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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신문 교내 일제구독과 관련된 경험 몇 가지.
신문 묵혀 읽기의 현장. 한 교실에 들어가니 오후인데도 당일 소년신문 뭉치가 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 학교 현관에서 배달을 기다리는 신문뭉치
ⓒ 최동욱
"집에 가져가 보니?"
"아침자습시간에 봐요."
"이건 뭐야?"
"내일 볼 건데요."

아이들이 하교한 후 담임 선생님이 당일 소년신문에서 자습문제를 제시하면 다음날 아침에 자습문제를 해결한다. 연휴라도 있으면 며칠씩 묵은 구문(舊聞)을 읽게 된다. 이렇게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수년 전, 공식 부장회의에서 있었던 일. '화장실 청소 인건비가 모자란다고 하니 소년신문 안 보는 학급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켜야한다'고 주장하는 한 부장교사와 논쟁을 벌인 일이 있다.

내 교직 평생 가장 황당했던 경험. 학년말에 교장선생님에게 불려가서 '소년신문을 구독시키지 않으니 학년부장을 내놓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세상에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는구나'라고 놀랐었다. 내가 학년부장을 맡으면 그 학년의 신문구독 부수가 준다는 것이 나를 밀어내려는 이유였다.

서울시내 거의 모든 초등학교가 신문지국 노릇을 한다. 학교는 신문을 지정하여 신문구독신청을 받고 신문을 나눠주며 구독료까지 수금한다. 그 대가로 신문사로부터 일정액을 학교발전기금으로 되돌려 받는다.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소년신문 일괄구독의 문제점은 이렇다.

▲ 신문배달 시작
ⓒ 최동욱
첫째, 강제성을 띤다.

앞의 신문 묵혀 자습하는 학급의 부수를 보니 학급 재적과 같았다. 아침자습문제 해결을 위해 안 볼 재간이 없었을 터이다.

아침 자습문제로 내지 않는다 해도 교사가 신문을 읽어주고 어려운 말이나 내용을 설명해주면 그동안 신문 안 보는 아이는 뭘 해야 될까? 아이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대부분의 학교는 가정통신에 '희망자에 한하여'라는 말을 넣어 구독신청을 받는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라도 교사가 소년신문을 다루어주면 아이들은 '희망자'가 될 수밖에 없다.

담임선생님들이 소년신문을 학습에 이용하는 것은 선의(善意)일 것이다. 지금은 학교장들이 공개적으로 소년신문구독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교사 평가권한과 교내 인사권을 쥔 교장이 언제든 학급별 구독자 수를 확인할 수 있는 한 교사들이 부수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소년신문 일제구독에는 최소한의 시장원리도 작동하지 않는다. 아이들이나 학부모는 소비자로서 신문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겼다. 참교육학부모회의 한 간부도 소년신문 일제구독의 문제점으로 '소비자로서 선택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점을 가장 먼저 꼽았다.

학교장 명의의 가정통신문은 학교가 특정 상품(신문)을 '추천'하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다. 학교장의 권위가 상행위에 작용한다. 서울 500여 초등학교 중 457개 학교가 스쿨뱅킹(cash management service)으로 신문대금을 처리하는데 이것도 학생과 학부모에게 '공납급'이란 느낌을 줄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강제구독으로 인한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선 학교를 지도하고 있지만, 민원 발생여부만으로 강제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학교 현장에서는 강제성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교묘히 포장되기도 하고, 강제성을 느낀다 해도 학부모가 문제를 제기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둘째, 구독료의 20% 정도를 학교가 되돌려 받아쓴다.

'신문 안 보는 학급은 화장실을 청소하라'는 앞의 부장교사와 신문구독 안 시킨 교사에게 보직 내놓으라는 교장선생님에게 소년신문구독은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기부금 '수입'의 문제였다.

소년신문사들이 신문대금의 20%를 학교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 이것은 '서울특별시 학교발전기금의 조성·운영 및 회계관리 요령'의 "발전기금은 기부자에게 반대급부가 없어야 하며…"라는 '기본방침'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있다.

서울시교육청 학교발전기금 담당자에게 물었다.

- 신문대금 중 일부를 발전기금으로 받는 데 문제 없나?
"소년신문사들이 직접 주지 않고 후원단체에서 기부하는 것은 반대급부로 보지 않는다."

경쟁관계에 있는 소년신문사들이 왜 공동으로 '서울어린이 후원회'를 만들어 간접적으로 기부금을 넣어주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재원이 소년신문사에서 나온 것 아닌가?
"그건 모르겠다. 퍼센트를 정해놓고 부수에 딱 맞게 기부하면 곤란하지만 후원회에서 설립목적에 따라 자율적으로 주면 문제 없다."
- 그 재원이 소년신문에서 나오는 것으로 확인되면 문제가 생기나?
"알아봐야 한다."

발전기금의 재원과 기부 방법을 <서울어린이 후원회> 간사에게 물었다.

- <서울어린이 후원회>는 소년신문사들이 설립하였나?
"맞다."
- 초등학교에 기부하는 발전기금의 재원은 신문사에서 나오나?
"그렇다."
- 신문대금의 20%인가?
"그렇다."
- 어떤 방법으로 나누어주나?
"밝힐 수 없다."
- 신문구독 않는 학교에도 기부하나?
"하지 않는다."
- <서울어린이 후원회>는 법인인가?
"아직 아니다."

서울시 교육청 담당자에게 다시 질문했다.

- <서울어린이 후원회>에 확인하였다. 소년신문대금의 20%를 신문사로부터 받고, 신문 구독하는 학교에만 기부한다. 이래도 '반대급부'가 아닌가?
"교육부와 협의하여 답변하겠다."

기부금의 재원이 아이들이 낸 신문대금 중 일부인 것이 확실한 이상 기부과정이 어떻든 '반대급부' 금지규정 위반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에 대해 참교육학부모회는 '불공정거래 아니겠냐'는 견해를 보였다.

만약 몇 개의 출판사가 학습지를 초등학교에 아침자습용으로 공급하고, 그 출판사들이 공동으로 '후원회'를 설립하여 학습지 판매이익금의 일부를 학교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면 괜찮을까? 교육관련단체들의 문제제기에도 끄떡 않고 교내 상행위를 계속할 수 있을까?

공교육기관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특정상품(신문) 판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대가를 받는 관행을 이제는 버릴 때가 됐다.

"이 발전기금은 규정위반입니다"
[인터뷰] 서울시교육위원회 이건 위원

▲ 이건 서울시 교육위원
ⓒ최동욱
이건 위원을 서울시교육청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 소년신문 일제구독의 문제점을 계속 지적해오셨는데.
"이젠 아이들 이용해서 돈 벌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돼요. 옛날 사고방식으로 기금으로 모아 뭐하겠다는 건지."

- 강제성이 있습니다.
"소년신문 일제 구독은 아이들에게 죄짓는 일입니다. 아침자습 같은 거 시키면 안돼요."

- 신문대금의 20%를 발전기금으로 받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규정 위반이지요."

- 후원회를 통해 기부합니다.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신문사로 보면 포기하기 어려운 수입원이고, 수많은 일자리입니다. 거기다 특정 소년신문 독자는 어른이 되어도 그 신문의 독자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이건 교육위원은 소년신문 강제구독의 문제점을 계속 제기하여 '강제구독으로 민원이 발생하는 학교의 교장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서울시교육감의 약속을 받아냈다. 그 후 공개적으로 신문구독을 강요하는 교장은 거의 없다.

이 위원의 노력으로 화장실 청소 인건비를 발전기금이 아닌 '학교회계'에서 지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 결과 2003년 3월 현재 서울의 183개 초등학교에서 화장실 청소 인건비를 발전기금이 아닌 '학교회계'로 지급하였다. '화장실 청소 비용 마련'이라는 신문일제구독의 강력한 구실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 최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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