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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금)] 옷 입고 수영, 내내 비맞았는데 뭘...
나고야 아래 하마마츠. 달린 거리 70km.


이날 계속 바닷가 도로를 따라서 달렸다. 굉장히 길게 이어진 길이다. 하마마츠 조금 지나서 남쪽에 톡 튀어나온 곳이 있다. 오마에자키라는 곳으로 서핑하는 사람들의 메카다. 길은 완전히 이어지지 않고 계속 끊어졌다. 그래서 길을 못 찾고 몇 번 헤맸는데, 한 아저씨를 만나 길 안내를 받았다.

바닷가를 따라 달려서 기분 좋고 날씨도 좋았다. 오마에자키 해안가에서 전날 덜 마른 빨래를 말리고 점심을 먹었다. 그 곳에서 자전거 여행 중인 우라노를 만났다. 처음 오마에자키 해안가에 머무르기 전에 한 번 만났는데, 밥을 먹을 때 다시 만났다.

두 번째 만나니 왠지 친숙한 기분이 들어서 같이 바다에 들어가자고 했다. 수영복이 없다고 걱정하는 우라노. 그냥 들어가자고 말했다. 내내 비에 젖은 상태로 달렸기 때문에 옷 입고 수영하는 게 불편하진 않았다. 소금기 때문에 약간 찝찝하긴 했지만….

하루종일 비를 맞고도 노숙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홋카이도를 제외한 일본의 다른 지역에 극히 드물뿐더러 있어도 찾을 방법이 없는 라이더 하우스를 찾아냈기 때문에 과감히1000엔을 지불하고 라이더하우스에 갔다.

그런데 날씨가 이 날만은 하루 종일 맑았다. 전날까지 계속 비를 맞으며 노숙을 했는데, 정작 집에서 자니까 날씨가 맑다.(ㅠㅠ)

[22일(토)] 새벽 2시 사람들의 출현, 난 겁에 질렸다
시즈오카 근처 공원. 달린 거리 112km.


▲ 길을 물어보자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아주머니
ⓒ 박세욱
날씨가 무척 맑다. 이날 모티무네 역 옆 히로네 해안 공원에서 잠을 잤다. 굉장히 크고 좋은 공원이었다. 날씨가 맑아 안심하고 공원에 텐트를 쳤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다녔다. 거의 떼거지로. 불꽃놀이까지 했다.

피곤했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사람들이 물러가고 조용해졌다 싶으니 그 때부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저녁 12시 무렵이었다. 그때 막 잠들 무렵이라 일어나기 싫었는데, 도저히 비를 피할 수 없어 우산을 쓰고 공원을 뒤졌다.

마침 비를 피할 만한 놀이기구 같은 게 보였다. 배 모양 같은. 빨래를 챙겨서 그 곳으로 피했다. 새벽 2시가 되자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 한 명과 남자 두세 명 정도였다. 그들은 내가 있는 곳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갑자기 겁이 났다. 혹시 마약을 하러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범죄 신고 번호(110번)를 눌러놓은 상태로(여차하면 전화를 걸기 위해) 2층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빗소리 때문에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어느 순간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행히 그날 아무 일도 없었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텐트는 물바다가 돼 있었다.

[23일(일)] 역시 밤에도 비가 내린다
후지산 인근. 이리아마세역 근처. 달린 거리 66.5km.


이날 오전은 인터넷 할 곳을 찾으러 다니면서 시간을 다 보냈다. 점심으로 라면을 해 먹고, 오후 1시쯤에 출발했다.

다음날 후지산 등산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후지산 가까운 곳을 찾았다. 다음날 유스호스텔에서 잘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날 노숙할 예정으로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아주 조그만 공원이었다. 낮에 오락가락 비가 내리더니 역시 밤에도 비가 내렸다.

[24일(월)] 후지산의 공포, 우박에 비바람 그리고 영하의 날씨
후지산(3776m) 등산.


▲ 후지산 등반 입구에서 만난 한국사람들
ⓒ 박세욱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근처 유스호스텔을 찾아갔다. 짐을 맡기고 후지산에 올라갈 생각이었다.

처음엔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지 말지 고민했다. 판단을 하기 위해 이곳저곳 물어봤는데 다 달랐다. 한 사람은 유스호스텔에서 10km만 간다고 이야기하더라. 그 때는 타고 가면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은 순수한 오르막만 36km라고 이야기하는 거다. 그 때 고민이 들었다.

사람마다 말이 달라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싶은데, 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 아는 사람한테 전화로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한 사람은 76km에 버스로 1시간 반 걸린다고 말했다. 또 한 사람은 거리는 모르겠고, 역시 버스로 1시간 반 걸린다고 답했다. 그래서 버스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언제 버스를 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인아저씨가 후지산 갈 계획이면 지금 바로 가자며 재촉했다. 안나라는 외국인 손님이 있었는데, 원래 그 손님을 역까지 태워주기로 약속돼 있었다. 그 손님 덕분에 얼떨결에 후지노미야역까지 같이 가게 됐다.

버스로 정상까지 정확히 1시간 40분 걸렸다. 거리는 나중에 알아보니 36km였다. 버스는 9시 5분에 출발했는데 11시에 도착했다. 15분 정도 공백이 생긴 것은 할아버지들 때문이었다.

버스 승객은 할아버지 세 명과 나뿐이었다. 할아버지들은 모두 친구 분들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할아버지들이 갑자기 어느 공원에서 잠깐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곤 15분 동안 그곳을 둘러보고 왔다. 버스기사가 승객도 얼마 없는데다, 어르신들이라 배려해준 듯했다.

11시에 등반 시작했는데 최악이었다. 등반 시작 지점에 한국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모두 등반을 포기한 상태였다. 기상 조건이 너무 안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나는 무조건 정상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가진 준비물은 삼각 김밥 두 개와 빵 두 개가 전부였다. 그 사정을 안 한 한국인이 자기 비옷을 벗어주었다. 감사의 사례로 오마이뉴스 홍보를 했다. 재미있는 기사가 연재되고 있으니까 꼭 보라고.

기상 상태 때문에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올랐다. 해가 지기 전엔 내려와야 하니까. 출발지점(5지점, 정상은 10지점)이 해발 2000km가 넘었다. 확실히 숨이 빨리 차더라. 아침에 김밥 한 줄만 먹은 상태였다. 바람과 안개가 너무 자욱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로프를 붙잡고 올라갔다.

▲ 후지산에서 정말 사투를 벌였다
ⓒ 박세욱
6지점, 7지점을 지나는데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내려오는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정상을 밟지 않았다.

산을 오른 지 얼마 안돼 온몸이 다 젖었다. 7지점을 넘어서면서부터 확실히 힘들었다. 그 뒤부터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피소가 몇 군데 있긴 있었지만 숙박시설이라서 사먹거나 자지 않으면 아예 들여보내질 않았다.

생사를 다투면서 결국 9지점까지 올라갔다. 무척 빠른 속도였다. 5지점에서 정상까지 표지판에 적힌 예상 시간은 4시간 35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9지점까지 2시간 만에 올라갔다.

한 지점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었지만 결국 포기했다. 조난당하면 바로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바람에 때때로 우박까지 쏟아졌다. 사람이 바람에 날아간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하산하는 것도 쉽진 않았다. 바람에 날려가지 않기 위해 큰 바위 뒤에 숨어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내려갔다. 날씨는 너무 추웠다. 거의 영하의 날씨였다. 로프를 붙잡으면 손이 까질 정도였다.

결국 힘들게 5지점에 도착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남은 김밥을 먹었다. 버스에선 맨 뒷자석에 '발라당' 누워 완전히 뻗어버렸다.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고 관광안내소에서 컴퓨터를 사용했다.

[25일(화)] 안개 속 질주, 시야 확보 거리는 겨우 30m
도쿄 80km 전 마쓰다. 달린 거리 75km.


후지산에서 내려온 뒤 도쿄를 목표로 페달을 밟았다. 후지산의 기운이 남아있어서 가는 길은 오르막이었다. 순수하게 연속으로 이어진 오르막만 18km였다.

지금까지 계속 1번 국도를 탔지만, 다시 그 국도를 타게 되면 한참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택한 지름길이 오르막이었다. 그런데 오전엔 내내 안개가 끼어 있었다. 눈앞은 안 보이는데, 차 소리는 들리고. 너무 위험하더라. 라이트를 켜봤자 도움이 안 되고.

▲ 안개 자욱한 도로
ⓒ 박세욱
거리를 재봤다. 대략 30m 지점부터 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로 계속 자전거를 탔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안개가 걷히면서 해가 나왔다. 힘들게 오르막 끝까지 오르니 신나는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이날 여행 중 최고속도를 기록했다. 시속 61km. 그 전까진 50km가 최고였다. 그런데 내려가다가 브레이크 잡는 시기를 놓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다.(--)

도쿄 진입을 눈앞에 둔 곳까지 다가갔다. 7월 6일 일본에 도착한 뒤 오늘까지 총 1200km를 탔다. 작은 공원(나카구라 공원)에 텐트를 쳤다. 거의 동네 놀이터 수준의 공원이다.

이날 아침은 밥을 해 먹고 점심은 도시락을 사먹었다. 낫또 세 개(110엔), 생선 통조림 한 개(150엔) 등을 사서 밥과 함께 먹었다. 보통 하루에 한 끼는 해먹고 한 끼는 식당에서 사 먹는다. 거의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라면을 먹는 편이다.

지금 자전거 상태는 최악이다. 드레일러(기어 관련 부품들) 변속이 한 부분에서 잘 안된다. 손을 봐야 되는데 너무 힘들어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게다가 손을 봐도 비 때문에 금세 원래대로 돌아가 버린다. 가장 심각한 것은 스템(핸들 부분)이다. 꽉 맞물려 있어야 하는데, 계속 흔들거린다. 브레이크를 잡으면 핸들이 사방팔방으로 흔들린다. 이 부분을 어떻게 수리해야 할 지 모르겠다.

▲ 신호등에서 기다리는데 깃발을 보시더니 아이스크림을 사주시던 어느 아주머니
ⓒ 박세욱
[그리고] 이제 여행의 중간 지점, 지금까지 잘 버텼다

26일 나는 도쿄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한 주 내내 도쿄에 머물 생각이다. 유명한 자전거 만화를 그린 만화가와 자전거 여행 저자 인터뷰를 진행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반쯤 승낙을 받은 상태인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여행의 절반이 끝났다. 잘 버텼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비와코(비파호)에서 자다가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었을 때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당시 바람에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텐트를 꽉 붙잡고 버텼다. 나중에 힘에 부쳐 화장실로 대피했는데, 알고 보니 그 때 바람이 태풍4호였다.

그 때 워낙 험한 일을 당해 그 뒤론 어느 정도 면역이 됐다. 이상기후 때문에 본의 아니게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도 생각한다. 햇빛 쨍쨍 나는 것보다 시원해서 오히려 좋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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