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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텔레비전 전송 방식을 놓고 현재 정보통신부와 방송단체 간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더 나은 생산 방식을 채택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식 방식과 유럽식 방식 채택 문제에 대해 양측의 주장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정보통신부, 방송현업인, 기타 이 논쟁에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편집자 주>

방송은 상품인가? 분명히 그렇다. 각 방송사는 매년 방송이라는 상품을 팔아 이윤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학의 시장 분석 틀로도 방송이란 상품을 충분히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실제는 만만하지 않은 문제다. 왜 그런가 보자.

방송사들은 현재 공중파 방송이라는 상품을 판다. 그런데 차세대 생산방식을 도입하면 디지털 방송이라는 차세대 상품을 팔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차세대 생산방식은 미국식과 유럽식이 있다. 미국식은 고화질(HD)이라는 1개의 상품(채널)을 생산한다. 이 상품은 자동차에는 팔 수 없고(이동수신 불가), 판매수입(시청료+광고수입)은 현재와 동일하다. 결정적으로 생산비(프로그램 제작비)는 지금 방식보다 3-4배 정도 비싸다. 즉 생산비는 올라가고, 물건 가격이나 판매량은 차이가 없다. 이것이 방송국이 바라보는 미국식 디지털 방송이다.

반면 유럽식 생산방식을 도입하면 미국식처럼 HD라는 상품을 생산하거나 표준화질(SD)(고화질보다는 화질이 떨어지는 화면)이라는 대체상품을 선택해서 생산할 수 있다. HD를 생산하면 가격이나 수입 등 모든 조건은 미국식과 똑같다. 반면에 SD를 생산하면 현재와 대등소이한 생산비로 4개 제품(채널)을 동시에 생산할 수 있으며 자동차 장착시장이라는 새 시장이 개척된다. 즉 생산비는 동일하고 생산량은 4배 늘며 판매량은 4배가 넘는다.

자, 당신이 방송국 관계자다. 먼저 미국식을 택하겠는가? 유럽식을 택하겠는가? 당연히 유럽식을 택한다.

다음으로 유럽식을 택한다면 HD라는 상품을 생산하겠는가, SD라는 상품을 생산하겠는가? 이것도 너무나 자명한 선택이다. 경제학의 1장 1절은 '모든 경제적 주체는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인 시청자 처지에서 살펴 보자.

소비자 처지에서 보면 미국식 HD 제품은 현재 공중파라는 제품보다 4배 이상의 질(quality)을 가진데다 가격(시청료)은 현재 공중파와 동일하다.

▲ 65만원에 팔리는 HD급 29인치 TV. 29인치에서도 HD와 SD는 단번에 구분이 가능하다.
ⓒ 아남전자
유럽식 HD제품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SD제품은 가격은 HD와 동일한데 성능은 현행 공중파 제품보다 1.2배 정도 나을 뿐이다. TV가 달린 고급차량을 가진 일부의 경우 차량에서도 쓸 수 있는 상품(이동수신)을 보너스로 무료 구매하는 특전이 있다.

이 경우 보너스 상품이 필요없는 대다수 소비자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미국식이나 유럽식 HD 상품이다.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의 처지는 반대다. 이러한 대립에 대해 주류 경제학이라면 이렇게 해법을 제시할 것이다.

"방송국은 지금 생산품보다 4배의 질을 갖지만 3-4배의 생산비가 드는 HD제품에 4배의 값을 붙여 팔고, SD 제품은 현행 가격에 팔면 된다. 이렇게 하면 소비자는 4배의 값을 지불하더라도 훨씬 좋은 질을 갖는 HD를 구매하는 사람들과 현행과 같은 값이지만 약간 더 질이 좋은 SD를 구매하는 사람들로 나뉠 것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이런 해법은 방송이란 특수한 시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방송국은 일단 유럽식을 택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SD를 생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들을 하나씩 따져보자.

첫째, 유럽식을 택해도 SD와 HD를 동시 생산하면 생산비용은 HD의 단가가 들어간다.

둘째, HD란 제품은 4배의 가격으로 팔 수 없다. 시청자는 무료로 HD를 구매하고 돈은 '광고주'들이 내주기 때문이다. 물론 광고주는 그 대가를 광고한 상품 판매수익으로 회수한다. 그런데 이들 처지에서는 HD이건 SD이건 시청자의 수는 동일하기 때문에 광고가 주는 효과에는 별 차이가 없다. 따라서 HD라는 제품에 4배의 가격을 지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셋째, 유럽식 SD를 택하면 4개를 만들어 5개 이상을 판 돈을 벌 수 있는 마술(?)이 가능하다. 이 역시 특수한 판매구조 때문이다. 즉 4개 채널을 더 만들어 그걸 이동수신으로 방송하면 보는 소비자(시청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광고주는 돈을 더 낼 의향이 있다.

따라서 정부의 '규제'가 없다면 생산자는 소비자에게 가는 상품의 질이 낮더라도 당연히 SD를 생산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그런데 정부가 소비자의 처지에 서서 지금 들여온 미국식으로 계속 생산하라고 규제한다면? 남는 것은 투쟁이다.

이것이 현재 상황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틀이다. 방식변경 지지자, 혹은 방송국 관계자의 논리적인 반론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분석에 대해 논리의 허점이라며 반론할 것 같아 미리 답한다.

1.소비자가 HD를 구매하려면 돈이 상당히 든다. 시설비는 빼고 시청료가 무료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그렇다. 그 이야기를 기다렸다. 유럽식 주장자들의 경우 이동수신이 무료라고 그렇게 강조하는데 당신들의 이동수신은 차량에 무료로 TV와 (현재 세계 어디에서도 개발되지 않은) 이동식 HD 수신장치를 달아줄 것인가? 그럼에도 나는 본문에서 유럽식 이동수신을 무료라고 분명히 썼다. 공평성을 위해서이다. 일부 유럽식 지지자처럼 미국식에 덧붙여 무료로 제공할 대체이동수신(DMB)을 유료라고 왜곡하지 않았다. 

2. SD로 여러 채널을 방송하면 제작비가 드는데 왜 생산비가 '대등소이하다'는 것인가? 
- 이미 케이블로 방송되고 있는 공중파 자매 채널이 방송국마다 3-4개씩 있다. 스포츠, 게임, 드라마, 영화 채널 등. 이것을 그대로 SD급으로 전송할 경우 추가 비용은 0에 가깝다. 

3. 다채널로 방송하면 채널별 광고수입은 줄어든다.
- 판매수익이 4배가 된다고 썼는가? 판매량이 4배가 넘는다고 했다. 채널당 광고수입은 줄 것이다. 그러나 개별 광고단가는 줄어들어도 결국 총수입은 늘어난다. 케이블에서 방송하는 것보다는 몇 배 될 것이다. (현재 케이블과 공중파 방송의 광고단가는 평균적으로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더구나 위에서 밝혔듯이 생산비가 대등소이한데 마다할 이유가 있는가?

4. 미국식과 유럽식은 수신율 차이가 있어 질이 다른 제품이다.
- 이번 공동보고서에서도 미국식의 수신율이 90%가 넘는다는 실험결과가 언급되었다. 그리고 이 글은 유럽식을 택할 경우 HD를 버리고 SD를 하는 이유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이다. 논점을 벗어난다.

5. 미국식도 SD 다채널 할 수 있지 않는가?
-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HD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SD로 전환할 명분이 있는가? 유럽식으로 바꾸면서 백지상태에서 이동수신을 이유로 SD로 전환하면 시청자의 반발이 줄 것이라는 것이 방송국의 판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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