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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참여정부 정권 출범 6개월을 맞아 서로 다른 3가지 시각의 노무현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를 싣습니다. 국회의원 김영춘씨는 그 중간 정도의 시각이며, 시사평론가 서영석씨는 '제대로 잘 가고 있다'는 입장, 재미언론인 김민웅씨는 '기대에 훨씬 못미쳤다'는 입장입니다. 3가지 시각은 현재의 자리에서 2시간씩 차례로 머릿기사에 올라갑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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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노무현과 개구리의 공통점 다섯 가지" 파문


▲ 지난 4월 2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현안에 대한 연설을 하던 노 대통령이 잠시 물을 마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정권은 '냉전 수구적 기존질서'와의 보다 과감한 결별을 강력히 요구받은 지점에서 그 출발의 동력을 극적으로 획득한 권력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의 성공 여부는 그러한 기존질서 해체와 대안적 질서 성립에 얼마만큼 결실을 얻어가고 있는가로 판가름나게 되어 있다. 이는 자신의 역사적 위치에 대한 투철한 자각과, 그 자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철학적 의지 및 정치적 역량에 대한 질문이 된다.

그런 각도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무현 정권의 지난 6개월은 한마디로 '새로운 시대를 향해가는 추진력의 대중적 기반'을 포괄적이고도 열정적으로 만들어 가는 작업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불리한 정치적 환경과 조건에 의한 불가피한 소산이라고 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권 성립의 기본 환경은 역사의 대세를 새로이 형성하려는 대중적 돌파력이 고조되어가는 추세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역사적 위치에 대한 투철한 자각이 있는가

따라서 이러한 대중의 역사적 에너지와 충실하게 결합하는 노력과 의지를 갖는데 일차적 우선권을 두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당연한 책임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은 그의 지지 세력이 인식했던 대선 당시 후보 노무현의 민족적·개혁적 정체성을 권력의 현실로 극대화하려 하기 보다는, 대단히 협소한 배타적 정파성에 몰두함으로써 냉전수구질서의 파격을 위한 세력의 연대를 강화하고 그 기반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 대신, 노무현 대통령과 그 핵심 세력들은 집권 초기 정치적 공세의 타격방향을 매우 엉뚱하게도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세력의 일부를 향해 돌렸고, 치열한 접전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냉전수구세력과는 일정한 정치적 공조를 지향하는 사태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 결과는 집권당으로서의 역할을 정비해나가야 할 민주당 내부의 분열, 민족문제의 차원에서 접근해나가야 할 대북 송금 문제의 특검 수용, 대선패배라는 충격으로 휘청거리고 있던 냉전수구세력의 정치적 기사회생 등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특히 한반도 냉전체제 성립과 지속에 최대의 책임이 있는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민족적 주도권의 영역을 어떻게든 넓혀나가기 보다는 오히려 선도적으로 위축시키고 포기해버리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역량 강화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말았다.

이 대목은 후보 당시 노무현 자신의 입장이나 견해 표명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됨으로써 '배신감'이라는 극단적 반응을 기존의 지지 세력 내부에 확산시킨 요인으로 기능했다.

정파적·지역적 지지 기반 우선 확보

상황이 이렇게 되어가면서 노무현 정권 성립을 위해 진력을 다했던 세력은 적대적으로 분열해갔다. 이를 크게 구분하자면 민족적 좌표와 개혁의지의 총체적 결합을 위한 포괄적 권력의지를 요구하는 입장과, 정파적·지역적 지지 기반을 우선 꾸리는 것이 노무현 정권의 장기적 안정을 위해 절실한 전략이라고 믿는 견해로 나뉘게 된다.

전자는 이른바 평화개혁 세력의 결속 강화와 대중적 지지 기반 확대를 통해 노무현 정권의 역사적 임무 수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인데 반해, 후자는 취약한 노무현 정권에 대한 "충성도 높은 세력결집"이 급선무라고 여기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민족적 당위명제에 대한 최고의 헌신이 이루어져 나가면 자연히 권력의 기반은 튼튼해진다는 견해와, 권력 투쟁을 통해 자파세력의 주도권 확보를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자 권력의 속성상 필요한 선택이라고 믿는 생각의 충돌이다.

▲ 지난 5월 17일 노 대통령이 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성남공항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굴욕외교'라고 비판하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치적 대화의 폭 좁혀 갈등의 해결 역량 난관에 부딪혀

참으로 안타깝게도,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에게 권력이 주어진 것이 다름 아닌 민족적 책무의 수행과 개혁정치의 관철에 대한 기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반도 전체를 놓고 지지기반을 형성하려는 대국적 차원의 인식보다는 영남 일부의 봉건적 지역주의에 의존하고, 현재 우리의 처지를 해결하는데 요구되는 포괄적 역량의 충원 대신 패쇄적인 논의회로에 안주함으로써 정치적 대화의 폭을 좁혀 놓았다.

이렇게 정치적 대화의 폭이 협소해지는 것은 날이 갈수록 갈등의 해결이 어려워짐을 의미하는 것이며, 정치사회적 대립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는 고도의 정치적 지혜를 결집시키는 노력보다는 공권력을 내세운 폭력적 접근이 일상화되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을 뜻한다. 이미 우리는 그러한 상황이 심화되어가는 조짐을 부안사태와 노동정책의 추진에서 목격하고 있다.

이는 소위 '탈 권위'라는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강조하는 개혁과도 배치되는 것이자, 바로 그 탈 권위 표방이 사실상 본질적으로는 권위주의 탈각이 아니라 존경할 만한 권위를 갖지 못한 지도자의 무지와 독선이 결합된, 품격 없는 스타일상의 수준에 머문 유아적 정치문화의 소산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대화와 절차를 중요시하겠다던 그의 개혁전략은 그와 같은 절차적 논의와, 그에 필요한 자세의 결여로 인해 신뢰성과 진정성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언론과 대중적 비판이 본질보다는 사소한 그의 개성적 면모와 때로의 일탈적 발언에 과도하게 비난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지도자로서의 품격과 위상에 대한 자각이 정립되지 못한 그 자신에게도 그러한 사태를 몰고온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이는 다만 노무현 대통령 자신에게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정치적 지위에 대한 정치사회적 인식을 하락시켰다는 점에서 추궁의 대상이 된다.

노무현, 아직 늦지 않았다

현 정세 속에서 노무현 정권이 감당해야 할 과제의 요체는 (1)남북의 결속을 바탕으로 한 민족적 주도권을 강화시켜나가는 한반도 평화체제 추구 (2)평화적 역량의 강화와 봉건적 정치문화의 타파를 위한 정치적 통합력의 극대화 (3)사회경제적 갈등의 해결을 위한 정치적 대화의 폭 확대와 실천적 역량의 포괄적 충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 자신의 최고 국정 수행자로서의 존경스러운 지도자적 품격을 갖추어 나가는 일이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과제 달성과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노무현 정권과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너무도 많은 영역에서 인식의 착오와 불필요한 실수를 거듭했고, 무엇보다도 민족적 과제에 대한 헌신적 자세가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수구 세력의 역사적 척결이 최대의 과제라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의 존재 의의는, 집권 초기보다는 약해졌으나 여전히 살아 있다. 한나라당의 시대착오적 역사인식과 극단의 비열함에 이르는 비난, 그리고 일부 보수언론들의 몰 역사적이고 악의적인 공세 앞에 홀로 서있는 노무현 정권은 이 나라의 평화와 개혁을 바라는 우리들 모두의 상처투성이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 지지와 연대는 무수한 불만이 있음에도,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종결시킬 것인가 아니면 유지 확대할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정권 자신에게 달려 있다. 권력을 쥐고 있으니 시간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몰락은 예정되어 있다. 노무현 정권을 성립시킨 역사의 요구, 그것이 지향하려는 자리에 서려는 의지가 없다면, 대통령 노무현과 그 권력은 결국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고립무원은 냉전수구세력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암울한 시나리오가 아니라, 우리 역사의 진보에 도리어 이바지하는 역설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 겸허하고도 무섭게 주목할 일이다. 그것이 대통령 노무현과 그 정권이 이 시대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이제 남아 있는 단 하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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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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