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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재입니다. 이 시리즈는 ‘주장’보다는 ‘이해’가 목적이었으며, 그 대상도 이미 논의의 중심에 있는 양 방식의 지지세력이나 지지자보다는 DTV에 대해 피상적인 이해에 그쳐서 과연 어떠한 주장이 타당한 것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썼습니다. 마지막 기사에서는 앞으로 있을 비교실험과 관련해 DTV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를 짚어보겠습니다...<필자주>

DTV에 대해 양측의 주장을 2회에 걸쳐 검토했습니다. 양측의 주장이 충돌하는 지점은 대체로,
① 공중파 방송의 보편성에 대한 견해차이
② 이동수신의 목적과 중요성에 대한 견해차이
③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 및 현재 대응에 대한 시각차이
④ 기술적 문제에 대한 견해차이

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부, 방송위원회, 한국방송공사, 언론노조의 이해당사자 4자는 6월까지 비교시험을 하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 디지털TV는 단순한 TV가 아닌 향후 집안의 모든 매체를 통합하는 창(窓)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한 선택이 요구됩니다.
ⓒ Gomid.inc
그러나 비교시험은 이러한 논란에 완전히 종지부를 찍을 수는 없습니다. 오해마십시오. 저는 비교시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교시험은 적어도 ④의 기술적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를 해소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비교시험은 ①②③의 논란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논란들이 기술 문제가 아닌 DTV 정책을 보는 관점과 철학의 차이에서 초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교시험을 통해 다음 두 가지 기술 문제를 결론내기를 희망합니다.
1. 미국식과 유럽식의 고정수신율 차이
2. 유럽식의 이동수신과 고화질 방송의 공존가능성


이 두가지 실험 결과가 현재 논쟁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DTV비교시험 결과와 예상되는 양측의 대응

첫째, 미국식의 고정수신율이 유럽식과 대등하고 유럽식의 고화질(HD) 이동수신이 불가능한 것으로 결과가 나올 경우

이 경우 현행유지론자들이 힘을 얻겠지만, 변경론자들이 완전히 승복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시청가능성’이라는 측면은 차이가 없다고 해도 ①,②,③에서 제기했던 SD의 저렴함, 이동수신의 중요성, 정책결정의 투명성 문제 등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경우 방식변경론은 SD 다채널+이동수신으로 굳어지게 되겠지요.

둘째, 미국식의 고정수신율이 유럽식과 대등하고 유럽식에서 HD 이동수신이 가능한 것으로 결과가 나올 경우

이 경우 논란은 오히려 더 가중될 것입니다. 현방식 유지측은 현행 방송에 DMB를 이동수신의 대안으로 제시할 것이고, 변경론측은 별도 도입비용이 드는 DMB를 반대하고 이동수신의 장점을 강조하면서 방식변경을 여전히 주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미국식 고정수신율이 낮고 유럽식 HD 이동수신은 불가능한 것으로 결과가 나올 경우

이 경우에도 논란은 격렬할 것입니다. 우선 유럽식측 내부적으로 이동수신과 보편적 시청을 위해 HD는 포기하고 SD급으로 가야한다는 주장과 화질향상을 위해 HD 방식으로 하고 이동수신을 포기하자는 주장이 대립될 것이므로 합의가 어려울 것입니다.

넷째 . 미국식 고정수신율이 낮고 유럽식 HD 이동수신이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올 경우

이 경우에만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유럽식 HD방송을 실시하자는 데 합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저렴한 DTV 시청이라는 유럽식의 주장(①)은 퇴색되게 됩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비교시험이 현재의 논란과 대립을 해결할 만병통치약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근본적으로 이것은 사회와 기술, 정책을 보는 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유럽식 주장자들의 철학적 일관성의 부재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어떠한 쪽으로 비교실험 결과가 나오건 논란이 종식되지 않는 것은 유럽식 주장이 상충적인 기술중심론과 사회중심론적 주장을 모두 가지고 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중립적이라는 신화는 이미 과학철학에서는 폐기된 지 오래입니다. 기술은 개발자의 의지와 철학에 따라 그 발전방향이 정해지는 경로의존성을 갖는다는 것은 이제 상식의 영역에 속합니다.

우수한 첨단기술은 시장에 나올 때 그만큼 높은 가격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개발자들은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기술철학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보편적인 향유를 위해 첨단기능을 희생하고 저렴하게 공급할 것인가’
‘향후 지속적인 기술발전을 위해 고가의 첨단제품을 시장에 선보일 것인가’

물론 대부분 고가품과 저가품 양측을 모두 제공하여 공존토록 하는 해결책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DTV처럼 하나의 표준만 남는 문제에서는 이러한 해결책은 의미가 없습니다.

방식변경 주장 중 보편적 시청가능성을 위해 HD보다는 일단 저렴한 SD를 보급하자는 주장은 전자의 사회중심론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반면 미래의 기술발전경로상 이동수신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후자의 기술중심론에 무게를 둔 것입니다.

유럽의 경우는 SD+이동수신의 절충점을 택하여 사회중심론과 기술중심론이 양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처럼 이미 HD가 존재하는데 이동수신을 추가하기 위해서 기존 방식을 변경할 경우, 보급을 위해 저렴한 SD+이동수신으로 가자는 사회중심론과 고가(高價)라도 첨단인 HD+이동수신으로 가자는 기술중심론이 유럽식 내부에서도 정리되지 않게 됩니다.

유럽식의 주장이 힘을 얻어서 변경된 이후가 불확실한 것도 이러한 유럽식 내부견해의 혼란 때문입니다. 과연 보급율에 중심을 두어 일단 SD급 방송을 실시할 것인지 아니면 HD 이동수신이라는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HD방송을 실시할 것인지 정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 지상파가 표준화질을 택하게 되면 서민들에게 무료로 다채널을 서비스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돌아가는 이점이 있다. (“디지털 방송정책과 합의과정”, 이효성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전자신문> 2004년 1월19일자)
○ 다만, 유럽식 주창자들은 죽으나 사나 HD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HD를 지향하되 또 다른 주요 기능(이동·휴대수신, 쌍방향서비스, 난시청해소 등)을 고려하고 또 시청자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진행하자는 것이다.("DTV, 그 오해와 진실 9가지". 이창형 KBS방송기술인협회 부회장, <오마이뉴스> 2004년 1월 16일자)
○ 저희 회사는 전송방식이 유럽방식으로 전환되더라도 시청자들의 복지와 서비스를 위하여 HDTV 방송을 할 것입니다. (MBC 홈페이지, ‘MBC에 바란다’게시판의 MBC HDTV 디지털 전환팀 답변 http://www.imbc.com/audience/board_1.html)


따라서 저는 유럽식을 주장하는 방송국과 방송위원회측의 명확한 입장표명이 비교시험에 앞서서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첫 번째. 비교시험시 고정수신율이 더 중요한가, HD이동수신 성공이 더 중요한가.
두 번째. 방식 변경시 유럽식 화면방식은 SD 다채널인가 HD 1개 채널인가.


만일 세계 최초의 HD이동수신이 더 중요하다는 기술적 관점에서 방식변경을 관철시킨 후 실제 방송시는 보편성을 이유로 SD다채널을 한다거나 유럽식에서 HD 이동수신이 안된다는 것이 확인된 후에도 수신율의 우위를 들어 유럽식을 관철시킨 다음, 실제 방송전환시는 이동수신이라는 첨단기술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로 SD급으로 방송한다면 이는 시청자들을 속여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킨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에 대한 방침 표명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결국 비교시험은 논의를 더 가열할 뿐입니다. 제가 유럽식 변경론의 열쇠를 쥐고 있는 방송국과 방송위측의 명확한 태도 표명을 촉구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한편으로, 미국식 유지론의 중심에 있는 정보통신부는 현행 미국식이 수신율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실험결과가 드러날 경우 변경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야 합니다. 어떠한 논리와 명분도 현재와 같이 20%의 국민만이 안테나로 공중파 방송을 수신하고 나머지는 추가비용을 들여 공중파를 재전송받는 기형적인 수신상태를 DTV에서 반복하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현재의 난시청이 방송국측의 직무유기에 더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보통신부는 지난 책임을 따지기보다 앞으로 국민의 권익을 더 생각해야 하는 정부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으로 DTV 논쟁을 둘러싼 사실과 주장 그리고 향후 논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미국식과 유럽식 모두 자신들의 주장은 시청자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느 편이 진실인지 저는 함부로 주장할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 기사가 일반 시청자들에게 그 진실을 판단하는데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긴 기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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