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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태우고 또다른 일을 기다리는 연탄
자신을 태우고 또다른 일을 기다리는 연탄 ⓒ 김현
어릴 때 우리 집은 연탄을 때지 않았습니다. 농촌 마을인 우리 동네는 모두 지푸라기로 불을 때 방구들을 덥혔습니다. 그래서 연탄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연탄이란 존재를 본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입니다. 시골 촌놈이 지방의 도시로 유학을 간 후에 연탄이란 존재를 처음 보았습니다.

처음 하숙을 했는데 연탄방이었습니다. 어머닌 방을 얻어주면서 어디 가스가 새는지 안 새는지 꼼꼼히 주인아주머니에게 묻고 또 묻고 했습니다. 아들놈이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큰일이라도 당할까 봐서입니다. 그리고 일 년 후 부모 몰래 하숙을 그만두고 친구들과 자취를 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연탄과 나의 인연은 질기게 이어졌습니다.

친구들과 돌아가며 때에 맞춰 연탄을 갈아주어야 했습니다. 부주의하여 새벽에 탄이 꺼지면 냉방에서 자야 하는 낭패를 당했지요. 그때 연탄을 갈아주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연탄은 애인과 같다고. 조금만 소홀이 대하면 이내 떼를 쓰고 차갑게 변해버리는 애인. 그러나 늘 가까이 두고 사랑으로 대하면 뜨겁게 활활 타오르며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애인.

그런데 그 애인은 자신을 온전히 태우고 나서도 스스로 희생의 불을 태우는 것이었습니다. 눈이 내린 후 언덕배기 골목길에 연탄재를 잘게 부수어 뿌리면 사람들은 그 연탄재를 사뿐히 즈려밟고 골목길을 오고갔습니다. 그 골목길엔 어린아이도 있었고, 나이 드신 어른들도, 장년의 아줌마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발길도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탄 한 장은 그냥 연탄이 아닙니다. 동장군이 으르렁대는 한겨울 연탄 한 장은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천사와 같습니다. 시인은 우리에게 그 연탄과 같은 마음을 가진 적이 있느냐 묻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라도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뜨거웠던 적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이웃보다는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 몸을 떨고 있는 이웃의 추위보다는 내 손등이 시림을 더 아프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손의 장갑은 살 생각을 하지만 이웃에게 헌 옷이라도 깨끗하게 빨아 줄 생각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게 우리 현대인의 모습은 아닌지 싶습니다.

한 해의 끄트머리 달에 서 있습니다. 한 해를 갈무리하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먼저 연탄이 되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고 겨울바람에 떨고 있는 나뭇잎 하나에도 눈길을 줘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추울수록 따뜻함이 그리워집니다. 그 따뜻함을 생각하며 조용히 되뇌어 읊어봅니다. ‘너는, 아니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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