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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였다. 그리고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몸과 눈꺼풀은 무거운데 머리는 멍한듯하면서도 명료했다. 무엇을 할까?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거실을 어슬렁거리며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밖에 나가 새벽바람이나 맞을까 하다 게으른 핑계를 대고 그만두었다.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시간은 있는데 할 일이 없다는 것, 그것보다 무료하고 답답한 일은 없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귀찮았다. 어둠이 어느 새 스멀스멀 뒷걸음을 쳤는지 거실이 환해졌다. 밖을 보니 유리창에 빗물이 붙어 있다. 내 잠든 사이에 비가 왔나 보다. 잠든 사이에 세상은 여러 모습을 하며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잠과 비, 본 것과 안 본 것,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밤이라는 시간을 두고 일어남을 생각하며 앉은뱅이 책상 위에 던져져 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시집이다. 여러 명의 시인들의 작품이 실려 있는 시집을 건성건성 읽으며 페이지를 넘기다 하나의 시를 보았다. 그리고 난 호흡을 잠시 멈췄다. 그 시 속에서 실루엣처럼, 그러다 점차 또렷하게 박혀 다가오는 얼굴이 있었다. 누굴까, 그래 바로 그놈이다. 아니 그 친구다. 이름은 조승희.

밤마다 나는 돌을 굽는다
흙을 긁어 반죽하고
모양새를 만든다
네모지고 번듯하게
달궈 뜨거운 돌
쌓고 다져 집을 짓는다
담 높여 나를 가둔다

나는 무섭다
날이면 날마다 서른 장 삼백 장
더 많은 무덤의 내 안벽
꼭꼭 나를 숨겨도 두렵고
새빨갛게 달군 불의 내 죄
몇 백배 키로 자란
안타까움과 돌색깔과 무서움의 어둠
그보다 나는 깜깜이다

- <밤마다 나는> 모두, 성춘복


왜 이 시를 보고 난 세상을 떠들썩하게 놀라게 한 그 얼굴, 그 이름이 떠올랐을까. 어떤 특별한 연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처음 그 사건을 접하고 난 '웬 미친놈이야' 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그의 음성, 날카로운 눈빛, 그러면서 분노에 가득 찬 표정 같은 것을 보면서 뭔지 모를 서글픔이랄까 외로움이랄까 하는 것들을 느꼈다.

옆의 많은 사람들이 욕을 해도 난 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무참한 살육에 동정의 마음도 가질 수가 없었다. 그의 행위는 어떤 것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을 들고 노려보는 그의 눈빛은 뭐라 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그러다 이 새벽에 성춘복의 시를 읽으며 그를 떠올렸다. 나는 무섭다. 이 한 마디 때문인지 몰랐다. '나는 무섭다'라는 단어를 난 '그는 무서웠다' 이렇게 읽었다. 스물세 살의 어지러운 삶을 마감하기까지 그의 삶은 무섭고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다시 시를 읊조려 보았다.

"나는 무섭다 / 날이면 날마다 서른 장 삼백 장 / 더 많은 무덤의 내 안벽 / 꼭꼭 나를 숨겨도 두렵고 / 새빨갛게 달군 불의 내 죄 / 몇 백배 키로 자란 / 안타까움과 돌색깔과 무서움의 어둠 / 그보다 나는 깜깜이다"

'나는 무섭다. 그보다 나는 깜깜이다' 이 말이 혹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은 아니었을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친구도 없이 왕따와 조롱을 받으면서 그가 키운 건 무서운 무덤이 아니었을까.

어울리지 못한다고, 목소리가 작다고, 말을 하지 않는다고 따돌림을 당하면서 그는 새빨갛게 달군 불의 죄가 될 죽음과 죽임을 생각지 않았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내면의 벽돌은, 어둠 속에 자신을 아무리 숨기고 숨겨도 두렵고 두려워서 이내 무서움이 되고 그 무서움을 이기지 못해 그는 그렇게 붉은 죄를 저지른 건 아닌가.

내가 지도한 아이 중에도 말이 없는 아이가 있었다. 목소리가 모기보다 작아 한 마디 듣기 위해 열 번 스무 번을 물어야 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음악 실기 시험을 치르거나 발표하는 시간이 되면 배가 아프다는,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조퇴를 시켜달라고 하는 아이였다.

중학교 1학년 정도의 작고 여리여리한 키와 몸을 가진 그 아이는 늘 우울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의 미소를 보기 위해 지나가는 목소리로 '오늘은 표정이 좋구나' 하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살짝 보여주었다. 그게 다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눈은 즐겁게 변하는 걸 보았다. 자신감이 없어 말은 안 하지만 눈은 자신의 감정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진 속에서 내가 본 승희의 얼굴, 눈은 분노의 표정을 드러내려 하고 있지만 절망의 눈빛이었다. 외로움의 눈빛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을 누구한테도 드러내지 못하고 내 안의 무덤을 파듯 두텁고 두터운 내 안의 벽돌을 차곡차곡 쌓았는지 모른다. 그는.

버지니아 공대 잔디밭엔 33개의 추모석이 있다고 한다. 서른두 개는 피해자의 추모석이고 한 개는 그의 추모석이라 한다. 그의 추모석에도 애도의 발걸음과 글귀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의 무거웠던 영혼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사치일까.

한때 그를 향해 퍼부었던 숱한 비난의 목소리는 점차 차분해지면서 연민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 목소리 중에는 승희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삶이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며 평화와 사랑을 찾기를 빌면서 '네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해 미안해' 하고 말하고 있음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제 살아서 '나는 무섭다 나는 깜깜하다'고 했을지 모를 그가 죽어서 '이제 나는 무섭지 않다 깜깜하지 않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또한 가련하고 아픈 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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