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과노점을 운영하는 40대 여성 류 씨(제일 왼쪽)는 문재인 정부 이후 은행 대출 문턱이 높아졌다고 볼멘소리했다.
뉴스민
류씨 보다 더 긴 세월 '박정희'를 경험한 사람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테다. 상동시장에서 참기름 가게를 운영하는 77살 여성은 "박정희는 정치 잘한 거 아니야? 그분이 대한민국 살려놓은 거 아니가?"라고 박정희를 존중했다. 박정희에 대한 존중은 그대로 박근혜에 대한 측은지심과 존경으로도 이어졌다.
"박근혜가 원래 저그 엄마 죽고, 저그 아빠 옆에서 많이 배웠을 거야.그런데 나는 박근혜가 같은 여자로서 보면 불쌍해.처녀로 애기도 못 낳았지,말로(뭐하러) 나라에 나와가지고 그 고통을 받느냐 그 말이라.평(범)하게 살지. 같은 여자 입장에서 볼 때 불쌍해.""여자로서 보면 불쌍하고, 정치인으로는요?""아무래도 저그 아부지한테 배웠기 때문에,아무래도 이분(이번) 대통령보다는 박근혜가 낫다고 봐."
"박근혜 때문!" 문재인 정부 탄생 원인 제공한 '박근혜' 원망"홍준표도 문제" 문재인 정부 탄생을 막지 못한 '꼰대'"산업화 이끌어온 건 완전 무시, 데모하는 사람만 영웅, 이게 나라가?""보수라는 게, 그런 보수가 아니고. 나라 발전하는 세력이라고 해라"물론 경주에서 만난 모든 시민이 참기름집 여성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43살 동갑내기 친구들은 박근혜를 두고 "배신해야 할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박근혜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그의 실정보다 자신들의 삶을 어렵게 만든 문재인 정부 탄생에 원인을 제공한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길 하다가 대뜸 "박근혜 때문이라", "박근혜가 너무 심하게 했잖아"라고 말했다. '박근혜 때문'이라는 말의 진심은 곧 이어진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더 분명해졌다.
"다녀보면 박근혜 비판하는 분들이 많더라""그런데, 그러면 차기로 올라온 사람도 잘하면 되는데." "홍준표도 문제다." "홍준표가 문제지." "오빠야도 문제다, 홍준표 오빠야도."동갑내기 친구들은 주거니 받거니 "박근혜 때문"에 보수 정치 세력의 대표 주자로 급부상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에서 홍 대표에게 표를 줬다는 정씨는 "우예(어찌) 똑똑한 사람 하나 있으면 당이라도 지지할 건데, 자꾸 나와서 쓸데없는 말만 하고, 꼰대같이 그러니까, 너무 부끄러워요"라고 홍 대표가 '문제'인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은 '부끄러운 홍준표' 대신 '똑똑한 유승민'이 보수의 대표 주자로 나서 보수 세력을 재편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이들이 보수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이유는 현 정부 또는 진보 정치 세력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없거나 이를 해결한 사람을 터부시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대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두 친구는 스스로 '보수'라면서도 '사는 게 힘들어서 그래요'라는 말을 알리바이 삼았다. 이들은 "통일도 좋"지만 "사람이 살도록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동시장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65살 남성은 좀 더 분명하게 '보수'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세력'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누나들이 독일에 가가 돈 벌어가 부쳤제. 우리가 사우디 가가(사우디 가서) 그랬제. 산업화 이끌어온 건 완전 무시하고, 데모하는 사람만 영웅 되고, 이게 나라가? 데모꾼만 영웅 되고 산업화한 사람은 무시하고! 보수라는 게, 그런 보수가 아니고. 나라 발전하는 세력이라고 해라. 보수는 무슨 보수고, 나라 발전시키는 거지. 지금 우리나라 원천이 어디서 왔는데! 그때 (노력)한 사람은 다 무시하니까!"먹고 사는 일은 경북에서 유독 민감한 주제로 언급될 가능성은 높다. 고정 임금을 받는 인구가 많은 도시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도시가 체감 경기는 더 나쁠 것이기 때문이다. 경북은 2015년 기준으로 15세 이상 취업인구 중 자영업자 비율이 두 번째로 높은(30.1%) 광역시·도다. 바꿔말하면 임금노동자가 두 번째로 적다(59.9%)는 의미다.
경주는 구미, 포항, 칠곡, 경산과 더불어 경북 시·군 중 임금노동자가 많은 5개 도시 중 하나다. 모두 산단을 중심으로 제조업체가 모여 있는 도시다. 경주는 5개 도시 중에서 임금노동자(62.9%)가 가장 적고, 자영업자(28.9%)가 가장 많다.
임금노동자 적고, 자영업자 많은 경북임금노동자가 미치는 정치적 선택의 변화경주도 마찬가지···임금노동자 거주지 보수색 옅어임금노동자 비율은 경북에서 정치 지형에도 꽤 큰 영향을 미친다. <뉴스민>이 '경북민심번역기' 방문지로 찾은 경북 도시 중 다른 도시에 비해 진보적 성향을 보인 도시는 구미와 포항처럼 임금노동자 비율이 높은 도시였다. 경주 역시 앞서 설명한 것처럼 진보정당 비례 시의원을 배출하는 등 진보적 선택을 하던 순간이 있었는데, 이는 임금노동자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상대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안정적인 데다 노동조합 운동이 결합한 임금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용강산업단지 소재지로 젊은 임금노동자들이 많은 경주 황성동에서 진보정당 지지가 높게 나왔던 것도 이를 방증한다. 황성동은 4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에 20.2% 지지를 보였다. 열린우리당에 11.4% 지지를 보낸 것에 비해 약 2배 높은 지지다. 황성동은 이후에도 진보정당에 상당히 높은 지지를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