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규 기자
강인규
전라도에 있는 나에게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강인규 기자를 인터뷰할 수 있느냐"는 요청이 왔다. 나는 주저없이 "하겠다"고 답했다. 지난 16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출구에서 그를 기다리며 설렘에 빠졌다. 오랜만에 톤 굵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세상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역시, 그는 굵직한 가방을 메고,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사실 내가 강 기자를 본 것은 두세 번에 지나지 않는다. 2006년 인천 영종도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세계시민기자포럼이 처음이다. 당시 각국에서 활동하는 시민기자들이 모였는데, 강 기자와 나는 해외통신원으로 참가했고 그 자리에서 첫 인사를 했다.
강인규 기자는 당시 내가 발의해서 만든 '삼합주'를 기억했다. 삼합주는 바이주(빼갈) 반 소주잔, 와인 반 글라스, 맥주 한 컵을 순서대로 마시는 주법이다. 그때는 재미삼아 시작했는데, 무척 '악명'이 높았다. 강 기자는 당시 술자리에서 앉은 채 졸던 내 모습도 상세히 기억했다.
삼합주 의기투합, 벌써 5년이 지났네그로부터 벌써 5년이 흘렀다. 먼저, 남들은 한 번도 받기 어려운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을 두 번이나 받게된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작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기대도 안 했다는 거다. (그는 올 한해 15편 가량의 글을 썼다. 대부분 오마이뉴스 꼭대기에 걸렸다)
그동안 강 기자의 기사를 읽을 때마다 나는 '대자적 존재'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대자적 존재는 어떤 일을 바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비판적으로 사고해 인식하는 존재를 일컫는다.
강 기자가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미국 문화 읽기'나 '뉴미디어 기획' 같은 장기 기획 기사를 보자. 그는 일관되게 우리를 조정하려 드는 자본이나 권력과 긴장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부조리를 비판할 때는 날카로운 칼끝을 겨눈다. 이 탓에 나는 그의 사상적 스승이 놈 촘스키 교수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스승인 '존 피스크'(John fiske)를 사숙했다고 말했다. 피스크는 세상에 쏟아지는 텍스트(각종 정보)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고, 그 속에서 변화와 저항의 희망을 읽어내는 매스미디어 이론가다.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매스컴으로 전공을 분화했고, 지금은 뉴미디어 쪽에 집중하는 그가 사숙하기에 꼭 맞는 문화이론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매스컴을 전공한다고 글쓰기가 저절로 되는 건 아니다. 그가 어떻게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를 두 번 수상하는 내공을 갖게 됐을까. 그는 기사를 쉽게 쓰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사실 내 기사는 분량이 긴 편인데, 일부러 늘이는 건 아니다. 어떤 주제 대해서 독자에게 생각의 기회를 주려면, 일정한 분량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먼저 관심이 가는 주제 중 무얼 쓸지 고민하고, 자료 찾으며 공부를 한다.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 많이 배운다. 내 글의 첫 독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오래 생각하고, 천천히 쓰면서 세상을 배운다. 글쓰기는 나에게는 제일 좋은 스승이다. <오마이뉴스>에 10년 쓰면서 많이 배웠고, 무엇보다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