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는 자전거 관련 시민단체, 동호회와 함께 [연속기획] '자전거는 자전車다-자동차와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하여'를 10주에 걸쳐 진행합니다. 세번째 주에는 유럽, 중국, 일본, 호주 등 세계 자전거 문화를 비교해 봅니다. 두번째는 출퇴근길 자전거 물결로 유명한 중국입니다. 늘어난 자동차로 골치를 앓고 있는 중국 대도시에서도 자전거 인기가 여전할까요? <편집자주>
▲ 상하이 황푸강 나룻배를 타기 위해 건너오는 자전거 행렬
ⓒ 조창완
요즘 가끔 만나는 중국 운전사들의 볼에는 잔뜩 바람이 들어있다. 오랜 고객이자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이기에 그들은 용기를 내어서 나에게 말한다. "저기, 요금 10위안(약 1200원)만 더 올리자."

기자가 사는 왕징에서 베이징공항까지는 20~30분 정도 걸리는 짧은 길이다. 그곳을 움직일 때 50위안에서 70위안 정도를 지불하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는 헤이처(黑車; 일명 나라시) 기사도 힘들게 말한다. 그리고 설명이 이어진다.

"내가 차를 몰기 시작하던 10년 전에 기름이 1리터에 1위안이었어. 그런데 지난해 4위안 정도 하던 게 곧 7위안이야."

그래 봐야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2.5분의 1밖에 되지 않다. 하지만 중국의 유가 상승은 가파른 곡선을 긋는다. 국제유가도 오르고 있어 머잖아 양극의 기름가격 차이도 2배까지 좁혀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도로에 늘어나는 차는 엄청나다. 끝없이 공사를 하지만 정체구간과 시간은 늘어난다. 출퇴근 시간에 길 위에서 한두 시간 버리는 일은 이제 흔해졌다.

자동차에 자리 내준 '북경 자전거'

▲ 신호 대기를 기다리는 톈진 자전거 행렬
ⓒ 조창완
사실 중국에는 이런 교통난에 오랜 대안이 있었다. 바로 자전거다. 실제로 자동차가 많아지기 전에 자전거는 누가 뭐래도 거리의 주인이었다. 그런 영상은 우리의 기억 한편에 자리한 영화들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마지막 황제>에서 자전거를 타고 구궁(古宮; 자금성)을 돌아다니는 푸이(溥儀)의 자전거는 새로운 문물에 대한 환상이자, 궁궐 생활의 지루함이나 바깥 세계에 대한 상념이었을 것이다.

또한 <첨밀밀>에서는 어떤가. 리밍(여명)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은 장만위(장만옥)가 나지막히 부르는 덩리쥔(등려군)의 노래는 그들이 가진 고향의 달콤했던 기억이자 그들을 위로하는 달콤한 사랑의 감정이다. 홍콩에서 새로운 꿈을 꾸던 그들에게 본토의 기억을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것은 자전거였을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자전거는 그들 삶의 일부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자전거 뒤편에 앉아서 학교에 등교한다. 80년 이후 중국은 가정에 한 자녀만 낳는 독생자녀 제도가 시행된다. 때문에 중국에서 아이들은 '소황제(小皇帝)'라는 호칭으로 불릴 만큼 귀하게 대우받는다.

친가와 외가의 여섯 어른들에게 귀여움을 받는 아이는 아침에 어른들의 자전거에 만들어진 특수한 보호좌석에 앉아서 등교하고, 역시 하교할 때도 교문에서 기다리는 어른들의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다.

그러다가 나이가 되면 스스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다.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얻는 첫 신호는 그의 자전거 뒷좌석에 여자를 태우는 일이다.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이 전후 생계를 위해 자전거를 잃고, 훔치는 인생 역정이라면, 중국 영화 왕샤오슈아이 감독의 <북경 자전거>에서는 생활의 수단인 구웨이 자전거보다는 깜찍한 여고생 지아오와 데이트를 위해 타는 지안의 자전거가 더 인상적이다.

다른 데이트의 수단이 별로 없는 중국 청년들에게 자전거는 애인과 호흡을 같이하는 수단이자,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은밀한 장소로 데려다 주는 '백마'다.

▲ 중국 아이들은 부모의 자전거를 타고 유치원에 가는 길에서 세상을 만난다.
ⓒ 조창완
▲ 영화 '북경 자전거'에서 자전거는 자신의 꿈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다.

도시가 대부분 평지여서 최고 교통수단

그렇게 연애하고, 결혼을 한다. 개혁개방으로 부(富)가 새로운 종교로 성장하기 전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혼수는 자전거였다. 자전거가 있어야만 기동성이 있고, 그래야 좋은 직장을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80년대 결혼사진의 뒤쪽에는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20년 만에 중국은 천지개벽 했다 할 정도로 바뀌었다. 도시의 청년들이 결혼하면 자전거 대신 아파트 열쇠나 자동차 열쇠를 주고받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 돼버렸다. 리무진 수십 대를 빌려서 처가에 가 아내 될 이를 데려오고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은 왠지 정이 없게 느껴지는 것은 아직도 오리엔탈리즘에 젖어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감상주의일까.

이렇게 화려한 결혼식을 치른 중국인들이지만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더러는 자전거로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니는 교수님 이야기는 유학생들에게 야릇한 동정심을 일으키면서 회자된다.

출근 시간 30분 전인 오전 7시 30분과 퇴근 바로 후인 오후 5시 넘어 대로에 수십m씩 늘어선 자전거 줄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비가 오는 날씨에 대비해 만들어진 자전거 전용 우비를 입은 행렬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중국의 영상 가운데 하나다.

중국인들이 자전거를 그렇게 많이 타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중국 대도시는 대부분 완전한 평지로 되어 있어 자전거 타기에 아주 편리하다. 베이징이나 톈진,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뿐 아니라 다른 중소도시들도 대부분 평지다.

사람들에 밀려서 고통스러운 버스나 지하철보다는 자기만의 공간인 자전거를 편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또 약자가 우선이라는 원칙을 가진 거리에서 자전거는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무섭지 않은 거리의 주인이다.

중국 정부에 신고된 자전거의 숫자만 해도 5억대가 넘는다. 예외가 있다면 도시 중간이 수많은 언덕으로 되어 있는 충칭(重慶)이나 칭다오(靑島) 정도다. 대신 두 도시는 도시 전체에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전차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대부분 가정에는 각 식구 수에 맞춰서 자전거가 있다. 유학생들도 예외가 아닌데, 중국에 도착해 가장 먼저 대형매장에 들러 자전거를 산다. 중국 자전거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3년쯤 타도 별 탈 없는 '자이언트'는 500위안을 호가하고, 2년 정도 타도 별 탈 없는 '스트롱'은 300위안대다.

100위안대의 번지르르한 자전거도 많지만 이런 자전거는 한달도 되지 못해 이곳저곳에서 돈을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이런 100위안대의 자전거는 보통 도시 교외에 있는 작은 가내 수공업 공장에서 만든다. 이제는 서서히 사라지는 풍경이지만 도시로 빠져나가는 길가에는 자기 집에서 만든 자전거를 파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자전거가 대량 생산 제품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 중국의 자전거 전용 도로는 잘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정체시에는 차들도 쉽게 자전거 도로를 침범하기도 한다.
ⓒ 조창완
▲ 비를 맞으며 자전거로 물건을 운반하는 상하이 청년
ⓒ 조창완

급속한 도시화에 봄날은 가고

하지만 사실상 용도 폐기된 공산주의 사상처럼 인민 자전거도 이제 새로운 유행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에는 날렵한 메이커 자전거나 전동시설이 달린 자전거 혹은 스쿠터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제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를 지낸 늙은 노동자의 모습과도 같다. 아직은 젊은 샤캉(下岡; 중국의 정리해고) 노동자 같다고 할까. 아직 움직여야 할 그것이 많이 남아있지만 기세가 꺾인 모습이다.

하루가 다르게 마천루가 들어서는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는 의도적으로라도 자전거가 생존할 기반을 없애고 있다. 차도가 정체되면 자동차들은 쉽게 자전거 도로에 들어와 사람들을 위협한다.

또 별로 소용도 없는 자전거 신고제를 위해 10위안 상당이 드는 번호판을 달게 하고,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명목으로 자전거 주차장을 거리 뒤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상하이는 자전거의 등록대수를 제한하고 있다. 등록증이 없는 자전거가 발견되면 단속반은 여지없이 수거차에 싣고 가 버린다. 보관소까지 찾아가는 것도 힘들고 오히려 돈이 더 들기에 수십 위안짜리 중고 자전거는 인기가 좋다. 물론 어떤 이들은 자신이 잃은 것과 비슷한 자전거를 발견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따질 이유가 없다.

자전거가 소모품처럼 바뀌면서 위기에 처한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2마오(약 24원; 1위안=10마오)를 벌기 위해 공기 펌프 하나로 거리에 앉아서 바람을 넣어주던 노인들, 거리 곳곳에 진을 치고 자전거를 수리하던 이들, 자전거를 많이 주차하는 곳이면 그곳을 관리한다고 푼돈을 받던 자전거 주차장도 서서히 위기를 맞을 것이다. 자전거를 가진 이들을 항상 긴장시키던 자전거 도둑 역시 수지가 맞지 않는 도둑질을 할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자전거의 도태는 단순히 낭만적인 향수만을 부르는 것이 아니다. 무공해 교통수단인 자전거가 사라진 자리에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들어서고 있다. 말이 그렇지 자전거가 사라지는 만큼 중국의 에너지 소비도 증가한다고 보면 그르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영화에서 자전거는 주인공들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다. 그들이 주로 주거하는 후통(胡洞)의 좁은 골목을 질주해 나오면 그들의 가슴에는 우울 대신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겨났다. 진짜 중국이 숨쉬는 공간을 만나고 싶다면 자전거를 빌려 베이징의 서민들이 숨쉬는 후통 골목을 하루 정도 신나게 달려 보는 것이 어떨까.

▲ 상하이 옛 거리를 활보하는 자전거의 모습
ⓒ 조창완
▲ 자전거를 고치는 할아버지의 모습
ⓒ 조창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03년 11월 <아시아나 컬처>에 실은 글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