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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판 위의 모들
모판 위의 모들 ⓒ 김현
모내기가 끝나고 김을 맬 무렵이면 아버지는 삽 한 자루를 겨드랑이에 끼고 시너브라 불리는 논으로 향했습니다. 걸어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논입니다. 논 한 평 마련하기 위해 몇 년을 고생했던 아버진 그 논을 보면서 어머니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요 논배미가 어떻게 해서 생긴 줄 아느냐. 이거 너그 애미가 못 먹고 안 쓰고 배 골아쥐고 모아 산 논배미다. 애비는 암 것도 한 것이 없다. 다 너그 애미가 한 거지."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표정은 노을처럼 붉게 탔습니다. 한땐 많은 땅을 소유했다고 하는데 아버지의 아버지께서 노름으로 다 날리고 어머니가 시집 올 때쯤은 땅 한 뙈기 없었다 합니다. 그런 집에 얼굴도 모르고 시집온 어머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요.

가뭄이 들면 물꼬를 터서 논에 물을 대었고, 장마가 들어 물이 넘치면 고랑에 물을 빼기 위해 물꼬를 손보곤 했는데 가끔 난 아버지를 따라 논에 가곤 했습니다. 가끔 물꼬를 치다 큼지막한 미꾸라지가 나오면 아버진 그놈을 잡아 풀 꼬챙이에 아가미를 꿰어 내 손에 쥐어주곤 했습니다. 그 미꾸라지를 내게 구워줄 요량이었지요.

평생을 흙을 파고 물꼬를 트며 농사를 짓던 젊은 날의 아버진 이제 백발이 성성한 팔십 줄의 노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잘한 논일과 밭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막내아들은 아버지의 농사를 물려받아 오늘도 트랙터를 몰고 논으로 갑니다.

늙은 아버지와 아직 젊은 아들을 바라보면서 이성부 시인의 시 '전라도'를 생각합니다. 시인의 글엔 농투성이로 살아온 늙은 농부의 성난 얼굴이 있고, 용서가 있고, 삶의 뿌리가 있습니다.

노인은 삽으로
영산강을 퍼올린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머지않아 그대 눈물의 뿌리가 보일 때까지
노인은 다만
성난 사람을 혼자서 퍼올린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인은 끝끝내
영산강을 퍼올린다 가슴에다
불은 짊어지고 있는데
아직도 논바닥은 붉게 타는데
바보같이 바보같이 노인은 바보같이

-이성부 '전라도.7'


언제나 저렇게 푸른 빛이 도는 농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나 저렇게 푸른 빛이 도는 농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 김현
노인은 삽으로 영산강의 물을 퍼 올립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한을 퍼 올리듯 눈물의 뿌리까지 보일 때까지 바보같이 영산강을 퍼 올립니다. 가슴엔 불이 붙고 논바닥은 붉게 타는데 불을 끄지도 못할 물을 퍼 올립니다. 아무리 퍼 올려도 시원하지 않는 물을 퍼 올리는 노인은 내 아버지이고 우리들의 아버지입니다.

혹 시인이 노래한 전라도의 길을 걸어 본 적이 있는지요. 많은 시인 묵객들이 전라도를 노래하는데 웬일인지 흥겨움 보단 슬픔이 깃든 노래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근현대사를 보내면서 전라도는 질곡의 땅이었습니다.

조병갑의 수탈에 못 이겨 전봉준은 고부에서 동학의 깃발을 들여 올렸고, 그 결과 많은 농민들의 핏줄기를 땅에 뿌렸습니다. 근래에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광주혁명이 일어나 또다시 수많은 피를 이 땅에 흘리고 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전라도 길을 황톳길이라 부른지 모릅니다.

그 황토의 전라도 길을 걸으며 한하운 시인은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슬픈 천형(天刑)을 가슴에 안고 발가락이 빠지고 손가락이 떨어지는 아픔을 보며 붉은 황톳길을 걷던 시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얼굴을 드러낼 수 없었던 시인은 보리밭 푸르른 황톳길을 눈물을 삼켰을 것입니다.

어쩌면 시인이 눈물을 흘린 건 자신의 아픔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 봅니다. 자신처럼 소외되고 외로운 이 땅의 백성들을 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늘 허리 굽히고 땅을 파는 이 땅의 농민들을 생각해서인지 모릅니다.

강물을 아무리 퍼 올려도 붉게 타는 논바닥을 시원하게 해 줄 수 없는 노인의 현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힘들고 버겁지만 땅만을 바라보며 바보 같은 노인처럼 살아가는 우리 농민들의 모습에서 인내와 용서를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농민들의 진한 땅방울이 저렇게 탐스런 푸른 빛을 만들었는데...
농민들의 진한 땅방울이 저렇게 탐스런 푸른 빛을 만들었는데...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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