등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근조'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있었으며, 기자 50여명이 몰려 사안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부 기자들은 "차시중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이냐" "교장의 인품이 어땠는가" 등 사건과 무관한 질문을 던져 전교조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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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 차 시중 거절은 ' 업무 불이행 ' ?


"진상규명 위해 교장단회의 공개돼야
합의성사 분위기, 강압성 없었다"


기자 50여명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는 전교조 기자회견장.
기자 50여명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는 전교조 기자회견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검은 양복을 입고 기자회견장에 나선 원영만 전교조 위원장은 "사과할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겠다"며 "그 전에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확인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교조는 사건 진상조사와 관련, "고 서 교장이 자살 전에 참석했던 지역 교장단회의 내용이나 서교장이 남긴 메모의 다른 부분 등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교조에 따르면, 서 교장은 자살 이틀전인 4월 2일 예산군 초등 교장단회의에서 보성초 사건이 집중거론되었으며 이후 교장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고 한다. 전교조는 "명확한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교장단회의 내용이 공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 서 교장이 남긴 메모에 대해서도 전교조와 일부 언론보도는 엇갈린다. 이진형 전교조 충남지부 사무처장은 "당시 전화통화는 격앙된 분위기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똑바로 해라' 등의 명령투는 없었고, 존칭을 사용해 대화했다"고 전했다.

전교조는 또 예산 교육청의 관련 보고서에 '합의가 성사되는 분위기'라고 언급된 것도 "서면사과 요구에 강압성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송원재 전교조 대변인은 "3월 26일, 서 교장과 교육청 장학사, 피해 여교사 진모씨, 전교조 관계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서 교장은 구두로 서면사과 의사를 밝혔다"며 "교장이 거부했다면 교육청 문서에 '합의 분위기'라는 내용이 명문화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교조는 "일부 언론은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전교조의 대화노력을 협박으로 왜곡해 전교조와 조합원 교사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기본적인 공정성을 포기한 보도는 전교조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악의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교장-여교사, 서약서 교환 합의했다'>

충남 예산 보성초등학교 서승목(57) 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일주일전 갈등을 빚었던 기간제 여교사 진모(29)씨와 서로의 양해 사항을 담은 서약서를 주고 받기로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교조 충남지부는 9일 "서교장이 지난달 28일 오전 지부 사무실을 방문, `자신은 사과문을, 진씨는 다른 곳에 이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 교환하자'고 제의해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은 충남지부의 `상황일지’에 적힌 것이다.

서 교장이 남긴 다이어리(3월28일)에도 전화를 해온 진교사에게 `29일 만나서 서로의 서약서를 교환하자. (진 교사)전교조 사무실에서, (본인)제3의 장소에서 만나자고 제의'라고 기록돼 있다.

이와 함께 같은 상황일지는 당일 오후 서 교장이 교사 2명을 교장실로 불러 "서면사과 할 뜻이 있는데 교감이 응하지 않아 곤란하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덧붙이고 있다.

서교장은 그뒤 결국 서면사과를 하지 않았다.

전교조측은 “이는 당시 서 교장과 진 교사, 전교조가 서면사과를 포함, 원만한 사태수습에 도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교감의 비협조와 그 뒤 교육청에서 열린 교장 회의 등에서의 비난이 서 교장을 궁지로 몰아 넣었다"고 주장했다. / (예산=연합뉴스) 정찬욱 기자

"여교사 차시중은 가부장 권위주의"
기자들, "차시중이 고통인가. 불공정한가"


기자들이 사건의 사실관계 이상으로 관심을 보인 대목은 차 시중 업무의 성차별 여부. 기자회견장에서는 "다른 교사도 차 시중에 대해서 불만을 갖는가" "차시중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을 겪는가. 불공정한 업무인가" "교장이 학교에서 가장 높은 사람 아니냐" 등 피해 여교사의 책임을 질책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송원재 전교조 대변인.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송원재 전교조 대변인. ⓒ 오마이뉴스 권우성
송원재 대변인은 "개인적으로 차를 접대할 수 있지만 어떤 사회권력관계에서 이루어지는지 동기가 무엇인지에 따라 차 시중의 '질'이 달라진다"며 "대부분의 여교장은 물론 많은 남성 교장도 스스로 차를 마신다"고 강조했다.

진영옥 전교조 여성위원장은 이에 대해 "3년 전 여교사 차 시중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교육부에서 차 접대를 폐지하라고 공문을 보낸 바 있으며, 남녀고용평등법에도 벌금 5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명시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답했다.

진 위원장은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고 남성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교장이 어린 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시키는 것은 가부장적 권위주의 문화"라면서 "특히 학생들 앞에서 수평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교사 사회에서 차시중 등 불평등한 업무는 교권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옆에서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김미영 전교조 보건위원장도 "처음엔 젊은 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시켰고, 이후 유치원 교사, 보건교사, 기간제 교사로 점차 업무가 내려왔다"고 말을 거들었다. 김 위원장은 "나 역시 4년 전에 이런 일을 당했는데, 1년도 버티지 못하고 다른 학교로 옮긴 바 있다"며 "실제로 차 시중을 못 한다고 할 경우 예산청구를 거절하거나 겨울철에 난로를 지급하지 않는 등 불이익을 당한다"고 증언했다.

"사과 강요는 양심의 자유 침해"-"피해자 보호 위한 기본적 조건"

"여교사에게 사건 책임 돌리는 것은 인권침해"
여성연합 "차시중 당연시하는 것은 남성적 시각"

김기선미 한국여성연합 정책부장은 "부당한 차 시중 강요는 교장의 자살 여부와 상관없이 부당한 성차별행위"라며 "사건 결과를 역으로 피해 여교사에게 지우는 것은 언론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강조했다.

특히 차 시중 사실을 전제로 하고서도 "차 시중 정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일부 언론이나 네티즌들의 태도에 대해, 김기선미 부장은 "성차별에 대한 의식이 없는 남성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기 부장은 또한 "진상조사를 통해 피해자나 전교조가 주장하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며 "진상 규명 전에 이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덧붙였다. / 권박효원 기자
기자들은 전교조의 사건 개입과 서면사과 요구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가졌다.

"교육청에 진정을 한 것으로도 교장은 압력을 느꼈을 텐데 서면사과를 요구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과를 강요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계속되자 전교조 측은 답변과 함께 "여기서 논쟁을 하지는 말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전교조 측은 서면사과 요구와 관련 "사과는 전교조에 바치는 항복문서나 외부 공개용 문서가 아니며, 기간제 교사가 학교에 복직해서 근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라며 "강압이 아닌 서로 합의 속에 서면사과를 이끌어내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송원재 대변인은 서면사과 요구의 수위에 대해서 "보통 학교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전교조나 학교 모두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며 "이 과정에서 재발방지를 위해 서면사과서를 피해 당사자에게 준다"고 설명했다.

송 대변인은 "사과요구는 법적 대응에 비해 낮은 수위의 요구이며 그 내용도 사실인정과 재발방지를 중심으로 하는 '완곡한 사과'"라고 강조하며 "전교조가 해당 학교에 상주하지 않는데다 피해자가 조합원이 아닌 경우, 서면사과 없이 전교조가 물러나면 문제가 재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

전교조는 비조합원인 기간제 교사의 문제에 대해 개입한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올바른 교권을 확립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책무이자 존재의 이유"라고 강조했다.

"사건 본질은 교육현장의 불합리 관행"
객관적 '학교분쟁조정기구' 설치 제안


이진형 전교조 충남지부 사무처장이 사건 발생과정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진형 전교조 충남지부 사무처장이 사건 발생과정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전교조는 이 날 기자회견에서 사건의 본질은 '교육현장의 불합리한 관행'으로 지목하며,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전교조는 "이번 일을 계기로 초등학교 현장의 봉건적 수직질서를 타파하고 초등학교 교장이 권위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전교조 또한 대화 가능성을 지레 포기하고 투쟁만을 앞세운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겠다"고 덧붙였다.

전교조가 '여전히 남은 학교 현장의 문제점'으로 꼽은 것은 ▲여 교원에 대한 성차별적 업무 강요 ▲기간제 교원의 신분 불안정 ▲초등학교의 봉건적 문화 풍토 등이다.

전교조는 "이 번 사건은 교육현장의 구조적 문제점이 한꺼번에 중복되어 나타난 사례이며 이를 해결하지 않는 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소지가 매우 많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판단에 따라 전교조는 유사 사고 방지를 위해 ▲전국 학교와 교원을 대상으로 성차별 실태조사 실시 ▲학교 관리자의 승진 및 임용 연수과정에 성차별 예방교육 포함 ▲성폭력·성차별 언행 전력이 있는 인사의 교장·교감 임용 제한 ▲기간제 교사 근무실태 조사 및 최소한의 신분보장책 마련 ▲객관적인 '학교분쟁 조정기구' 설치 등을 제안했다.

차상철 전교조 사무처장은 "전교조가 지나치게 강성이라는 지적이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강성이 아니라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후 사업의 방향 및 수위가 조절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교조 공격 전에 학교 현실을 보아주세요"
학교장·동료 교원단체·학부모에 호소

전교조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학교장과 동료 교원단체, 학부모들에게 "이번 일을 계기로 교육환경과 학교 현실을 들여다보아 달라"고 호소했다.

전교조는 학교장에 대해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장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것은 사태의 본말을 뒤집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비이성적 공격을 자제하고 평교사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달라"고 촉구했다. 또한 동료 교원단체에 대해서는 "학교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데에는 교원단체의 벽도, 조합원·비조합원의 구별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녀의 등교를 거부하는 해당 학교 학부모들에 대한 호소는 더욱 간절한 문장으로 나타나있다. 전교조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육에 대한 학부모님들의 불신을 가중시킨 점에 대해, 한 당사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전교조를 질타하기 전에 자녀들이 어떤 교육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 보아달라"는 입장을 보였다.

전교조는 등교거부와 관련, "전교조 교사들이 맡아서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먼저 물어봐달라"며 "아이들이 거부한다면 돌맹이를 맞겠지만 아이들이 전교조 교사들을 믿는다면 학부모들도 전교조 교사들을 밑고 자녀들을 맡겨달라"고 강조했다. / 권박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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