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방영된 <무한도전> '나비 효과' 특집.
MBC
결국 창의적인 사람들은 '고독과 경청'을 동시에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2012년 MBC 파업 당시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MBC 방송대학에서 '예능 PD로 산다는 것은?'이란 질문에 김태호는 이렇게 답한다.
"사실 제가 처음에 예능을 지원했던 것은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거든요? 쇼도 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곳이 예능PD잖아요. 일주일에 꼭 한 편씩, 그러니까 1년으로 보면 상당히 많은 시간 동안 제작을 해서 아웃풋(결과물)을 내야 하는 것이 예능 직종이에요. 그러다 보면 제 안에 있는 이야기는 사실 한계가 올 수 있거든요.그럼 그 한계가 있을 때 사실 제 이야기가 아니어도 되고, 시청자들의 얘기, 주변의 이야기를 좀 더 담아서 전달해주는 것도 예능PD들의 가장 큰 의무와 책임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좀 귀를 많이 열고, 많이 듣고, 때로는 또 내 고집이 옳다고 생각될 때는 4000만과 싸워야 될 그런 자신감, 용기있게 싸워야 될 땐 싸워야 되고, 결국 그 싸움이 옳았다는 걸 또 보여줘야 되고. 하여튼 항상 귀를 열고 접근해야겠죠."항상 귀를 열고 접근하는 대상에는 물론 가족도 포함된다. <무한도전> 팬들 사이에서 '레전드'로 평가받는 작품 중 하나인 '나비 효과' 특집(2010년 12월 방송),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줬던 방송이다. 그 구성 아이디어는 이랬다.
먼저 <무한도전> 멤버들을 2층짜리 컨테이너를 개조한 휴양지 세트에 가둬놓는다. 1층은 몰디브 리조트, 2층은 북극 얼음 호텔. 1층에 에어컨이, 2층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있다. 따라서 1층 몰디브 리조트 멤버들이 덥다고 에어컨을 켜면 2층 얼음 호텔 얼음이 녹는다. 그리고 녹아 내린 얼음은 1층으로 흘러 들어가 홍수가 난다. 이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발화점, 김태호의 아내였다고 한다.
손석희 : "부인께서 여름에 에어컨을 잘 안 트신다면서요? 안 트는 이유가 에어컨을 틀었을 때, 그 더운 바람이 세상 바깥으로 나가니까요."
김태호 :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운 열기를 쐬는 게 싫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생각까지 하나'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2010년 12월 <손석희의 시선집중>)
물론 그저 놀라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른 강연을 통해 "'나비 효과' 편은 아내의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디어를 얻은 분위기 또한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소개한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어느 날 에어컨을 틀려고 하는데 아내가 에어컨을 틀면 밖에서 돌아다니는 사람은 더 더울 텐데 조금만 참으라고 하더라"며 이렇게 말했다. 혼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만약 김태호가 부부싸움을 선택했다면?에어컨 작동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부부를 상상해 보자. 찌는 듯이 더운 어느 날이다. 삿대질 싸움으로 번지는 장면을 충분히 떠올려 볼 만한 상황이다.
만약 김태호가 부인의 지적에 '아, 더워 죽겠는데,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란 말이오'란 식으로 맞불을 놓았다면 어찌 됐을까. 그 부글부글 끓는 심정이 혹시 <무한도전>에서 '부부 싸움' 특집으로 나타났을 수도 있었겠다. 그랬다면 아마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방송, '나비 효과'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을 방송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김태호는 '경청'을 선택했다. 부인에게 "혼나고 나서", 어느 날 까페에 홀로 앉아 2층 컨테이너 세트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경청은 고독을 부르고, 다시 고독은 경청을 부른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 이것이 '김태호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라는 궁금증에 대한 두 번째 답이다. 내성적인 김태호, 그의 아이디어는 고독과 경청 사이에서 나온다.
<내성적인 아이>라는 책에 이런 소개문이 있다. "자기 포장과 과다 표현이 범람하는 시대에 더욱 빛나는 가치가 내향성"이라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당신의 아이가 말수가 적다고 혹은 붙임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괜히 걱정부터 앞세울 필요는 없다. 당신의 직원이 혼자 일하기 좋아한다고 억지로 협업의 광장으로 끌어내려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당신의 품안에 있는 '나비'가 세상에 큰 변화를 유발하는 날갯짓을 조용히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그 날갯짓, 창의성의 고전적 정의와 직결된 결합 이야기로 들어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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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가 아내와 싸웠다면... 무도 '레전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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